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요약
연말이라 가벼운 글을 하나 썼습니다. (이 글은 2023년의 마지막 글입니다.) 이론언어학으로 대학원 공부를 하는 것은 머리가 좋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는 글입니다.
좋은 머리는 '문앞'까지만 데려다 주고, 그 이후 중요한 것은 '이상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론언어학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감이 안 오신다면, 자연과학과 공학의 차이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공학은 자연과학의 성과를 배워 실생활에 적용하거나 공학 자체내에서 연구한 성과를 응용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인공지능 분야 중 자연어처리나 응용언어학(응용언어학은 외국어 잘 배우는 법 이나 언어정책 1을 말합니다)은 이론언어학에 관하면 공학의 포지션입니다. 이론언어학은 자연어처리나 응용언어학에 관하면 자연과학의 포지션입니다. 2
목차
1. 좋은 머리는 '시작점'에 서게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분야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것입니다. 거짓말이거나 환상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당장의 먹고사는 실생활과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실생활과 관련이 적은 탐구를 하게 만드는 것은 다분히 '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인간언어의 모든 질문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사람이 다른 것에 흥미가 있거나 몸이 아프거나 갚아야 할 빚이 있다면 대학원에 진학하기 힘듭니다.
'좋은 머리'도 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머리를 타고 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머리가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으면 공부에 흥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학부에서 들은 과목에서 성적이 잘 나오면 '적성에 맞다'고 판단하고 더 공부해보고 싶다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건강상의 문제', '갚아야 할 빚', '다른 것에 흥미가 있음' 등이 그저 대학원 문턱을 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인 것처럼, '좋은 머리'도 단순히 대학원의 문턱을 넘게만 만드는 요인입니다. 일단 대학원 입학의 문턱을 넘고 나면 머리가 좋은지 나쁜지는 많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문턱을 넘을 때 왼발을 먼저 넘건 오른발을 먼저 넘건 어떻게든 문턱을 넘어 들어가는 것이듯이, 대학원 공부를 하게 되는 계기도 다양합니다. 머리가 좋아 대학원 문턱을 넘어가든, 졸업 앞두고 진로가 불확실해서 시간 벌려고 대학원에 들어가든[내 이야기], 누가 시켜서 억지로 대학원에 입학하든 문턱을 넘는 건 똑같습니다. 머리가 좋은 건 여러 이유 중 하나일 따름입니다.
대학원에서 하는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좋은 머리보다는 오히려 나쁜 머리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농담으로 "바보라서 대학원에 갔다"라고 하거나 "소년이 죄를 지으면 소년원 가듯,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대학원 간다"[링크] 하는데, 어느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비슷한 예로, "머리 좋은 사람은 '이미 알기 때문에' 공부를 그만하고, 머리가 나빠서 '계속 모르고 궁금한 바보'가 계속 공부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링크] [아카이브]
제 경우는 머리가 나빠서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머리가 나쁘다'라는 걸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든 쉽게쉽게 넘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을 어렵지 않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대학원은 '이 논문, 이 이론, 이 분석은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아' 하는 날들의 연속입니다. 심지어는 내가 과거에 썼던 논문과 분석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날이 옵니다. 거짓말 같지만 진짜입니다. (물론 사람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주장과 핵심은 그대로입니다. 다만, 논증의 과정이 잘 따라가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두번째로, 다른 사람이 머리가 좋다고 해서 시기하거나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다른사람에게 "와 너는 머리가 좋구나!" 하는 칭찬을 진심으로 할 수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만나는 교수든 선배등 동료 학생이든 머리가 비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봤을 때, '내가 이 동네의 바보를 맡고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참 편합니다. '내가 여기있는 건 전산착오였나봐.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게 숨겨야지' 할 수 있어요. 만약 지적 성취가 뛰어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조급해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대학원 생활을 오래할 수 없습니다. (대학원 생활을 너무 오래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ㅋㅋㅋㅋ)
대학원 생활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 머리가 좋은 것보다는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불가능한 목표를 서슴없이 말하는 힘"과 "insight에 대한 열망"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2. 불가능한 목표를 말하는 철면피
학부생들 중에 저에게 대학원 상담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교수님을 만나보라고 이야기하지만, 아무래도 교수님은 낯설고 무서운가 봅니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무엇일까요? 학부에서 공부하다가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랑 "이것에 대해서는 내가 더 할 말이 있다" 하는 순간이 오면 대학원을 진학하라는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 다 '이미 있는 것'에서 떠나와 '(아직) 없는 것'으로 생각이 전환되는 과도기를 상징합니다.
학부와 대학원의 가장 큰 차이는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다른 사람이 해봤고 길을 만들어놓은 것을 말합니다. 되는 걸 하는 것입니다. 계획의 영역입니다. 불가능은 반대로 아직 길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절대 아주 정말 진짜로 불가능하다고 알려져있다"는 것도 혹시 가능하진 않은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현대를 창업한 아산 정주영은 "불가능합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해봤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대학원은 그 "해보는" 과정입니다. 그런 면에서 대학원은 '불가능한 목표'와 희망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는 대학원생도, 그 대학원생을 지도하는 교수도 정답을 모릅니다. 가능한지조차 모릅니다. 콜럼버스는 구체적 계획이 없는 항해를 시작하되, 다만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인도 도착이라는 목표 그자체를 이루지 못했지만, 신대륙발견이라는 의의를 세웠습니다. 대학원 생활도 콜럼버스의 항해랑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콜롬버스가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항해를 시작하게 된 것이 '(아직) 불가능한 것을 말할 수 있는' 철면피를 가졌기 때문이었듯이, 대학원 역시 '그게 되겠어?'하는 일이라도 철면피로 말하는 능력(?) 혹은 무식함(?)으로 지속되는 것 같습니다.
이미 대학원에 진학하는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들을 위한 사족: 그러니 대학원생들은 본인의 연구주제를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말로는 "뺏어갈까봐"라고 하지만, 사실 부끄러워서라는 것 잘 압니다. 그 부끄러움을 이겨내는 철면피가 필요합니다. (사실 저는 누가 제 주제 뺏어가서 결과좀 내줬으면 좋겠어요. 연재중인 웹툰의 결말을 다 아는 작가가 부러운 것과 비슷한 심정일까요?)
3. insight에 중독되기
철학자 Zena Hitz가 지은 Lost in Thought: The Hidden Pleasures of an Intellectual Life 라는 책을 최근에 읽고 있습니다.
형식적인 학문 환경(흔히 말하는 상아탑)에 속하지 않고, 밖에서 오직 insight에 중독되어서 학문적 성과를 낸 사람들을 한명 씩 소개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상아탑이 얼마나 답답한지, 상아탑에서 나와 자유로운 생각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게 곧 삶의 의미가 된다는 것도 알려줍니다.
종교학자 Karen Armstrong의 자서전 The Spiral Staircase: My Climb Out of Darkness 역시 비슷한 경험담입니다.
저자는 학문의 큰 뜻과 종교적 열의를 가지고 수녀원에 들어가고 좋은 학교에도 입학합니다. 그러나 정작 학교를 그만두고, 수녀원에서 나오고 난 후에야, 대영도서관에서 고서와 씨름하던 순간에 오히려 삶의 의미를 찾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 책은 언어학 책이 아니고 Karen Armstrong은 언어학자도 아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이론언어학을 공부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 바로 이 책입니다.
한 번은 한국에서 학부생들한테 언어학이 무엇인지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 때 "inquisitive mind를 가진 사람은 언어학 공부를 하면 삶의 질이 올라간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insight를 한국어로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영어로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점이 연결되는 느낌, (만화처럼) 머리위 전구가 켜지는 느낌, 갑자기 머리가 쌩쌩 돌아가는 느낌 등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은 이렇게 공부하는 과정에서 쾌락을 느끼는 힘으로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돈 대신 insight로 월급을 받아도 괜찮다 싶다면 대학원에서 정말 삶의 질이 올라갑니다.
4. 아주 짧은 결론
머리가 좋으면 돈 많이 벌고 안락한 생활을 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렇게 하고 가끔 봉사나 기부를 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으세요. 그게 개인과 사회를 위해서 영리한 것입니다.
그러나 철면피로 떠들어댈 수 있는 꿈같은 이야기가 있고, 돈과 안락한 생활이 간접적으로 주는 도파민을 insight를 통해 뇌에 직접 주입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대학원에 진학하고 대학원 생활을 지속하는 편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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