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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분위기 언어학

'초등학생 때 자기소개 공감'을 "언어학"해보자

sleepy_wug 2022. 11. 8. 08:07

0. 요약

이 게시글은 예전에 유행했던 '초등학생 자기소개 공감' 게시글을 음운론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아래와 같이 초등학생이 자기소개하는 말소리를 악보로 표현한 게시물이 유행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었습니다. 많은 한국어 화자들이 공감했다는 것은 이것이 한국어의 본질에 가깝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 인기글을 계기로 한국어의 prosodic structure (운율구조)를 생각해봅시다.

 

초등학생 자기소개 공감

 

1. '가르친' 것인가?

초등학생 자기소개 공감 이미지는 2013년 네이버 웹툰 '어른스러운 철구'에서 처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2010년대의 새로운 모습이 아닙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주 오랜 옛날) 에도 자기소개의 양식은 동일했습니다. 

단순히 선생님이나 부모가 가르친 것이라면 이렇게 동일한 양상으로 나타나기가 어렵습니다. 우선 아동의 학습능력이 제각각이고, 선생님과 부모 역시 모두 동일한 템플릿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해야 하는데, 이러한 전제는 지지받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누가 가르쳐서 다들 저렇게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고, 한국어의 운율구조(prosodic structure)를 반영하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이미지의 출처는 동아일보 기사 [링크] [아카이브] 입니다)

좀 더 길게 소개된 버전

 

2. 분석해봅시다

위에서 소개된 '악보'를 음운론에서 흔히 사용되는 분석 틀로 다시 전사해봅시다. 저의 전공은 음운론이지만, 연구분야는 음절이하 단위입니다. 따라서 운율단어(PrW, prosodic word)나 억양절(IP, intonational phrase) 등을 잘 모릅니다. 따라서 위에 나온 구조에서 특정한 운율단어(PrW, prosodic word)를 주어진 것으로 가정하고 이것을 박, 음절, 그리고 음보(foot)으로 나누어보겠습니다.

 

2.1 분석의 도구: 박(mora), 음절(syllable), 음보(foot)

우선 제가 사용할 분석 단위에 대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것들은 한국어나 기타 개별언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일반언어학의 음운론에서 사용하는 말소리의 구성 단위입니다. 음운론에서는 개별적인 음소(phoneme)가 독립적으로 나열된 게 아니라 큰 단위로 결합하여 큰 구조를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소설책에서 글자 하나하나가 모여서 단어를 이루고, 단어가 묶여서 문장이 되고, 문장이 문단으로, 문단이 장(章, chapter)으로, 장이 모여서 한권의 책이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음운론에서 상정하는 음소보다 큰 단위들에는 박, 음절, 음보, ... 등이 있습니다. 박-음절-음보로 갈수록 큰 단위입니다. 물론 음보보다 더 큰 단위로서 운율단어, 억양절 등이 있으나 여기서는 다루지 않습니다. 또한 이것은 제가 여기에서 정의하는 것이므로 보편적인 개념은 교과서를 참고해주세요. 

  • 박(mora, μ): 음절구조 상에서 음절 무게(weight)를 담당하는 단위입니다. 흔히 그리스어 알파벳에서 m에 해당하는 μ를 사용해서 표현합니다. μ가 1개면 경음절(weak syllable), 2개면 중음절(heavy syllable)이라고 부릅니다.[각주:1]
  • 음절(syllable, σ): 음절은 말소리의 덩어리입니다. 라틴 알파벳의 s는 그리스어에서 σ인데 그래서 음절을 σ로 표현합니다. 한국어의 경우 대부분의 경우 (즉, 다음절어에서 초성에 ㅇ이 있는 경우를 제외한 모든 경우) 한 글자가 그대로 음절이 되므로 한국어 독자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개념일 것입니다. 언어학의 모든 단위가 그러하듯, 음절 역시 핵(head)이 있습니다. 대표자 같은 거에요. 박 단위로 음절을 분석한다면, 음절의 핵은 자연스럽게 μ이 됩니다.[각주:2]
  • 음보(foot): 음보는 음절들이 모여서 구성하는 한단계 높은 단위입니다. 중고등학교 국어교과과정에서 시를 다룰 때 사용하는 음보 개념과는 조금 다릅니다. 흔히 괄호를 이용해서 (σ σ) (σ σ) 와 같이 표현합니다. 음보는 하나의 강음절을 핵(head)으로 가지는 단위이고, 왼쪽 음절과 오른쪽 음절 중 무엇이 핵이냐에 따라서 iambic 혹은 trochaic으로 나뉩니다. 언어에 따라 iambic foot을 가지는지 혹은 trochaic foot을 가지는지가 다릅니다.
    • iambic foot는 약음절-강음절 로 구성되는 음보로 (σ σ) 와 같이 표현합니다. 강음절을 강조한 표기방식입니다.
    • trochaic foot는 강음절-약음절 로 구성되는 음보로 (σ σ) 와 같이 표현합니다.
    • (이쯤되니 "안 하세" 는 iambic foot이라는 걸 눈치채신 분들도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이거 이 글에서 엄청 중요해요. 보통 2단계 이상 내리지 않는데 2단계 ● 까지 써가면서 설명하는 거면 제 입장에서는 강조하고 있는거에요.)

 

2.2 진짜로 분석해보기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자른다"라는 속담과 비슷하게 영어에도 "If all you have is a hammer, everything looks like a nail"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망치를 가진 사람에게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 라는 의미입니다. 언어학자에게 μ, σ, ( σ σ ) 이런 것들은 망치이고, 언어자료는 못입니다. 2.1에서 망치를 쥐어주었으니 이제 못을 박아봅시다.

 

우선 주어진 문장은 "안녕하세요 어떤 초등학교 1학년 1반 이철구입니다" 입니다.

한국어에서 공명음 사이에 ㅎ이 탈락된다고 전제하고, 한국어의 운율단어(PrW, prosodic word)이 주어졌다고 가정한다면, 위의 문장은 아래와 같이 다시 쓸 수 있을 것입니다.

 

[PrW 안녕하세요] [PrW 어떤초등학교] [PrW 이락년일반] [PrW 이철구입니다]

 

자 이제 준비가 다 되었으니 망치로 두들겨보자고요.

운율단어 안.녕.하.세.요. 어.떤.초.등.학.교. 이.락.년.일.반. 이.철.구.임.니.다.
mora μμ. μμ. μ. μ. μ. μ. μμ. μ. μμ. μμ. μ. μ. μμ. μμ. μμ. μμ. μ. μμ. μ. μμ. μ. μ.
foot assignment μ. μμ.) (μ. μ. μ.) (μ. μμ.) (μ. μμ.) (μμ. μ.) μ. (μμ. μμ.) (μμ. μμ.) μ. (μμ. μ.) (μμ. μ. μ.)
iambic stress μ. μμ.) (μ. μ. μ.) (μ. μμ.) (μ. μμ.) (μμ. μ.) μ. (μμ. μμ.) (μμ. μμ.) μ. (μμ. μ.) (μμ. μ. μ.)
음절단위로 환원 하세 이락 이철임니

 

첫번째 줄에서 주어진 '운율단어'에 규칙들을 차례대로 적용해보니 맨 밑에 줄과 같이 예측했고, 이것은 실제 현상 (웹툰 스크랩한 것)과 일치합니다. 야호 성공입니다. 

.... 이제 차근차근 설명해보겠습니다.

 

3. 설명

첫번째 행 '운율단어'는 한국어의 상위단위로서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각 음절은 온점(.)으로 구분하였습니다.

두번째 행 'mora'는 각 음절 내부 μ를 표시한 것입니다. 한국어에서는 모음과 종성(coda)이 μ입니다. 따라서  "이철구입니다" 는 μ. μμ. μ. μμ. μ. μ  와 같이 표시될 수 있습니다. 풀어서 설명하면, 첫번째 음절인 '이'는 모음만 있으므로 μ가 1개, 두번째 음절인 '철'은 모음인 ㅓ와 종성인 ㄹ이 있으므로 중음절이고 μ가 2개입니다. '구' 역시 모음만 있으므로 경음절, 1 μ 입니다. '입'은 모음과 종성이 있으므로 중음절, 2 μ 입니다.

세번째 행 'foot assignment'는 음절 (온점 . 로 구분된 단위)을 음보 단위로 묶어주는 작업입니다. 한국어의 음보 묶어주는 기계가 있다고 치면 그 기계의 작동 방식은 바로, "오른쪽부터 시작해서 3개의 μ로 음보를 묶으면 좋은데 만약 안되면 최대한 조금 확장해서 묶어주세요" 입니다. 3개의 μ더라도 음절을 쪼개가면서 음보를 묶을 수 없는 이유는, 하나의 음절에 속한 μ끼리 서로 너무 친해서 갈라놓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앞서 언급한 '이철구입니다'를 음보로 묶어봅시다. 두 번째 행에서  μ. μμ. μ. μμ. μ. μ  로 mora 표기를 했습니다. 오른쪽 끝에서부터 차근차근 foot assignment 작업을 진행하면...

1단계 μ. μμ. μ. μμ. μ. μ) 오른쪽 끝에 괄호 넣기
2단계 μ. μμ. μ. μ(μ. μ. μ) 하나, 둘, 셋을 세고 괄호 닫아보... 려다가 실패ㅠ 
3단계. 음보 1개 완성! μ. μμ. μ. (μμ. μ. μ) 하나만 더 포함시켰을 때 음절단위랑 와꾸가 맞는지 확인하니 딱 맞음. 그래서 괄호를 닫기
4단계 = 1단계 μ. μμ. μ.) (μμ. μ. μ) 오른쪽 끝에 괄호 넣기
5단계 = 2단계. 음보 2개 완성! μ. (μμ. μ.) (μμ. μ. μ) 하나, 둘, 셋을 세고 괄호 닫기... 성공!
6단계 = 1단계 μ.) (μμ. μ.) (μμ. μ. μ) 오른쪽 끝에 괄호 넣기
7단계 μ.) (μμ. μ.) (μμ. μ. μ) 하나, 둘.... 둘을 세려다가 없어서 포기. 
8단계 = 끝 μ. (μμ. μ.) (μμ. μ. μ) 맨 앞 음절은 음보 배당이 안됨.

 

이제, 마지막 stress assignment의 순서입니다. 2.2 부분의 표에서는 iambic stress 라고 적었는데 그것은 한국어가 iambic stress를 가진다는 전제로 강세배당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언어에서 음보의 구조는 iambic 아니면 trochaic이라고 했습니다. 즉 강약 순으로 구성되거나 아니면 약강 순으로 구성됩니다. 한국어 아기는 태어날때부터 한국어를 듣는 습득과정에서 자신이 배워야할 언어가 iambic 인지 trochaic인지 파악합니다. 

 

만약 한국어가 iambic이라면, 각각의 음보는 약 으로 될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철구입니다"는 어떤 강세를 받게 될까요? 이 문장은 앞서 μ. (μμ. μ.) (μμ. μ. μ) 로 음보 배당이 되었습니다. 가장 오른쪽 음절에 강세가 떨어진다면 μ. (μμ. μ.) (μμ. μ. μ) 와 같이 될 것이고, 읽기쉽게 한글표기로 이를 바꾸어 보면 "이철입니" 가 됩니다. 실제로 보는 언어현상과 동일합니다. 한국어는 iambic stress를 가진 언어라는 걸 알수있습니다.

 

4. 진짜 재미있는 부분은 여기

4.1 외국인이 하는 한국어

그런데말입니다! 만약 한국어가 iambic이 아니라 trochaic stress를 사용하는 언어라면, 다시말해서 만약 약 구조의 음보를 가지는 언어라면 어떨까요? "이철구입니다"의 음보배당까지는 모두 동일할 것이고 다만 강세의 위치만 다를 것입니다.

즉, 

이철구입니다.
μ. (μμ. μ.) (μμ. μ. μ) 
μ. (μμ. μ.) (μμ. μ. μ)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지요. 한글로 바꾸면 "이니다." 가 됩니다. 왠지 낯이 익나요? 이러한 구조는 외국인이 하는 한국어라고 흔히 말하는 형태입니다. 언어에서 음보의 구조는 iambic 아니면 trochaic이라고 3번째 적습니다. 즉, 한국어랑 음보 구조가 다른 외국어를 모국어로 한다면, 한국어를 말할 때 "이니다." 라고 말할 가능성이 있겠죠?

 

5. 결론: 한국어에 대해 알수 있는 사실들

지금까지 초등학생 자기소개 공감물을 가지고 한국어의 운율구조를 분석해보았습니다.

분석에 사용한 도구 (운율단위) 들은 한국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범언어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이 분석을 통해 한국어에서는 "약강" 순서의 음보를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기본적으로 σ 3개를 음보로 배당하되, 불가능할 경우 σ 4개까지 음보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진짜 어린이의 말소리를 살펴볼까요? 아래 동영상에 나오는 귀여운 어린이의 발화가 분석 대상입니다. 

 

 

원출처는 2019년 3월에 올라온 동영상으로서, 비교적 최근에 포착된 어린이 발화입니다. 본 포스팅에서 상세하게 분석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에 나온 어린이의 발화 역시 3박 단위로 음보를 구성하고 iambic stress를 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형화된 "XX초등학교 X학년 X반 XXX입니다"의 자기소개가 아니라 매우 긴 형태인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발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어디에 강세를 주어야 하는지"까지 통째로 외웠다고 말하기에는 힘들정도로 내용이 깁니다.

 

 

6. 읽을만한 관련논문

  • Poppe, C. (2017). The Role of Foot Structure in Korean Accent Systems. Journal of Asian and African Studies, 94, 319-344. 
    • 이 논문에서는 본 포스팅과 동일하게 현대 서울 한국어가 iambic feet를 가진다고 제안한다.
    • 그러나 본 포스팅에서 분석한 'accent'는 lexical level이 아니라 더 상위 단위에 부여되는 것으로 보고있다. 사실 해당 악센트는 어휘강세가 아니므로 이렇게 보는 게 이론적으로는 더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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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떠한 언어가 한 음절에 3개의 박(mora)를 가질 수 있는지 여부는 사실 학계에서 논란의 대상입니다. Estonian 등 μ를 3개 상정해서 분석하는 언어들이 있지만,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본문으로]
  2. 만약 [Onset [Rhyme [Nucleus] [Coda] ] ] 구조로 음절을 표현한다면 Nucleus 혹은 Rhyme이 음절의 핵이 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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