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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분위기 언어학

질의 격률 위반 사례 코쿤의 평양 작업실

sleepy_wug 2022. 9. 4. 16:31

이 포스팅은 아래의 대화 맥락에서 코드쿤스트가 대화 격률 중 하나인 '질의 격률'을 위반하는 사례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유튜브 영상과 대화 전사가 아래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2022년 9월 2일 MBC 나혼자산다 에 나온 장면입니다.

 

 

김지훈: 그래서 작업실이 어디에요?
코드쿤스트: 평양에 있습니다.
(일동 웃음)

 

0. 요약

작업실이 어디냐는 게스트 김지훈의 질문에 대한 코쿤의 대답 "평양에 있습니다" 는 질의 격률(Maxim of quality)을 고의로 위반(flouting)한 사례이다. 코쿤은 이를 통해 화용적 효과를 유발한다.

 

 

 

1. 화용론의 대화격률

언어학의 분과 중 화용론(Pragmatics)은 언어표현이 문자적 의미를 넘어 실제로 활용되는 양상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화용론자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 중에서는 '체면'이나 '예의', '공손', '겸양' 등이 있는데, 이런 토픽들은 언어표현을 어떻게 잘 구사해서 원만한 사회관계를 유지하는지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때에는 예의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너무 직설적이고 문자적인 언어표현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이럴 때 '대화격률'(conversational maxims)을 '고의적으로 위반'(flouting)하는 방식이 사용된다. 둥글게 잘 말하면서도 본인의 의사를 전달하는 사회적 기술인 것이다.

 

대화격률은 두 사람이 대화할 때 서로 암묵적으로 지킬 것이라고 전제하는 여러 사항들을 말한다. 그라이스 격률(Gricean Maxims)이라고도 하는데, 네 가지 명제로 구성되는 것이 기본적이다. 이것들은 그냥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상대가 지키리라고 전제하는 것이다.

  • 양의 격률(Maxim of quantity):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필요한 정도의 말을 한다."
  • 질의 격률(Maxim of quality):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근거가 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 관련성의 격률(Maxim of relevance): "대화의 맥락에 적합한 말을 한다."
  • 태도의 격률(Maxim of manner): "애매모호한 말을 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말한다."

 

예컨대,

지영: "민준아 안녕? 밥 먹었니?"
민준: "응. 먹었어. 학생식당에 돈까스 나왔는데 맛있더라."

라는 대화쌍이 있다고 했을 때, 지영이랑 민준이는 당연히 상대방이 위의 네 가지 격률을 지키면서 말을 했다고 기본적으로 전제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밑도끝도 없이 지영이가 '아마 민준이는 밥을 안 먹었는데 거짓말로 나에게 밥을 먹었다고 했을 것이야.' (질의 격률 위반) 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지영이가 비정상적이거나 혹은 그렇게 생각할 특수한 맥락 이 있다는 의미다.

물론 민준이는 4가지 격률 중 어느 하나라도 위반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맥락이 필요하다. 부연해서 말하자면, 민준이의 말은 질의 격률을 위반했을 수도(밥 안먹었는데 먹었다고 함), 양의 격률을 위반했을 수도(단순히 식사 여하 이외에 어디서 먹었는지 추가정보를 제공함), 관련성의 격률을 위반했을 수도(밥에 대해 물었는데 돈까스 얘기함), 태도의 격률을 위반했을 수도(밥을 먹었는지 여부와 학생식당의 돈까스 맛있는 건 서로 상관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은 혼란을 야기함) 있다. 즉, 격률은 통사론이나 음운론의 규칙처럼 철저하게 이분법적으로 위반/충족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 회색지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대화라면 기본적으로 서로가 격률을 지켰다고 전제한다.[각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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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대방도 알 수 있도록 일부러 격률을 의도적으로 깨뜨리는 상황도 존재한다. 이를 flouting 이라고 하는데, 그 결과 화용론적 효과가 발생한다.

 

2. 대화격률 일부러 깨뜨리기(flouting)

다시 코쿤의 대화로 돌아가보자.

 

김지훈: 그래서 작업실이 어디에요?
코드쿤스트: 평양에 있습니다.
(일동 웃음)

 

현재 한국의 스튜디오에 있는 사람이 작업실을 평양에 두는 것은 매우 불가능하다. 이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쿤은 "작업실이 평양에 있다"고 거짓말(질의 격률 flouting)을 한다. 거짓말임을 모두가 알고있고, 코쿤 자신도 그것이 거짓말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것을 안다. 

 

격률을 깨뜨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직접적/문자적인 표현, 즉 "당신에게 내 작업실을 알려주기 싫다" 를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고 상대방의 체면을 상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언어사용을 위해서는 의사전달을 하면서 애둘러서 표현을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말하면 원래의 의사표현은 소위 행간에 담기게 되어버린다.

 


 

이것은 한국어에서 질의 격률을 위반한 아주 유쾌한 사례이다. 이 flouting이 잘 작동했다는 증거는, 현장의 그 누구도 이것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모두 유쾌하게 웃으며 행간의 의미를 읽었다는 데 있다.

 

만약 격률 위반으로 발생하는 효과를 읽어내지 못하고 "왜 코쿤은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해?"라고 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말귀를 잘 못알아듣는 사람,' '사회적지능이 떨어지는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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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건 지영의 발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영이가 4가지 중 한 격률을 위반했다고 민준이가 해석하는 상황도 가능하다. 다만, 마찬가지로 특수한 맥락이 필요할 뿐. "지영이가 나 좋아하나봐"라고 해석하는 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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