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요약
내용과는 하등 관련없는 '틀'에 집착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형식주의 이론언어학(특히 음운론)이 '틀'(형식)에 대한 공부이기 때문에 집착을 더 하게되는 것 같습니다.
결론은, 조금 집착을 내려놓아야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입니다.
목차
1. 폰트
음운론에서는 아무래도 IPA에 포함된 온갖 기호를 쓰기 때문에 나는 폰트 고민이 무척 많다. 사실 오늘날에는 Arial이나 Times New Roman 같은 주요 폰트들은 IPA를 모두 커버하기 때문에 그냥 쓰면 대체로 왠만큼 제대로 표현된다.
그러나 문제는 예쁘지 않다는 것.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주 보편적인 문제다. 적어도 내 세대나 심지어 학부생들도 모두 온갖 폰트를 다운로드 받았다가 지웠다가 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거친다.
아예 음운론자들 폰트선택 도와주는 아래 그림도 있다.
참고로 나는 Brill을 좋아해서 내가 폰트 맘대로 선택할 수 있으면 그걸 사용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음성적으로 유성음화되었다고 밑에 v 표시하는 diacritic도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고, 특히 IPA [ɡ] (g와는 다르다!)가 예쁘다. Main text도 뭔가뭔가 고급스러운 느낌.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macOS에서는 그냥 Font Book 에서 검색하면 다운로드 된다.
그러나 학부생들한테는 Brill의 B자도 안 꺼낸다. 이 블로그에서도 Brill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블로그의 폰트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동안 나는 메인 텍스트에 세리프 폰트를, 섹션 헤딩에는 산세리프 폰트를 고집했었다. 긴글을 제공하는 곳들에서 그런 방식을 표준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가지 요건 때문에 메인 텍스트용 폰트의 선택이 쉽지 않았다. 다음의 제약들이 있었다. (랭킹 높은 순)
1. IPA를 모두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
2. 한글, 로마자, 기타문자들이 조화롭게 나오도록 세리프 폰트를 선택한다.
3. 가독성이 있어야 한다.
4. 빨리 로딩되어야 한다.
결국 내가 선택한 폰트 구성은 제약4를 철저히 위배했고, 제약3도 그닥 만족시키지 못했다. 가독성이 좋은 세리프 한글 폰트 찾기가 어렵다.
그리고 주변을 보니 온라인 환경에서는 모두들 메인 텍스트를 산세리프로 보여주더라. 언론사같은 경우는 세리프 폰트를 쓰더라도 자체적으로 웹환경에서 잘 보이도록 만든 폰트를 제공하는데, 나는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냥 놓아주기로 했다. Arial은 IPA 커버 괜찮으니 Arial을 기본으로 하고, 한글은 아 몰라 그냥 아무 산세리프나 보여주기로.
다중언어로 구성된 텍스트는 이렇게 폰트 구성이 힘들다.
참고로 내 박사논문에도 (당연하게도) 한글 옛한글 심지어 한자가 출현하는데, 스타일 구성을 내맘대로 할 수 있으니 아래와 같이 나름 조화롭게 다 나온다.
로마자는 Brill, 한글/옛한글/한자는 나눔명조OTF 옛한글이다. 그런데, 폰트 사이즈를 같게 하면 한글/옛한글/한자 부분이 너무 크게 나와서, Brill에 비해 한 단계 낮추어서 쓴다.
내 욕심같으면 이 블로그에서도 이 "느낌으로" 구성을 하고 싶다. 그러나 "느낌처럼" 마음대로 안 된다. 이유는 두가지. 한글이 메인 텍스트인 경우 이 구성으로 할 경우 가독성이 개판난다는 것이고 또한 폰트 로딩하는 데 시간이 오래걸린다는 것이다.
위 스크린캡처에서 한글, 한자 부분이 묘하게 얇은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두꺼운 라틴문자 사이에 비-라틴문자가 무슨 양념처럼 솔솔 뿌려진 경우는 가독성을 해치지 않지만, 반대로 메인이 얇은 한글 글자들인데 중간중간 라틴문자가 두껍게 들어가면 아주 꼴보기가 싫다.
실용적인 문제도 크다. Brill을 내가 호스팅할 수 있으면 (즉 파일로 제공) 그렇게 할텐데, 폰트에 저작권이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래서 아마도 Brill 제작한 Brill 출판사로 링크해야 할텐데, 이렇게 하면 폰트하나 받자고 지연시간 생긴다.
그래서 이 블로그의 폰트는 그냥 포기했다. Arial, san-sarif 이렇게 구성하기로 결정함. 내용이 중요하겠지ㅋㅋ
2. 스타일
스타일은 더더욱 고민이다. 폰트를 결정했어도 세세한 모양새는 진짜 딱 내맘에 드는 게 없다.
최근에 교수님과 미팅하다 "바보같은 질문이고, 하등 상관없는 고민인 것 아는데, Bibliography 스타일 질문하나 하겠다고" 했었다. 한글문헌 제목을 어떻게 나타내면 좋을지 고민고민하다 여러 옵션중 어떤게 가장 타당하겠냐(proper) 물어봤었다.
옵션1: Transliteration만
예시: Hong, G. (1910). Hankuke. Hankukmunhwasa
옵션2: Transliteration + translation (APA 7th edition 표준)
예시: Hong, G. (1910). Hankuke [the Korean language]. Hankukmunhwasa
옵션3: Translation만
예시: Hong, G. (1910). The Korean language. Hankukmunhwasa
옵션4: 한글과 Translation
예시: Hong, G. (1910). 한국어 [the Korean language]. Hankukmunhwasa
사실 "야 뭐 이런걸 고민하고 그러냐? 아무거나 해도 됨"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텐데, 교수님은 나랑 머리싸매고 고민을 했다. 선례를 찾아보고 독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정보량/유용성 측면에서도 생각해보았다.
사실 위에 제시한 모든 옵션들이 (놀랍게도) 다 선례가 있는 것들이었다.
우선 옵션3이 가장 최악이라는 점은 명약관화. 이건 모두에게 혼동을 주는 선택이다.
옵션4는 나쁘지 않다.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았을 때, 한국어로 된 문헌을 찾아가서 읽을 정도면 한글을 읽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옵션4처럼 한글을 제시해주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런데 내 글이 영어로 작성된 언어학 논문이라는 점에서 주된 독자들이 한글을 읽을 줄 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옵션1은 프랑스어, 독일어 등 라틴어 문자체계 사용하는 언어의 문헌을 인용할 때와 궤를 같이한다. 그냥 원어를 제시해놓고 영어로 해석해주지 않는 것이다. 이 동네 언어학계에 있는 아주 고약한 관행인데, 소위 "읽을줄 안다고 기대되는 언어"들이 있다. 프랑스어와 독일어는 진짜 해석없이 원문 던져놓은 경우도 많고, 심지어 수업자료 데이터 가운데 gloss도 프랑스어 혹은 독일어로 나올 때가 있다. 특히 아프리카언어들 데이터 가운데에는 프랑스어 문헌에서 나와서 데이터 섹션 헤딩과 gloss가 프랑스어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교수님도 나도 2025년을 살아가는 ✨현대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런 제국주의적 관행을 맹목적으로 따라서는 안 된다. 즉, 논문 작성 언어가 영어면 영어만 알아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는 원칙에 따라 옵션1은 OUT. (사실 이건 한국어 문헌이 아니라 프랑스어, 독일어 문헌 인용할 때 더 의미있는 원칙이긴 하다. 독일어 프랑스어 문헌도 인용할 때 bibliography에 반드시 번역을 추가하자!)
피해야 할 나쁜 선례:
Saussure, F. de. (1916). Cours de linguistique générale. Payot.
이렇게 해야 함:
Saussure, F. de. (1916). Cours de linguistique générale [Course in General Linguistics]. Payot.
어쨌든 그래서 결국 옵션2를 선택하기로 했다. APA에서 다 충분히 고민하고 표준으로 정했을텐데 결국 바퀴를 다시 발명한 꼴이 되었지만, 사실 과정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근데 이런 과정은 논문에 쓰지 않는다.ㅋㅋㅋ)
3. 결론: 완벽하기를 목표로 하지 말 것
중요한 건 내용이지 형식이 아니다. 비록 형식을 연구하긴 하지만 결국 형식은 선물을 포장하는 포장지에 불과하다 🥲. 중요한 건 선물이지 포장지가 아니다. 달이 중요하지 손가락이 중요하지 않다. (수도없이 나열할 수 있음)
그런 의미에서 "예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집착을 나 스스로부터 좀 내려놓을 필요가 있을 것같다.ㅋㅋㅋ 그래도 아마도 누군가 나처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요약한다.
폰트는 Brill + 나눔명조OTF옛한글
Bibliography는 transliteration과 translation을 모두 제시한다.
(그리고 Yale transliteration을 자동으로 해주는 마법같은 앱이 있음 광고 안달거라며 )
Convert Korean orthography into IPA transcriptions
Use 'Hangul to IPA' with the interface below하단 인터페이스를 통해 'Hangul to IPA'를 이용해봐요 See [readme] for more information. Scroll down a bit, and you'll find a cool web interface that converts your '한글' input into IPA [hɑ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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