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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 기타등등

2019년 수능 국어(언어)영역 11번 설명

sleepy_wug 2018. 11. 17.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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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언어학 전공자이다보니, 수능에서 그나마 쪼금 언어학적인 내용을 다루는 1교시 국어 (언어) 영역의 '문법' 부분에 관심이 갔습니다.

 

2019년 대수능 (2018년 11월 실시)에서는 11번부터 15번까지가 '문법'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해당 문제들을 풀어보고 약간의 코멘트를 한 글을 어제 올렸습니다. (여기) 

 

더보기

 

P-side(Phonetics and phonology 음성음운) 쪽으로는 국어학/언어학 간에 기본용어가 다른 게 신기했습니다. Phoneme 개념은 음운론의 기초적인 개념인데 그것을 국어학/국어교육학에서 "음운" 이라고 부르는 게 신기했습니다. 저는 보통 음소라고 부릅니다. 아마 전상범 교수님도 음소라고 할거에요.

 

한편, S-side(Syntax and semantics 통사의미) 쪽으로는 "좋은 기회"와 같은 DP를 국어학/국어교육학에서 어떻게 분석하나가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이 글을 올리고 보니 생각보다 11번 문제에 대한 검색유입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11번 문제를 다시 보기로 했습니다.

 

1. 19년 수능 국어 11번 문제 풀어보기

19년 수능 11번

 

어떤 단어에서 음소를 하나 바꾸었더니 다른 단어가 되었을 때, 그 두 단어를 최소대립쌍(minimal pair)라고 합니다.

 

두 음소를 집어넣으면 한국어에서 그 음소에 따른 최소대립쌍을 자동으로 산출해주는 앱이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붙이면 남이 된다"

 

등등이 최소대립쌍에 관한 속담들입니다. "발이"라는 말을 하려고 하는데, "ㅏ"를 "ㅓ"로 바꾸면 "벌이"가 되고, 의미가 다르잖아요? 이런식으로 최소한의 소리를 바꾸었을 때 의미가 바뀌면 그 소리의 덩어리가 음소입니다. 

 

한국어의 경우는 세종대왕님 덕분에 한글의 자모가 대체로 음소에 1:1대응합니다. (세부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특히 모음의 경우 ㅐ와 ㅔ처럼 사실상 음소적 대립이 없다고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ㅚㅙㅞ는 사실상 구별되지 않고요. )

 

또한 중요한 것은 이 논리에 따르면 ㅟ, ㅚ, ㅔ, ㅐ가 각각 하나의 음소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ㅜ ㅣ 라는 두 음소가 합쳐져서 ㅟ가 되는 것이 아니라 ㅟ가 하나의 덩어리입니다. (이것과 관련된 논쟁을 [여기]에서 다루었습니다)

 

따라서 사실 문제 11번은 "한글 자모가 하나만 다른 두 단어쌍을 골라라"라는 문제나 다름없습니다.

 

2. 19년 수능 국어 11번 문제 정답풀이

 

주어진 예시 [A] 쉬리, 마루, 구실, 모래, 소리, 구슬, 머루 에서:

 

"쉬리" 와 "소리" 는 "ㅟ"와 "ㅗ"만 다르고 모든 것은 같습니다. 따라서 두 단어는 최소대립쌍이고 ㅟ와 ㅗ는 한국어의 음소입니다.

 

"마루" 와 "머루"는 "ㅏ"와 "ㅓ"만 다르고 모든 것은 같습니다. 따라서 두 단어는 최소대립쌍이고 ㅏ와 ㅓ는 한국어의 음소입니다.

 

"구실"과 "구슬"은 "ㅣ"와 "ㅡ"만 다르고 모든 것은 같습니다. 따라서 두 단어는 최소대립쌍이고 ㅣ와 ㅡ는 한국어의 음소입니다.

 

모래는 왜 들어가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A]에서 찾을 수 있는 한국어의 음소는 ㅟ,ㅗ,ㅏ,ㅓ,ㅣ,ㅡ 이렇게 6개입니다.

 

이 6개를 [B]에다가 표시하면 이렇게 됩니다.

 

혀높이(vowel height)로는,

고모음(혀의 위치가 위) 3개,

중모음(혀의 위치가 중간) 2개, 

저모음(혀의 위치가 아래) 1개

 

혀기울기(vowel backness)로는,

전설모음(혀의 위치가 앞쪽임) 2개, 

후설모음(혀의 위치가 뒤쪽임) 4개

 

입술모양(roundness)으로는

평순모음(입술을 움직이지 않음)이 4개

원순모음(입술을 동그랗게 만듦)이 2개

 

 

선지 중 3번은 평순모음이 3개라고 적고 있는데, 우리의 결과로는 4개이므로 틀렸죠.

 

 

3. 여기서부터는, '언어학하고 앉아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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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문제라 그런지 한국어 모음체계를 상당히 보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문제 내신 교수님들 자신들이 과연 이런 모음체계를 가지고 있을까요? 회의적입니다) 아주 보수적으로 가지는 않아서 모음의 장단음을 묻지 않았다는 데 위안을 삼아야 할까요?

 

ㅚ와 ㅟ가 단모음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사실 이중 제스처를 취하는 이중모음으로 발화되는 경우가 많고 또 그러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단모음으로서의 ㅚ의 음가는 /ø/ 정도인데, 불어의 peu 와 비슷한 발음이 예측됩니다. 혹은 위의 표 [B]처럼 ㅐ를 발화하는 제스처에서 입술만 모으면 나오는 그 소리가 ㅚ의 발음이어야 하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ø/ 앞에 /w/를 첨가하거나 심지어 명백한 이중모음인 ㅙ/wɛ/ 와 동일하게 사용합니다.

 

ㅐ와 ㅔ가 사실상 하나의 음소라는 것도 이제는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미 20년전부터 보고되어왔습니다! 이재강(1998)[각주:1]

 

제가 봤던 논문중에 적어도 저에게는 가장 설득력 있었던 논문은 Eychenne and Jang (2015)[각주:2]인데, 발화 인지 모두에서 ㅐㅔ 구별이 거의 무의미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내가 산다

네가 산다

 

는 사실상 구별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최소대립쌍 단어를 찾고 거기에서 무엇이 변별단위인지 파악한 후 그걸 phoneme inventory으로 정리하는 작업은, 언어연구 초기에 진행되는 작업입니다. 

 

이미 phoneme inventory가 [B]로 주어진 상태에서, 최소대립쌍 찾고 거기서 변별단위를 파악하는 도대체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굳이 흠을 잡자면 이문제는 재미도 없고 시간만 많이걸리는 문제가 되어버렸는데, 사실 제가 무슨말을 하겠습니까. 출제위원도 아니고 출제위원 자격도 아니고 수능을 본지도 오래된 사람인걸요.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의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한국어에서 통시적으로 단모음이 이중모음화 된 것에 대해 문제를 내셨으면 (저같은 사람들에게는) 더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1. 이재강. 1998. 한국어 모음에 대한 한국인과 일본인의 대조 연구. 언어학 22. 347-369 [본문으로]
  2. Eychenne, J., and Jang, T. Y. 2015. On the Merger of Korean Mid Front Vowels: Phonetic and Phonological Evidenc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Speech Sciences Vol, 7(2). 119-12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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