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새로운 학년이 9월에 시작하기에, 지금은 9월을 앞두고 열심히 부팅(?) 중이다. 연달아서 미팅이 이어지는데, 학과 사람들과 점점 언어학 말고 다른 얘기들만 하게되는 듯하다.
언어학 연구자이기 전에 다들 nerd여서 그런듯하다. 다만 주제가 언어학 연구주제일 뿐. 그래서 nerdy한 토픽이 대화주제가 된다.
심지어 방금 지도교수님들 미팅을 했는데, R로 그래프 예쁘게 뽑아내는 이야기만 줄창 하다가 끝남.ㅋㅋㅋㅋ 진짜 깔쌈한 프레젠테이션은 영원한 숙제인 듯하다. 의대 건물 복도를 지나가면 '예쁘게 뽑힌 시각화들' 사례들이 전시되어있다. 연구 결과의 유의미성 다 필요없고 (어쩌면 이미 주어진 것이고) 어떻게 하면 mesmerizing한 시각화를 뽑아낼 수 있을까가 화두다. 엄청 화려한 색깔과 모양을 쓰고 결과를 어떻게든 눈에 확 띄게 만드는 게 목표다. 물론 데이터 마사지를 하면 안 되겠지만, 시각화 마사지(?)는 언제나 옳다.
사실 대학원에 오면 막 복도에서 이론의 충돌과 논쟁과 막 번쩍번쩍하는 상호작용이 있을 거라고 상상(망상?)했었는지도 모르겠다.ㅋㅋㅋㅋㅋㅋ 아 물론 그런게 없는 건 아니다. 리딩그룹이나 세미나 등 아주 특별한 '멍석깔기'가 필요할 뿐이다.
멍석깔기 이야기가 나오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우리 학교에는 학부 수업과 '코드쉐어링'을 하는 대학원 수업이 있다. 대학원생은 5xx 전공필수 코드로 들어가고 학부생은 4xx 전공심화 코드로 들어간다. 그런 수업은 음운론 통사론 의미론의 기초 이론수업인데 돌아가는 방식은 개별 수업마다 다르다. 대학원생들에게만 텀 페이퍼를 제출하게 했던 경우도 있었고, 대학원생에게는 페이퍼를 학부생에게는 squib을 요구했던 수업도 있었다. 내가 들었던 대학원 음운론 이론 수업도 그런 수업이었다.
그 수업은 대학원생 1명과 학부생 1명을 짝 지어서 둘이서 한 학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학기말에 둘이서 페이퍼를 완성하는 게 목표였다. 곧 학부 졸업논문을 써야하는 학부생 입장에서는 논문 작성을 어떻게 하는지 도제식(?)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대학원생 입장에서는.... 어떤 게 좋은 거였을가?ㅋㅋㅋㅋ
그 수업의 학기 중간 즈음에는 날을 잡아서 학회 발표 형식 (20분 발표 10분 문답) 으로 프로젝트 발표하는 작은 학회 세션을 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서로 물어뜯는 그런 '멍석깔기' 자리였다. 어짜피 방법론은 고정되어 있고 (데이터 → 일반화 → 제약설정 → 제약위계설정 → .... [여기 참조]) 그래서 공격지점(?)도 아주 명확했다. 내 약점이 곧 다른 조의 약점이기에 거기를 공격하는 방식.ㅋㅋㅋ 그런데 어떤 팀이 발표를 하고 문답이 진행되는데 질문이 너무 공격적이었는지 그 팀의 학부생이 울음을 터뜨린 것이었다! 처음에는 우는 줄 몰랐는데, 문답내내 표정이 안 좋더니 강의실 밖에 나가서 엉엉 운 듯했다. 갑자기 나가자 파트너 대학원생이 따라 나가서 달래주었는데 결국 같이 돌아왔다.
본인 딴에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음운론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hostile한 분위기인줄 몰랐다고.ㅠㅠ 물론 전혀 악의가 담긴 공격이 아니고 '지적 유희'? 같은 건데 [여기 참조] 바깥에서 보기에는 "왜 서로 못잡아먹나"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언어학자들은 왜 딴지를 거는가
아무래도 논리체계 자체의 합리성과 현상에 대한 설명 가능성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언어학자들은 늘 딴지를 거는 데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상을 예외없이
linguisting.tistory.com
원로 교수님한테 들은 비슷한 이야기도 있다. 캐나다에는 한국의 NRF 펀딩과 비슷한 공공 연구 펀딩으로 SSHRC가 있는데, 그 교수님이 거기 심사위원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보통 같은 분과면 연구계획서를 최대한 선의로 해석해주고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는데, 언어학은 왜 서로 그렇게 비판적으로 평가하느냐"고, 다른 사회과학 분야 동료 심사위원이 말하더랬다. 그래서 그 교수님이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외부 사람들이 보기에 언어학 연구자들은 서로를 심하게 비판하는 것처럼 보일런지도 모르겠다.
특히 음운론이 그런 경향이 심할 것같다. "음절에는 초성이 있어야 돼" 같은 요구사항도 비관적으로(negatively) 꼬아서 "초성 없으면 안돼" ( *σ[V ) 라고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ㅋㅋㅋ
다시 돌고 돌아서 왜 언어학 이야기를 서로 안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정말 이런 까닭인 것 같기도 하다. 언어학 말고 딴 얘기들은 즐겁고 긍정적이고 행복하고 그렇게 나눌 수 있는데 언어학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물론, 어린 사자가 저렇게 노는 걸 아는 사람들은 '놀고 있네'(언어학 하고있네)라고 생각하겠지만, 혹여라도 '쟤네 싸우고 있다'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
(눈치챈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글은 의도적으로 고용량의 이미지를 로딩합니다. 로딩시간이 오래걸리는 글에도 스팸 댓글이 달리나 테스트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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