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시작을 앞두고 "이제는 다음 단계 전직 계획을 세우자"는 조언들을 듣는다. 즉, 이제 이 "언어학 박사 생활하기" 시절을 악몽으로만 기억할 날이 멀지 않았다. (지도교수님은 여전히 박사생활 시절 악몽을 꾼다고 함)
내가 갈 수 있는 전직의 방향은 여럿일 것이다. 크게 분류하자면 한국으로 돌아가느냐 캐나다에 남느냐로 우선 나뉠 것이고, 각각에 대해 더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방향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옵션은 단 번에 배제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 뭐라도 될 수나 있을지, 아주 정말 매우 참 회의적이다. [쓸데없는 얘기]에서 적은 바 있지만 (저 글은 무려 이 블로그의 첫 글이다!), 애초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옵션은 나에게 참 비현실적이었다. 가면, 영어강사 정도나 할 수 있을까?ㅋㅋㅋ "어머 X대 학부밖에 안 나온 사람이 어떻게 우리 Z대 학부생을 가르쳐요" 이지랄.
교수님들은 한국의 상아탑이 어떤지 저쩐지 사정을 알지 못하기에, 오늘 미팅에서 교수님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는 캐나다에서의 진로(?) 두 가지였다. 첫째, 잡마켓에 투신(?)하여 캐나다 대학들 채용공고 응답하며 기다리기. 둘째, 캐나다 연방 연구자금 SSHRC의 Postdoctoral Fellowship을 받아 포닥으로 일단 전직하기.
나에게는 둘째 방안이 끌린다. 이제 나는 영주권자가 되었기에[링크] 연방자금 포닥 지원할 수 있다. 내 주제는 이론이지만, 그 이론을 적용할 대상언어를 Michif로 한정하면 아주 승산이 없지는 않다 [관련링크]. Fellowship 심사위원회 입장에서 관심가질 만하다. (연방정부는 원주민 언어 연구를 좋아한다)
Social Sciences and Humanities Research Council
Applications are reviewed, and available funds awarded, through a competitive merit review process. SSHRC bases funding decisions on the recommendations of the merit review committee and on the funds available. Step 1: In the application form, applicants w
sshrc-crsh.canada.ca
올해 9월 펀딩을 노리기에는 무리가 있고, 내년 9월을 목표로 전략을 세우기로 일단 이야기를 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1라고, 전략을 세우기 전에 도대체 어떻게 심사를 하는지부터 훑어보았다.
그런데 Fellowship 심사위원회가 구성되는 방식을 보니, 언어학-교육학-심리학이 한 그룹으로 묶인다.
Social Sciences and Humanities Research Council
Committee 6 Archival science, communications and media studies, demography, environmental studies, geography, library and information science, urban and regional studies
sshrc-crsh.canada.ca

한국 사정과 비교해보면, "어문학" 따위가 아니라 "문학"(committee 1), "언어학" (committee 4), "역사언어학"(committee 3) 이렇게 별도 단위가 된다는 것부터가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교육학/사회복지와 한 그룹에 묶인다는 것은 가볍게 넘어갈 일은 아닌 것같다. 즉, 포닥으로서 하겠다는 연구방향이 아주 이론언어학스러우면 곤란할지도 모르겠다. 심리학과 교수님들은 설득될 지 몰라도 다른 분야 분들은 시큰둥하겠지.
"쓸모"를 창안해야할 때마다, 나는 종종 촘스키가 쓴 grant proposal을 생각한다.
Aspects에는 아래와 같은 Acknowledgements가 있다.

본 문서에서 보고하는 연구는 미 합동군 전자 프로그램(미육군, 미해군, 미공군), 기타 등등등으로 일부 가능했습니다.
한번은 촘스키가 저기 명시된 미국 연방정부 (미 합동군) 돈을 받기 위해 typewriter로 작성했던 grant proposal을 본 적이 있었다. 수정액으로 지운 흔적들도 정겨웠고 무엇보다 Universal Grammar를 밝혀내면 러시아어를 영어로 자동 번역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may help...) 라고 어떻게든 언어학 연구의 '쓸모'를 찾은 것도 참 애처로웠다.
이론언어학은 소위 '앎의 확장'이라는 대의로 포장된다. 기초과학들과 마찬가지로 지식의 발견 그리고 그것의 전수 그자체가 목표다. 그러나 펀딩은 쓸모가 있는 곳에 주어진다.
이론언어학 그자체만으로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건 상수이고, 도둑질이나 사기를 쳐서 연구를 할 게 아니면 펀딩을 받아야 한다는 건 확실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쓸모"를 찾아야 한다. 어쩌면 이론 언어학 발전의 입장에서는 의식주에 돈 많이 들어가는 연구자들보다는 돈 필요없이 AI로 연구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ㅋㅋㅋ
이론의 발전 이야기가 나와 생각이 나는 이야기인데, 난 내 주제에게 참 미안하다. (이건 내 학위논문 Acknowledgements에도 쓸 것이다.) 다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면 반짝반짝한 다이아몬드가 될 수도 있는 원석인데 내가 잡고 있어서 서툴게 다듬어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런면에서 난 누가 내 주제를 이어가주었으면 참 좋을 것같다. 하지만 우선 나부터가 내 주제를 다이아몬드로 만들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쳐보지도 않을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석사논문 연장으로 학술지에 논문 투고하면서, 순진하게도 다른사람이 이어서 그 주제를 연구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놀라울만큼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학회발표를 안 다닌 것도 아니고 데이터를 안 공개한 것도 아니고 연구주제가 후진것도 아니다. 애정이 있으나 나는 더 이상 연구할 수 없는 토픽이다.
그럼에도 미련이 많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최근까지도 종종 학회에 참석했을 때 그 무슨 언저리 비슷한 주제로 발표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슬쩍 가서 '이런 게 있어요' 라고 억지 홍보를 하기도 했다. '작지만 나름대로 선별한, 선행연구 목록을 드립니다. 좋아할진 모르겠지만, 받아주셔요 그냥 받아주셔요.강매' 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질없었지ㅋㅋㅋㅋㅋ
아래 짤의 내용처럼, 아마도 죽어서나 가능하려나 그런 연구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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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병법 지형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남을 알고 나 자신을 알면(知彼知己) 백번 싸워도 지지 않는다(百戰不殆)." 남을 알지 못하고 나 자신을 알면(不知彼而知己) 한번 이기고 한번 진다(一勝一負). 남을 알지 못하고 나 자신도 알지 못하면 (不知彼 不知己) 매번 싸움마다 항상 진다(每戰必敗)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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