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요약
한국어에는 반모음/활음 [w]와 [j]가 있습니다. 한국어에서 이 말소리들은 음절핵의 일부로만 출현합니다 (김진우 2008). 반모음/활음이 음소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정해진 결론이 없습니다. 활음이 음소라는 뜻은, [w]와 [j]가 (핵모음과 상관없이) 의미변별의 최소 단위라는 것이고 활음이 음소의 지위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반모음-핵모음의 결합인 이중모음이 의미변별의 최소 단위라는 것입니다. 1
한국어에서는 반모음이 음절핵의 일부로만 출현하기 때문에, 단모음과 대치한 것인지 아니면 반모음이 제거된 것인지 불분명합니다. (예컨대, "얼음-여름" 쌍에서 같이 ㅓ-ㅕ가 교체된 것인지 아니면 [j]의 유무에 따라 다른 단어가 되는 것인지 불분명합니다.) 다만, 음소배열이나 형태론 패턴 등을 통해 논증할 수 있습니다. 또한 활음이 음소라면 음운부 차원에서 핵모음과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단위일 것입니다. 반대로 활음이 음소가 아니라면, 한국어에서 이중모음이 통째로 음운론적 단위로 기능할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우선 이동석 교수님의 논문 "국어의 반모음은 음소인가" [논문링크]를 읽어본 다음, 이 주제를 탐구한 다른 논문들도 살펴봅니다.
목차
1. 이동석 (2021)
교원대 국어교육과 이동석 교수님의 "국어의 반모음은 음소인가" 논문을 보았다. [논문링크]
한국어에 이중모음은 조음음성학적 제스처에 따라 활음(반모음)+모음으로 분석된다. 이때 활음(반모음)이 음소인지의 여부가 쟁점이다.
한국어의 반모음은 [j]와 [w] 두가지다.
[j]는 ㅑㅕㅠㅛ의 초반 제스처,
[w]는 ㅘㅚㅟ의 초반 제스처.
이 두 말소리가 음소적 지위를 갖는지는 흥미로운 이슈이다. [j]와 [w]가 음성학적으로 의미있는 제스처라는 것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지만, 이것들이 음운론적인 기능을 하는 음소인지 여부는 다른 문제이다. 난 국어학자가 아니라서 다만 한국어 음성음운론자들의 reference grammar, 특히 신지영 교수님의 체계를 전제하고 한국어를 연구해왔다. 신지영 교수님의 시스템에서는 이중모음을 구성하는 활음과 단모음 모두 음운론적 단위로 전제한다. 2
그러나 반모음의 음운론적 지위 문제는 나중에 짬이 난다면 좀 더 자료를 찾아보고 싶다. 일단 이 글에서는 논문을 읽자.
이 논문에서 이동석 교수님은 ㅑㅕㅠㅛ를 구성하는 [j]와 ㅘㅚㅟ를 구성하는 [w]를 음소로 취급할 수 없고, "이중모음" 단위를 음소로 볼 것을 주장한다. ('ㅢ'에 대한 분석은 다루지 않았다. 골치아픈 ㅢ 모음 문제에 대해서는 여기참조.)
"이중모음은 하나의 음소이다"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이 논문에서 제시하는 논거는 두가지이다.
- 첫째: ㅚ와 ㅟ의 음가가 단일 제스처와 이중 제스처 간 자유변이(free variation)를 보인다. 예컨대, ㅟ의 음가는 단일 제스처인 [y] 와 복합 제스처인 [wi]가 자유변이를 보인다. 따라서 [wi]를 allophone으로 보아야 하고 그러면 [w]는 음운론적 지위를 갖지 못한다.
- 둘째: 보상적 장음화(Compensatory Lengthening)의 존재. 예컨대, /ki - ə/ → /kjəː/ '기어 -> 겨'의 활용이 있는데, "모음의 길이가 길어지는 현상은 단순히 단모음 /i/가 [j]로 교체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이중 모음이 한 단위로서 장음이 된것"이라고 한다. 한편, 교체가 수반되지 않는 '뜨어→떠' 같은 경우는 보상적 장음화가 안 일어난다.
나는 사실 두 논거 모두 완전히 납득하기는 어려웠다.
첫째 논거와 관련하여, [y~wi] 변이는 통시적 변화 과정에서 임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이 변이는 완전히 종료되어간다. 아주 나이든 세대가 아니고서는, 특히 초성에 자음이 있는 경우 [y]라고 *절대* 발음하지 않는다. "뒤", "귀", "뛰뛰빵빵" 등에서 반드시 이중모음으로만 발음한다. 아주아주 천천히 이 단어들을 발음하면 '두우우이이이이이', '구우이이이이이', '뚜우이이이이이' 가 되지 않겠는가.
또한, 보는 관점에 따라 반드시 단일 제스처와 복합 제스처가 allophonic한 관계에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phonologization 연구자들은 ㅟ의 음가가 옛날 /y/ 에서 오늘날 /wi/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면서 (만약 [w]가 이미 음소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w]가 음소화되고 있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
결정적으로, [w] 계열 이중모음 중 'ㅘ'의 경우가 있다. 'ㅘ'는 논문에 근거로 제시된 다른 이중모음들과는 달리 단모음과 이중모음형 사이의 변이가 존재하지 않고 오직 [wa]로만 소리난다. 그래서 "조음적 제스처 상으로 분리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w]를 음소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은 지지받기 어렵다.
첫째 논거와 관련하여 이 논문에서 빼먹은 것이 한 가지 있는 것 같은데, 한국어의 반모음은 [w]뿐만 아니라 [j]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j]에도 과연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예컨대 ㅑ 에 대해서 [ja]가 [a] (혹은 어느 단모음)랑 자유변이 관계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실 논문에서 언급은 안 되지만, 첫째 논거는 영어 음운론에서 False diphthong (음성학적으로 이중모음이지만 음운론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 논증하는 방식을 잘못 적용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영어에서 /e/ (BAY 모음)과 /o/ (LOW 모음)는 음성학적으로만 이중모음이다. BAY모음과 LOW모음은 단일 제스처 [e], [o]형과 복합 제스처 [eɪ], [oʊ]형이 자유변이를 이룬다. 따라서 parsimonious하게 말해서 이 모음들은 뒤에 나오는 상향 제스처가 음성학적 이유로 추가된 것일 뿐이고, 제스처 각각이 음운적 단위를 가진다는 논리이다. 만약 이 논문의 논리대로라면 BAY모음과 LOW 모음의 사례만을 들어 "영어에서 [ɪ]와 [ʊ]는 음소적 지위를 갖지 못한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나 /aɪ/ (BUY 모음) /aʊ/ (OUT 모음) /oɪ/ (BOY 모음)의 경우, false diphthong 논증이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영어에서 /ɪ/와 /ʊ/는 변별적인 단위 즉 음소이다.
첫째 논거와 관련하여서, 결국 확실한 것은 [j]와 [w] 중에서 "[w]를 음소로 볼수 없다" 정도만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마저도 ㅘ의 경우 공시적 변이가 존재하지 않고 오직 [wa]로만 소리난다는 점에서 [w]를 음소로 볼 수 없다는 것도 지지받기 어렵다.
둘째 논거와 관련해서는 순환논리로밖에 보이지 않고 사실 이 논문에서 보상적장음화 논지가 잘 이해되지 않아서 자세히 살펴보기가 어렵다. 아마도 내가 이미 확고한 결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보다. 그리고 이 부분은 잠깐 스쳐지나가듯 언급만 되고 있어서 한국어의 보상적장음화에 대해 정확하게 어떤 분석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보상적장음화에서 *보상적* 이라는 것은 주어진 prosodic structure에서 분절음(segment) 이나 박(mora) 단위에서의 축소가 수반된 작용이 있다면 이에 대한 *보상*으로 모음길이가 길어지는 것 아닌가? 따라서 두 가지 쟁점이 있을 것이다. 첫째: 한국어의 모음이 분절음 단위인지, 박 단위인지 그리고 둘째: 보상적장음화에서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반모음(glide)의 출연(Glide Formation이라고 전제) 이 어떤 작용인지. 이 두가지 쟁점에 대해 어떤 전제를 하느냐에 따라 보상적장음화 자체는 이중모음의 지위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참고로 서울대 이호영 교수님의 박사논문이 생각나고 특히 한 챕터 전체가 보상적장음화에 대해 다루었던 걸로 기억한다. Lee, H. Y. (1990). The structure of Korean prosody. (PhD dissertation). University College London.
"반모음은 음소인가?" 라는 질문 자체를 해본적이 없었기에 상당히 흥미로운 논문이었다. 나는 이 논문의 논거와는 다르게 "반모음은 음소다"라는 생각이지만, 반드시 음소여야 하는 논리가 없다. 내가 사용하는 한국어 표준문법(reference grammar)인 신지영 교수님 책에서도 이중모음을 활음+단모음의 결합으로 전제하는데, 그 이유는 음소목록(phoneme inventory)의 경제성에 기반한다.
2. 반모음/활음의 지위
여기서부터는 이동석 교수님의 논문과는 관계없이 한국어의 '반모음'/'활음'이 가지는 음운론적 지위에 대한 선행연구 몇편의 견해를 정리한다.
참고로, 반모음/활음의 음운론적 지위는 언어보편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개별언어에 따라 차이가 있다. 즉, 음성학적 문제가 아니라 음운론적 문제다. 반모음/활음이 명확히 음소인 언어는 광동어와 영어 등이 있다. 반모음/활음이 반드시 모음의 구성요소로만 존재하고 독립적인 단위가 될 수 없는 언어는 만다린(표준중국어) 등이 있다.
2.1. 반모음은 독립된 음운론적 지위를 갖지 못하고 이중모음의 부속으로만 존재한다.
부연하자면, 자음 /t͡ʃ/ 에서 /t/와 /ʃ/가 각각 음운론적 단위가 아니지만 음성학적으로 나뉠 수 있듯이, 이중모음 /ja/에서도 /j/와 /a/도 음운론적으로 나눌 수 없고 음성학적으로만 나뉠 수 있다.
김진우 교수님이 쓰신 논문 '국어 음절론' [논문링크] 에서 반모음에 대한 논의가 잠깐 나온다. 정확하게는 반모음이 음절두음(onset)의 지위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간략하게 다룬다. 만약 반모음이 다른 자음들처럼 단독으로 음절 두음의 지위를 가질 수 있다면 반모음은 독립적인 음운론적 위상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반모음은 단독으로 음절두음이 될 수 없다. 영어에서는 반모음이 단독으로 음절두음이 된다. white [waɪt], year [jiɹ]등. 따라서 한국어에서 반모음이 음절두음이 못 된다는 사실은 반모음이 부속적인 단위(즉, 음운론적으로 영양가가 없는 음성적 실현)라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도깨비말' / '귀신말' 의 사용 양상도 반모음의 정체에 대해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도깨비말'은 이 글에서 다룸) 손향숙 교수님의 UIUC 박사논문 3[논문링크] 에서 소개된 양상을 보면 '야구'를 도깨비말로 '야뱌구부' 라고 한다고 한다. 즉, 도깨비말에서 이중모음도 단모음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단위로 행동한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오늘날의 많은 한국어 화자들은 '야구'의 도깨비말로 '야바구부'라고 한다.
2.2. 반모음은 독립된 음운론적 지위를 가진다.
glide가 독립된 음운론적 지위를 가지는 언어 가운데 비근하게는 영어가 있다. 관사 the의 발음이 이형태를 가지는데 모음 앞에서는 [ði], 자음 앞에서는 [ðə]이다. 그런데 the universe, the whale 와 같이 명사 단어 첫 음소가 [j], [w]인 경우 the의 발음은 자음으로 시작하는 명사의 패턴을 따라서 [ðə]가 된다.
한국어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있다. 남성현&김선회 (2015) 4[논문링크]에 보면 한국어 조사 이형태 선택에 관한 흥미로운 관찰이 나온다. 다른 격조사들과 달리 공동격조사(-와/-과)의 선택이 예외적이라는 것이다. 공동격 조사 -와/-과 는 이중모음이 포함되어 있다.
주격조사 (-가/-이), 대격조사 (-을/-를) 등을 선택할 때, 체언이 자음으로 끝나느냐 모음으로 끝나느냐가 중요한 요인이다. 체언이 자음으로 끝나면(즉, 받침이 있으면)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를 선택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음으로 시작하는 조사를 선택한다.
- -가/-이: 고기가, 밥이
- -를/-을: 고기를, 밥을
- -는/-은: 고기는, 밥은
그러나 공동격조사 와/과의 경우 선택이 반대이다. 체언이 자음으로 끝나면 자음으로 시작하는 '-과'가 이어지고, 체언이 모음으로 끝나면 모음으로 끝나는 '-와'가 이어진다.
- -와/-과: 고기와, 밥과
- -과/-와: *고기과, *밥와
한국어 격조사 이형태 선택은 모음연쇄를 피하는 OCP의 효과이다. '모음 회피 OCP 효과'라는 개념어를 조금 부연해서 말하자면 이렇다. 고기, 밥 같은 체언의 가장 끝에 모음이 나오고 그 뒤에도 모음이 나온다면 음운부에서 적절한 자음을 삽입한다. 그런데 공동격조사 -와/-과의 분포를 보면, 특히 '고기와'와 같이 /ㅣ/ 모음과 /ㅘ/ 모음이 연쇄하는 것이 가능하다. 5
만약 /ㅘ/가 하나의 덩어리로 '모음'이라는 음운론적 단위(음소)라면, "고기와"에서 모음 /ㅣ/ 뒤에 또다른 모음 /ㅘ/가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동격조사만 특별하고 예외적이고 유별나게 모음연쇄가 가능하단 말인데, 이론적으로 아름답지 못하다.
대신 이렇다면 어떨까? /ㅘ/ 모음의 구성요소 반모음/활음 [w]가 독자적인 음운론적 단위인 음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w/가 '고기-가', '고기-를' 할 때의 [k], [l]와 같은 자음과 자연부류를 이루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w/가 음소이고 더 나아가 OCP의 측면에서 모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반모음 /w/는 음절핵의 핵심인 /a/와 독립적으로 음운론적 효과를 유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w/는 독립된 음소가 되어야 한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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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우. 2008. 국어 음절론. 한글 282, 5-33. [본문으로]
- 신지영. (2016). 한국어의 말소리. 서울:박이정 [본문으로]
- Sohn, Hyang-sook. 1987. Underspecification in Korean phonology, (PhD dissertation)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본문으로]
- 남성현, 김선회. (2015). 제약서열과 사용빈도: 한국어 Cwa 연쇄의 경우. 언어연구, 31(3), 605-627. [본문으로]
- 혹은 최적성이론 식으로 말한다면, 모음이 이어지는 후보형은 OCP 제약을 위반하고 중간에 자음이 있는 형태가 더 조화롭다. [본문으로]
- 즉, [w]가 아니라 /w/.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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