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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분위기 언어학

한국어 수량사 사용의 어종

sleepy_wug 2024. 5. 2. 09:45

0. 요약

[링크]에 나온 유튜브 공연 실황 중, 진행자가 현재 접속해있는 사람의 수 236을 표현하기 위해 "이백 삼십 육 "이라고 했다가 어색함을 느끼고 "이백 삼십 육 "으로 수정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한국어의 어종(고유어 vs 한자어)와 수량사 사용에 대해 포스팅합니다.

 

목차

     

     

    1. 두 종류의 숫자 체계

    한국어에는 일(一), 이(二), 삼(三)... 으로 이어지는 한자어 기반 숫자 체계와 한, 둘, 셋... 으로 이어지는 고유어 숫자 체계가 있다. '분', '시', '명' 과 같은 수량사와 함께 쓸 때에는 두 시스템 중에 무엇을 써야 하는지가 비교적 엄밀하게 지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나이를 말할 때가 있다. 한국어에서는 숫자에 이어서 '세'와 '살' 이렇게 두 가지 수량사를 쓰는데, 이때 한자어와 고유어 숫자 체계를 엄밀하게 골라서 써야 한다. "14"은 열네 살이고, "13" 십사 세이다. 십사 살이나 열네 세는 불가능하다.

    시간을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12:12을 읽을 때 숫자는 똑같은 12지만, "열두 시 십이 분"이라고 읽고, "십이 시 십이 분"은 군대 등의 맥락을 제외하면 불가능하며, "열두 시 열두 분"은 어떤 상황에서도 좋지 않다. 시(時)와 분(分) 모두 한자인데도 시는 반드시 고유어랑만 써야하는 것이다.

     

     

    음운론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같은 "분"인데 시간을 세는 단위로는 한자어 숫자만 사용이 가능한 반면 사람의 수를 세는 단위로는 고유어만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 직관의 일부?

    https://www.youtube.com/clip/Ugkxoxb3N74fz1IxCHw8gVd0eeFiUOwor6wK

    (9분 20초부터) "말씀드리는 순간, 지금, 이백 삼십 육분. 이백 삼십 육분?(웃음) 이백 삼십 육명! 지금 들어와 있습니다."

     

    위 영상에서 진행자는 숫자와 수량사의 결합에서 어색함을 느끼고 바로 수정한다. 올바른 표현이 무엇인지는 나는 관심이 없고, 다만 어색함을 느끼고 곧바로 수정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언어 외적으로, 큰 숫자를 말할 때는 한자어 숫자체계를 쓰는 것이 기본값이기 때문에 236과 같은 숫자를 고유어로 호칭할 일은 없다.[각주:1] 따라서 그저 자연스럽게 한자로 읽었을 텐데, 문제는 그 뒤에 높임의 의미를 담은 수량사 '분'을 썼을 때다. 독립적인 단위로서 "이백 삼십 육"과 "분"을 가져다 놓고, 그걸 기계적으로 결합해서 "이백 삼십 육 분" 이라고 내뱉고 나니 곧바로 어색함을 느낀다.

     

    아나운서가 뉴스를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상당히 릴랙스된 분위기의 라이브 스트리밍이기 때문에 규범주의에 경도되어 스스로를 교정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만 정말로 어색함을 느꼈던 것이다. 마치 '수준'을 '추준'으로 발음하거나 '정도'를 '덩도'로 발음한 후에 스스로 교정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 두 사례 모두 Seoul Corpus에 나오는 사례들이다. Han, Oh, and Kim (2019)[각주:2]). 단어의 렉시콘 상 발음형을 향하여 스스로 교정하는 것이 한국어 화자의 직관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수량사 어종 조화에서 "어색함을 느끼고 스스로 교정하기" 역시 한국어 화자 직관의 일부가 아닐까?

     

    3. 본문보다 긴 여담

    3.1 그래서 기본값은?

    그렇다면 고유어 수사와 한자어 수사 중 뭐가 기본값일까?

     

    음성학자들이 보기에는 "진짜 직업병 도졌네. 갑자기 기본값을 왜 찾아?"라고 할 수도 있는데, 나뿐만 아니라 음운론 연구자라면 누구나 이 대목에서 "기본값은?" 이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기본값은 elsewhere 일때 발현되는 형태를 말하는 건데, 거칠게 말해 기저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전제는, 그냥 곧바로 나오는 어떤 형태가 있는데 현실 언어에서는 어떤 조건 때문에 그것이 안 나오고 변형되어 형태가 달라진다는 것. 학부 음운론 하면 지겹도록 하는 이형태 중에 실현형 도출하기 그거다.

     

    '컵'과 같은 외래어 수량사를 생각해볼까? "1컵"은 내 직관으로는 "한 컵"이다. "일 컵"은 어색하다. 그러나 "2000컵"은 반드시 "이천 컵"이다. 

     

    '박스'는 어떨까? "1박스"는 "한 박스"다. 그러나 "3872박스"는 "삼천 팔백 칠십 이 박스"이다.

     

    이 단편적 데이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기본값은 고유어일 것이고, 숫자 자체가 큰지 아닌지도 요인(factor)라는 것이다. 숫자가 크면 고유어 시스템에서는 해당하는 형태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자형을 쓰는 것 같다. 236박스는 어쩔 수 없이 이백 삼십 육 박스다.[각주:3] 그런데 '컵', '박스' 처럼 물건 담는 용기 아니고 다른 수량사는 없는걸까 쉽게 생각이 안난다. 난 어디 가서 한국어 화자라고 하면 안 될지도.

     

    3.2 '어원'과 어종은 다를지도 

    흔히 법명은 두 음절의 한자어로 구성된다. 야옹스님은 진짜 스님의 법명으로 된 스님이지만[링크], 알렉스님은 결코 불교와 관련되지 않는다. 뉴진스님은 중간이다. 그러나 야옹스님, 알렉스님, 뉴진스님 모두 화자직관상 한자어가 아니다.

     

    시소(see-saw)를 고유어로 생각하는 사람이 (어렸을 때의 나를 포함해서) 많이 있고, 대학생들 중에는 '바'라는 음가를 가진 한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바 라는 음가를 가진 한자는 없다. 당장 한글 키보드에서 '바'를 입력해본 다음 한자 변환키를 누르면 컴퓨터가 아무 반응이 없을 것이다[각주:4]

     

    어종은 한국어의 사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질"은 소위 한자어라면 "물찔"이라고 발음하고 삼라만상을 과학적으로 지칭하는 단어이고, 소위 고유어라면 "물질"이라고 경음화 안하고 발음하고 해녀들의 생산활동이 된다.

     

    이렇게 중요한 게 어종 개념인데, 정의할 별다른 방도가 없어서 '어원'을 기준으로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 한다. 그러나 그게 직관과 일치하는지는 좀 생각해볼 문제다.

     

    정말로 사람들이 '장발장'을 한자어로 생각해서 물질[물찔]처럼 장발장[장발짱]하는 걸까? 장발장을 "장씨 집안의 이름이 발장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진짜 없을 것이다. 한국어 화자에게 " '장발장'은 어원이 뭐요?" 물어보면 외국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행동은 한자어 대하듯이 한다. 

     

    야옹스님의 '야옹'은, 뭐 생각한다면 한자어로 된 정통 스님 법명이겠지만, 맥락을 굳이 생각하지 않으면 고유어 어원이라고 할 것이다. 뉴진스님도 우긴다면 안될 건 없지만 우선 떠오르기로는 외래어다.

     

    4. 결론

    결론이 꼭 있어야 할까? 대신 이 블로그의 다른 글들을 링크해야지.

     

    좋아할 것 같아서 다른 글도 준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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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억지로 236을 고유어 수사 체계로 읽는다면 '두온 서른 여섯' 정도 되겠지만, 살면서 아흔아홉 이상의 수를 소리내서 고유어 수사로 써본 적이 없고, 실용적으로는 40(마흔) 무렵에서 거의 한자어 수사체계로 넘어간다 [본문으로]
    2. Han, Jeong-Im, Oh, Jeahyuk, & Kim, Joo-Yeon. (2019). Slips of the tongue in the Seoul Korean corpus of spontaneous speech. Lingua, 220, 31–42. https://doi.org/10.1016/j.lingua.2019.01.001 [본문으로]
    3. 한양대 신중진 교수님 [칼럼 링크] 같은 분이라면 한국어의 비밀(?) 운운하며 내 한국어가 "오염됐다"라느니 "흔들림 없이 '두온 서른 여섯 박스'라고 해야 한다"라고 하실까?🤣🤣 [본문으로]
    4. 혹은 속으로는 아래의 노래를 부를지도 모른다. 🤣

      (출처: https://www.youtube.com/shorts/FmdaKmX7qVU )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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