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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분위기 언어학

용언 사귀다의 어휘상(lexical aspect)이 변했나?

sleepy_wug 2024. 7. 1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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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요약

아래 웹툰에서 나온 "사귀다"의 용례에 대한 글입니다. 위 용례에서 '사귀다'는 행위의 완성 지점(도착점)이 존재하는 [+telic] 자질을 가지는 듯한데, 이것은 저의 직관 상 어색합니다. 언어변화의 일부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제 직관이 오염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용언 '사귀다'의 의미가 저의 직관과 다른 사례

 

목차

     

    1. 어휘상 (lexical aspects)

    용언의 의미론에서 어휘상 (Aktionsarten 혹은 lexical aspects)은 흔히 동사가 지칭하는 행동의 시간적 특징을 분류한 것이다. 통상적으로 4+1가지로 분류하고, 양극값을 가지는 자질(binary features)로는 [telic], [duration]을 이용해 기술할 수 있다. 

     

    한국어 용언과 함께 예시하자면 아래와 같다.

     

    명칭 자질명세 한국어 예시
    States [-telic]  [+duration] (지식을) 알다
    Accomplishments [+telic]  [+duration] (집을) 짓다
    Achivements [+telic]  [-duration] (집에) 도착하다
    Activities [-telic]  [+duration] (운동장을) 달리다
    Semelfactives [-telic]  [-duration] 재채기하다

     

    우선, 왜 States 와 Activities의 자질명세가 같은지부터 짚고 넘어가자. States와 Activities는 형용사적/동사적 행동을 하고 사실 [dynamic] 등과 같은 제3의 자질을 통해 구분을 한다. 예를 들어 "알다"는 어휘의 의미범위 내에서 상태나 조건이 변하지 않고 구체적 행위를 수반하지 않지만, "달리다"는 구체적 행위를 수반한다. 그럼 왜 [dynamic] 자질을 안 사용했느냐 할수 있는데, 왜냐면 흔히 States는 고려를 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4+1로 분류한다'라고 한 것이기도 하다)

     

    이제 자질들을 정리해보자.

     

    [duration]은 흔히 '시폭'(시간의 폭)이 있는지 없는지를 기술하다. [+duration]은 시폭이 있다. 다시 말해서 행동이 일정기간 지속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duration]인 '(집을) 짓다'와 '(운동장을) 달리다'는 아주 짧게나마 행동이 지속되어야 하지만, [-duration]인 '(집에) 도착하다'와 '재채기하다'는 행동이 시간 상 지속될 필요는 없다. 이를 구분하는 간단한 테스트는 "한 시간 동안" 같이 반드시 지속을 수반해야 하는 맥락을 만드는 것이다. [+duration]인 '짓다'와 '달리다'의 경우, "한 시간 동안 집을 지었다/운동장을 달렸다"가 자연스럽다. 그러나 [-duration]인 '도착하다'와 '재채기하다'의 경우 "한 시간 동안 도착했다/한 시간 동안 재채기했다"는 부자연스럽다. 이 때 "한 시간 동안 재채기했다"가 자연스러울 수 있는데, 그렇다면, 재채기를 여러번 반복했다는 의미로서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자적으로 "재채기 한 번 했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는 의미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 포스팅에서 초점인 [telic] 자질을 생각해보자. [telic]은 특정한 완성 지점이 있는지를 기술한다. [+telic]을 가진 동사는 그것이 지시하는 행동이 완성지점을 가진다. 위 예시에서 [+telic]은 '짓다'와 '도착하다'가 있는데, 두 동사의 의미는 자연스러운 도달/끝남의 의미를 내포한다. [-telic]인 '재채기하다'나 '달리다'는 그렇지 않다. 이때 '달리다'는 100m달리기 같은 게 아니라 운동장을 빙글빙글 계속 도는 것과 같은 것이다. Accomplishments와 Achivements는 완료지점이 있기에 (=[+telic]이라서) "이틀 걸려 집을 지었다/집에 도착했다" 는 자연스럽지만, Activities와 Semelfactives는 완료지점이 없기에 (=[-telic]이라서) "이틀 걸려 운동장을 달렸다/재채기했다"는 어색하다. 

     

    2. 궁금한 것: '사귀다'는 완성 지점을 가지는가?

    이제 '사귀다'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내 직관 상 어색한 용례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 다시 웹툰 이미지를 가져와본다. 네이버 웹툰 "영앤리치가 아니야!"의 95화이다. [링크] 

     

    어떻게 사귄거야? 혹은 어떻게 사귀게 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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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에 있는 캐릭터(A)가 새로운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다. 오른쪽에 있는 캐릭터(B)는 그 연애의 제3자다. A는 B에게 연애상담을 한다. B는 "도대체 너네 어떻게 사귄거야?" 라고 묻는다.

     

    댓글창을 유심히 살펴보아도 표현의 어색함을 지적하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아마도 웹툰을 그린 사람이나 독자나 이 표현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그러나 내 직관으로는 "도대체 너네 어떻게 사귀게 된거야?" 혹은 "사귀기 시작한거야?"가 자연스럽다. 연애가 지속되고 있는 맥락인데, "도대체 너네 어떻게 사귄거야?" (혹은 "사귀었던 거야?")는 연애가 이미 종결된 뉘앙스를 가지는 듯하다.

     

    다시 말해서, 나의 직관 상 '사귀다'는 Activities [-telic][+duration]로 분류되는 듯하다. 반면 위 웹툰에서는 다른 건 몰라도 '사귀다'가 Achivements [+telic][-duration]로 분류되는 것 같다. 적어도 [+telic]을 가지는 것은 확실하다.

     

    즉, 내 직관 상 "운동장을 달리다"와 "누구누구와 사귀다"가 하나의 분류다. 반면 위 웹툰에서는 '사귀다'는 "집에 도착하다"와 비슷하다. 아마도 "결혼하다"가 동일하게 Achivements로 분류될 텐데, 그런 면에서, "누구누구와 사귀다"와 "누구누구와 결혼하다"가 같은 분류를 가지는 것이다.

     

    결국 [telic]의 값이 +냐 -냐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걸 사람말로 바꾸면, '사귀다' 는 완성 지점을 가지는가? (마치 "집을 짓다" 처럼?) 라고 할 수 있다.

     

     

    3. 코퍼스 상의 패턴: 없음

    내 직관이 오염된 건지 확인하기 위해 물결 코퍼스[링크]에서 '사귀-'의 용례를 검색했는데, 용례가 20건밖에 안 나와서 패턴을 찾을 수 없었다.

     

     

     

    4. 테스트와 예측

    앞서 [+telic]과 [-telic]을 구분하는 통사적 테스트를 언급했다. 바로 "이틀 걸려" 등 완성 지점을 강제하는 맥락을 만드는 것이다. 

     

    내 직관 상, "나는 그녀와 이틀 걸려 사귀었다???" 는 매우 어색하다. "이틀"이라는 시간이 짧기 때문이라면 "1년 걸려 사귀었다???"는 자연스러워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만약 이틀 동안 (혹은 1년) 동안 구애를 해서 결국 연애를 시작했다면 "사귀었다"가 아니가 "사귀게 되었다"가 자연스럽다. "나는 그녀와 이틀 걸려 사귀게 되었다" 이렇게... "되다"는 분명 [+telic]이다.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사귄거야?" 가 자연스러운 저 웹툰 작가(그리고 독자들)의 직관이라면, 아마도 "나는 그녀와 이틀 걸려 사귀었다" 역시 자연스러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직관이 궁금하다. 만약 내가 예외가 아니라면, 높은 확률로 언어변화에 따라 '사귀다'의 어의가 바뀌고 있는 것일 테니까, 나는 Millennial 세대라는 점을 적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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