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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대로

호격조사로서의 '-님'

sleepy_wug 2025. 1. 28. 01:03

0. 요약

'그리스도님'은 오류인가?에서 이어지는 짧은 글입니다. 이전 글을 마치고 추가적으로 떠오른 질문을 탐구한 결과입니다.

 

 

'그리스도님'은 오류인가?

0. 요약 외래어 '그리스도'의 존대자질과 의존명사 -님, 그리고 규범주의 언어관에 관한 흥미로운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았습니다. 공유도 하고 생각해보려고 포스팅을 팝니다.  목차 1. 그리스

linguisting.tistory.com

 

 

목차

     

    1. 지난이야기

    시작에 앞서, 지난 글을 한번 정리하자. 한 신학도가 한국어 성경 번역인 '새한글성경'에서 '그리스도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신학적, 언어학적 논증을 했는데, 신학은 내가 잘 모르고 관심도 없지만 언어학적 논증은 이상한 냄새가 많이 났다. 나의 논지는 두 가지였다.

    1. '-님'의 부착이 협의의 언어에서 무의미하다.
    2. 나오는대로 다 말이 되는 건 아니므로, 주장하기에 앞서 관찰을 하고 또 생각을 해야 한다.

     

    두 번째 논지를 스스로 실천하기 위해서, 지난 글에서는 코이네 그리스어 Χριστός(크리스또스)가 한국어 성경에서 어떻게 번역되어왔는지 역사적 성경 번역 사례를 분석했고, 더불어 현대 기독교에서 '그리스도님'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관찰했다.

     

    한국어 성경에서는 '그리스도님'의 사용이 매우 제한적이었고, 이는 외래어 뒤에 -님을 붙이는 것이 한국어 문법적 직관에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했다. '예수님, 부처님'보다 '그리스도님, 석가모니님'은 부자연스럽다는 관찰이다.

     

    더불어 현대 기독교 맥락에서 '그리스도님'이 사용되는 사례는 기도문에서 그리스도를 호칭하는, 즉 호격 χριστέ(크리스떼)로 사용될 경우임을 확인했다. 예를들어 퀴리에(자비송)에 나오는 "χριστέ, ἐλέησον"(크리스떼 엘레이손)의 번역으로 천주교는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를 사용한다. 그리고 이것은 호격으로 '-님'을 사용하는 현대한국어 직관에 타당하다. (참고: 한양대 서정수 선생님의 글)

     

     

    2. 성경에서 호격 번역

    그렇다면 이 관찰들을 가지고 질문을 다시할 수 있다. 현대 한국어에서 호격으로 '-님'을 사용하는 것이 '새한글성경'에 반영되었는가?

     

    안타깝게도 나는 이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없다. 왜냐면 성경 본문 자체에서는 χριστέ가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딱 한번 출현한다고 나오는데, 그리스도를 비하하는 "그리스도야!" 정도로 나온다.

     

    마태복음서 26 68

    Προφήτευ-σον  ἡμ-ῖν  χριστέ
    예언하다-AMA2S 우리-DAT 그리스도-VOC
    "그리스도야 우리한테 예언해라"

     

    문법설명:

    • AMA2S로 마킹한 -σον 는 동사에 접미되는 굴절형인데 동사어간과 합해서 Προφήτευσον는 해석하자면 "예언해라" 정도다. 고대 그리스어에서는 접미사를 통해 인칭, 수, 상(相), 법, 태를 표현한다. -σον의 경우는 이렇다... 인칭: 2인칭; 수: 단수; 상: 아오리스트[각주:1]; 법:명령법; 태:능동태
    • DAT는 여격을 표시한다. 한국어의 '-에게'에 해당한다.
    • VOC는 호격을 나타내기 위해 썼다. "얘들아! 좀 쉬어라!" 할 때 붙는 -아! 가 한국어의 호격표시자이다. 이걸 안붙여서 "*얘들! 좀 쉬어라!"는 비문법적이다. "선생님! 좀 쉬세요!" 처럼 높임의 호격표시자는 "-님"이다.

     

    그렇다면 새한글번역에서는 이 비아냥거리는 의미의 호격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예언자처럼 알아맞혀서 우리에게 말해 봐, 그리스도야!"

     

    나는 이 번역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를 존중하기 위해 무조건 님을 붙여야 한다면, 진짜 이상한 번역이 되었을 것이다. "예언자처럼 알아맞혀서 우리에게 말해 봐, 그리스도님!" ㅋㅋㅋㅋㅋ

     

    심지어 해당 문장이 나오는 더 큰 맥락 전체를 옮겨오면, "새한글번역이 그리스도를 무시한다"라는 허황된 주장이 무색하게 대상에 대한 경외도 부족하지 않다. 

     

    그때에 그들은 예수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때렸다. 어떤 사람들은 뺨을 후려쳤다. 그러면서 말했다. “예언자처럼 알아맞혀서 우리에게 말해 봐, 그리스도야! 너를 갈긴 사람이 누구냐?”

     

     

    모문인 진술문에 나오는 예수-속격에는 (진술자 입장에서의 경외를 표현하는) -님 을 붙이고, 인용절에서는 대화맥락에 맞는 호격조사를 적절하게 사용했다. 이보다 훌륭하게 번역할 수 있을까?

     

    이은숙 수녀님이 그리신 십자가의 길 제1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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