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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으로 박사유학/언어학 박사 생활하기

박사 후보가 된다는 것

sleepy_wug 2024. 1. 28. 08:35

0. 요약

박사 후보생(ABD, All but Dissertation)이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적겠습니다.

 

목차

     

    1. 박사 졸업을 하려면 (3대 퀘스트)

    학교나 학과마다 다를 것이겠지만 박사학위를 따는 과정은 크게 세가지 퀘스트로 구성됩니다. 순서대로, 코스웍 자격시험 그리고 박사논문입니다. 이 퀘스트에 대해서는 입학 전에 이미 세부적으로 계약(?)을 하고 들어갑니다. 코스웍으로는 어떤 과목을 얼만큼 들어야하고 자격시험은 어떻게 볼 거고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합의를 한 상태에서 입학합니다. 학부생 이상이라면 '졸업여건'이라는 개념에 익숙하실테니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박사논문은 예외인데, 입학하는 시점에서 막연하게만 결정된 채로 입학하게 됩니다.

     

    박사논문만 남기고 모든 것을 다 마친 상황을 박사 후보생 PhD Candidate 혹은 ABD (all but dissertation)라고 부릅니다. 

     

     

    Becoming a phd as a rpg quest
    불쌍한 과정생은 수행을 위한 긴 여행을 떠났다

     

     

     

    1.1 코스웍

    코스웍 (Coursework)은 퀘스트 중에서 가장 쉬운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각각 몇 학점 이상 대학원 수업을 듣고 일정 학점 이상 받으면 완수 가능합니다.

     

    사실 저는 입학할 때 코스웍에 대한 부담이 있었기 때문에 매우 타이트하게 수업들을 들었습니다. 한 학기 3과목씩 아주 전략적으로 코스웍을 공략(?)했는데 덕분에 2년만에 코스웍은 모두 완료하였습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이렇게 한 것에 대해서 후회합니다.

     

    박사과정은 최소 4년의 긴 과정입니다. 그 기간동안 정해진 분야에서 학점을 얼만큼 듣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2년 내에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에 제 연구랑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과목도 많이 들었고, 결국 필요없는 과목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가장 필요없었던 과목은 통계 기초였습니다. 제 경우 석사 논문을 쓰고 박사 진학을 했기 때문에, 논문을 위한 통계 기초는 사실 이미 다 아는 내용이었습니다. 덕분에 학점은 아주 잘 받았지만 박사과정에서 들은 과목에서 A를 받았냐 B를 받았냐 이런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룹 프로젝트도 있어서 포기할 수도 없고 아주 시간낭비를 했습니다.

     

    코스웍을 듣다보면 제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과목도 들어야 합니다. 제 경우는 통사론, 음운론, 음성학 분야의 과목들을 들었습니다. 아마 코스웍 달성에 어려운 점이 있다면, 타분야 과목의 기말 페이퍼를 써야 한다는 점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예체능 과목을 듣고 페이퍼를 써야하는 것도 아니고, 어짜피 언어학 세부분야이므로 어렵다고 해봤자 엄살이겠죠.

     

    1.2 자격시험

    자격시험(Qualifying exam)은 언어학 대학원 수준의 지식을 갖추었나를 시험으로 검증하는 것입니다. 저는 석사 때는 매년 3월에 자격시험이 개최되었는데, 1년에 한번 열리는 그 기회에 3과목 합격을 해야 했어서 긴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지금 있는 학교에서는 자격시험을 보지 않고 자격논문으로 대체합니다. 

     

    자격논문은 말그대로 타분야의 저널에 투고할 수 있을 정도의 소논문을 써냄으로써 그 분야의 지식을 갖추었음을 증명하는 절차입니다. 제 경우는 세 분의 교수님들이 심사를 하였는데, 이제는 제도가 바뀌어서 두 분으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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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학생들이 자격논문으로 썼던 것을 수정하여 저널에 투고하기 때문에, 학생의 커리어를 위해서도 자격논문 제도가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1.2.1 Language requirement

    언어 능력 시험도 졸업 요건 중 하나입니다. 물론, 자격시험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딱히 적을 곳이 없어서 여기에 적습니다.

     

    언어학과에서 '영어'만을 대상으로 논문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영어 말고 다른 언어로 된 자료를 읽을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외국에서 온 국제학생들은 자신의 모국어로 언어 능력 시험을 갈음합니다. 영어가 모국어인 학생은 외국어 능력 시험을 보고 성적을 제출합니다. 

     

    제가 한국어로 언어 능력 시험을 갈음하려고 했을 때 교수님이 농담으로 '너 한국어 하는 걸 본적이 없는데 정말 한국어 할줄 아는 거 맞니?' 하셔서 '원하신다면 테스트해보세요.'라고 받아친 기억이 납니다. 웃으시면서 서명을 해주셨지요. 그 교수님은 한국어를 모르십니다. 한국어를 모르는 교수님이 '이 학생 한국어 할줄 앎' 이라는 의미의 서명을 해줄 정도니 언어 능력 요건은 매우 허술(?)하게 넘어가는 셈이죠.

     

     

     

    1.3 박사논문

    박사논문은 dissertation 혹은 thesis 라고도 부르는데, 자신의 연구분야에서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성과를 내야 합니다. 단순히 과거 선행연구를 정리하는 것만으로는 박사논문이 되지 못하고, 새로운 기여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박사논문에 앞서서, 자신의 논문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하는 문서인 prospectus를 작성합니다. Prospectus는 그 프로젝트가 정당화되는 이유, 비용이 들어갈 경우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논문이 완성되면 어떤 챕터들이 들어갈 것인지를 정리한 문서입니다.

     

    Prospectus는 위원회(committee)와 합의된 내용으로 작성합니다. 이 committee라는 것은 학과에 영구적으로 소속된 교수님 3분으로 구성되는데, 박사논문 작성 과정에서 함께하며 도움을 주는 러닝메이트 역할을 합니다. 위원회 구성할 때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교수님들께 설명드리고 위원회에 들어와달라고 부탁을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위원회 들어오기로 잠정적으로 수락한 교수님들과, 프로젝트를 구체화하고 그 구체화된 내용을 정리해서 prospectus를 작성합니다. 그리고 그 prospectus 내용에 위원회 교수님들 모두 동의하시면 그것을 통과시킵니다.

     

     

    2. 박사 후보생이 되면

    박사 후보생이 되려면 위에서 말한 세 요건 중 2가지 요건인 '코스웍'과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후에 위원회가 구성되고 그 위원회가 prospectus를 통과시키면, 학과는 학교에 '이 학생을 박사 후보생으로 추천합니다' 라는 내용의 공문을 작성합니다. 그 공문을 받으면 학교 측에서 자격요건 준수 여부를 확인하고 학생을 박사 후보생으로 승급(?) 시켜줍니다.

     

    박사 후보생이 되고 나면,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몇 가지를 나열해보겠습니다. 다소 주관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2.1 Residence 의무가 사라집니다

    이것은 학교와 학과마다 다르겠지만, 많은 학교에서 박사과정생에게 residence 의무를 부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과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이나 콜로키엄, 세미나, 행사 등등에 참여해야 하는 기간이 있는 것입니다. 막 문자적으로 '학교 안에서 살아라' 이런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학교 혹은 캠퍼스타운 내에서 거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박사후보생에게 residence 의무를 부여하는 학교는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습니다. 박사후보생은 '원칙적으로는' 어디서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이미 늙고 병들어버린 박사후보생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이미 늙고 병들어버린 박사후보생

     

     

    물론, 랩에 소속되어 있거나, 수업을 듣거나 미팅을 하는 등 여전히 학교에 묶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저의 cohort 중에는 박사 후보생이 되자마자 결혼을 하고 인근 도시로 이사가버린 경우도 봤습니다.

     

    특히 이 점에서 박사후보생이 되면 삶의 질이 개선되기는 합니다. '이 더러운 캠퍼스 언제든 떠나버릴 수 있어!' 라는 가능성 만으로도 조금의 위로가 된달까요. 

     

     

     

    2.2 투명인간이 됩니다

    박사 후보생은 학과에서 일어나는 일들에서 대체로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1년차 2년차 때야 cohort와 거의 비슷한 생활을 하기에 학과에서 매일매일 살지만, 박사 후보생들은 중요한 일이 아니면 학과 건물에 잘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혹은 정해진 랩에만 순간이동하듯(?) 나타났다 사라지거나, 혹은 어디 구석에 붙박이로 박혀있곤 합니다.

     

    1년차 2년차일 때는 '이 사람들은 다크 템플러인가?' 생각했는데, 이제 제가 박사 후보생이 되어보고 나니, 캠퍼스 샛길도 많이 알게 되었고, 학과 건물도 뒷문으로 사사삭 숨어 다니는(?) 게 편하더라고요.

     

     

    2.3 교수님들의 관심도가 떨어지는 걸 느낍니다

    교수님들의 주요 관심사는 어서빨리 학생들을 '박사후보생'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해주시고 자꾸자꾸 미팅을 하고 그럽니다. 재촉도 하고 고나리도 합니다. 

     

    그러나 박사후보생이 되고나면 그 다음날부터 교수님의 관심도가 뚝 떨어져버립니다. 다른 과정생들로 초점이 이동하고 박사후보생은 스스로 잘 알아서 해나가야 하는 시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하는 교수님들이 아니면 만나기도 힘들어집니다. 

     

     

    3. 태초마을이야

    사실 박사후보생이 되면 요건의 2/3을 마친 상황이라고 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7부능선은 커녕 5부능선도 못 간 것 같습니다.
    사실상 5부능선이 아니라 다시 태초마을 느낌이기도

     

     

    박사후보생이 되면 그 이전과는 생활 자체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일시적 미팅이 무척 많아지고 일주일에 해야 할 일과 그 일정을 스스로 관리해야 합니다. 이제는 잘 계획한다면 학교에 2-3번만 나가도 되는 일정이 되었습니다. 

     

    박사후보생이 되고 첫 주에 제가 했던 건 '반나절 동안 걷기' 였습니다. 박사과정에 들어오고 나서 주중에 이토록 하루종일 텅 빈적이 사실 없었거든요. 한편으로는 너무 좋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관리를 잘 못하는 경우 시간을 많이 낭비할 수도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의미에서 태초마을로 다시 돌아와 새로운 걸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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