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모음(diphthong)은 두 모음 제스처가 하나의 모음 음소로 존재하는 경우입니다.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두 제스처 중에서 앞의 것이 더 지배적일 경우와 뒤의 것이 더 지배적일 경우입니다. '지배적인 모음 제스처'를 핵이라고도 합니다.
음소의 개념과 자음 모음의 개념이 심리적이듯, 이중모음을 구성하는 두 제스처 중 무엇이 핵이냐의 문제도 궁극적으로 물리적이라기보다는 심리적 개념입니다.
영어의 boy 모음처럼 /o/ 혹은 /ɔ/ 가 더 길고 크게 소리날 경우, 앞의 것이 핵입니다. 이런경우 이중모음을 조음할때 갈수록 소리가 작아지고 저명성도 낮아집니다. 따라서 이런 모음을 '하향이중모음' (descending diphthong)이라고 합니다. 조음점이 고모음에서 저모음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하향이중모음이 아니라, 소리의 크기나 음소로서의 저명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하향이중모음입니다.
한국어의 '야,여,요,유'를 발음할 때처럼 앞부분의 '이' 비스무래한 부분이 짧고 작게 소리나고 뒷부분의 모음이 크게 소리나는 경우는 반대로 '상향이중모음'(ascending diphthong)이라고 합니다. /ㅢ/는 차치하고, 한국어의 이중모음 '야,여,요,유,와,워'는 모두 상향이중모음입니다.
문제는 현대 한국어에서 /ㅢ/를 상향이중모음으로 볼 것인지, 하향이중모음으로볼 것인지입니다.
/ㅢ/는 조음점이 /ㅡ/ 비슷한 부분으로 시작하여 /ㅣ/ 비슷한 부분으로 진행합니다. 만약 /ㅡ/ 부분이 핵이라면, /ㅢ/는 하향이중모음일 것이고 /ㅣ/ 부분이 핵이라면 상향이중모음일 것입니다. 각각을 IPA로 나타내면 /ɯj/ 혹은 /ɰi/ 겠지요.
두가지 입장 모두 가능한데, 어떤 입장을 취하든 문제가 있습니다.
/ㅢ/가 하향이중모음 /ɯj/라면, 즉 '으.....'를 저명하게 발음하다가 짧게 '이' 하고 끝난다면 (혹은 그렇다고 심리적으로 간주된다면), /ㅢ/는 한국어의 유일한 하향이중모음이 될것입니다. 왜냐하면 /ㅢ/를 제외한 한국어의 이중모음들은 전부 상향이중모음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ㅢ/가 상향이중모음 /ɰi/라면, 즉 짧게 '으'로 시작해서 '이....'가 크고 길게 이어진다면 '한국어의 이중모음은 모두 상향이중모음이다' 라는 일반화가 가능하고 음운론자들은 행복해집니다. 하지만 이 주장의 문제는 한국어의 이중모음을 구성하는 활음(glide)에 /ɰ/를 추가해야한다는 부담을 준다는 것이죠. 한국어의 다른 이중모음들의 활음부분, 즉 /ㅛ,ㅠ,ㅕ,ㅑ, ㅘ, ㅝ/의 앞부분 처럼 핵이 아니라서 저명성이 낮은부분은 모두 /j/ 아니면 /w/입니다. 왜 /ㅢ/만 유독 /ɰ/ 활음을쓰는걸까요? 심지어 /ɰ/는 범언어적으로 흔하지 않은 음소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입장을 취하든 /ㅢ/는 한국어에서 상당히 유표적인 음소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이유 때문에 /ㅢ/가 실제 어휘에서는 많은 경우 [i] 혹은 [e], 방언에 따라서는 [ɯ] 로 단모음화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를들어 '민주주의의 의의'는 '민주주[i] [e], 의[i]'라고 발음됩니다. '의의' 가운데 첫 '의'는 이중모음으로 발음되어서 따로 전사하지 않았습니다.
고려대 신지영 교수님의 '이중모음 /ㅢ/의 통시적 연구' 논문이 음운론적으로는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논문은 /ㅢ/가 상향이중모음 /ɰi/라고 주장합니다. 논점에 대한 정리도 잘 되어있고 논리도 탄탄하기 때문에 직접 읽어보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신지영. (1999). 이중모음 / ㅢ / 의 통시적 연구 ( A Diachronic Study on the Korean Diphthong / ㅢ ). 민족문화연구, 32(0), 473-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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