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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분위기 언어학

"미쳤어서" "발려져있다": 선어말어미의 선택

sleepy_wug 2022. 10. 6. 09:04

 

이 포스팅은 아래의 유튜브 영상에 나오는 선어말어미의 과잉 선택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가장 처음부분 자막 "얼굴 트러블 미쳤어서 연고가 발려져있어요" 에서 사용된 선어말어미들이 화용론적 이유로 부착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요지입니다.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자막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간단히 현상을 스케치합니다. 즉, 본격적인/정확한 분석이 아니라 현상을 포착하는 것입니다. 더 세밀한 분석을 나중에 할 수도 있고, 혹은 이 글을 읽는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도록 소개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아래의 스크린캡처는 위 유튜브 영상의 가장 처음 부분에 나오는 것입니다. "생리 직전이라 얼굴 트러블 미쳤어서 연고가 발려져있어요" 라는 코멘트가 자막에 달려있습니다. 입말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한 계획을 거쳐 삽입된 자막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해당 자막에서 선어말어미 '-었', '-지', 등은 통사론/음운론적 기능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아마도 화용론적 이유에서 삽입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얼굴에 연고가 발라져있는 / 발려있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는 코멘트로 보이는데, "생리 직전이라 얼굴 트러블이 미쳐서 연고가 발리어있다"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담백해보입니다. 이때 담백하다는 의미는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통사적 음운적 목적을 위하여 최소의 문법장치만을 사용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baseline(기준)으로 삼으면 실제 사용된 표현에는 선어말어미가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baseline: 얼굴 트러블이 미쳐서 연고가 발리어있다.

 

선어말어미가 부착된 용언 '미치-' 와 '바르-' 인데, baseline에서 부착된 선어말어미와 실제표현에서 부착된 선어말어미를 아래와 같이 비교할 수 있습니다. 밑줄 친 부분은 통사/의미적 기능을 하지않은 음운론적 어미이고 굵게표시한 것은 실제발화에서 추가된 어미입니다. 용언어간은 괄호안에 있습니다.

a. ('미치-'): '-어'
a'. ('미치-'): '-어', '-ㅆ', '-어'

b. ('바르-'): '-리', '-어' '-있'
b'. ('바르-'): '-리', '-어' '-지' '-어' '-있' 

 

밑줄친 선어말어미는 음운론적 이유로 자동으로 삽입된 것이기 때문에 흥미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a'에서 사용된 과거형어미와 b'에서 사용된 피동어미는 부가적인 부분이고 흥미롭습니다. 이제 흥미로운 것들을 차례차례 살펴봅시다.

 

1. 미치-었어서

a'. ('미치-'): '-어', '-ㅆ', '-어'

a'에 사용된 과거형 선어말어미 -ㅆ은 과잉인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뒤에 이어오는 용언 '바르-'와 시제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아래 c.와 같은 사용은 비문이고 c'.와 같이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c. * "발이 컸어서 예쁘다"
c'.   "발이 커서 예쁘다"

 

또한 다음과 같은 경우를 통해 -었 이 과잉인 이유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현대한국어에서 (특히 인터넷 상에서) 명사어미로 문장을 종결하는 용법이 가능합니다.

"우리 남편은 발이 큼." "그래서 예쁨." 등입니다.

이러한 용례를 따라서 "(오늘) 얼굴 트러블 미침" 과 같이 표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미치었어서 에서의 -었 은 과잉으로 여겨집니다.

 

 

"미치어서" 에 관해서 두 가지로 추측합니다.

 

첫째, "미쳤다" 전체가 형용사로 재해석되었다. '미쳤-' 이 그 자체로 '크-' 와 같이 형용사 어간으로 자리잡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쳤어서"는 과거형 선어말어미가 붙은 것이 아니라 형용사 어간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둘째, 한국어의 이중과거형과 유사한 용례?

한국어의 이중과거형은 "클럽에 갔었었었다."와 같이, 묘사하고자 하는 사건과 발화시점 사이에 거리를 두고자 할 때 사용됩니다. 따라서 "피부 트러블이 미친(=심각한)" 상황과 발화시점 사이에 거리를 두고자 하는 화용론적 목적에 따라 '-었'을 삽입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발리어-지-어-있다

b'. ('바르-'): '-리', '-어' '-지' '-어' '-있' 

b'에서 사용된 피동어미 -지 는 과잉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피동어미 '-리'가 부착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 피동의 의미를 표현하는 의미론적 이유에 더하여 첨가된 것이기 때문에 화용론적인 사유인 것으로 여겨집니다.[각주:1] 

말하자면 이런것입니다. 아래의 두 문장은 모두 문법적이고 의미론적으로 동일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화용론적으로 d'의 경우 화자의 개입을 수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d. 홍길동은 결국 잡혔다.
d'. 홍길동은 결국 잡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발리어어있다'의 경우도 화용론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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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중피동에 관해서는 간단히 찾아보니 전영철 (2008) 논문이 나오네요. 전영철. (2008). 소위 이중피동문에 대하여. 언어학, 52, 79-101. http://uci.or.kr/G704-000314.2008..52.00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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