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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분위기 언어학

이 영어 노래들은 왜 어색할까? 노래가사의 각운

sleepy_wug 2023. 3. 6. 16:22

0. 요약

몇 가지 유럽 언어들의 시와 노래에서는 적극적으로 각운(rhyme)이 사용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각운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으면 자국어 노래가 아니고 어색한 노래처럼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가사는 영어이지만 각운이 잘 드러나지 않으면 억지스럽거나 심지어 '영어학습용'으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이 '어색함'을 소개합니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측면에서 약간 의아한 노래의 예시로 유튜버 과나의  노래인 "30 Reasons why Bald Head is Good"과, 클래지콰이의  "Lazy Sunday Moring"를 제시하고, 아주 멋진 각운을 보여주는 노래의 예시로 스텔라 장의 "L'amour Les Baguettes Paris"와 뉴진스의 "Ditto"를 제시합니다.

 

아마도 영어영문학과 학부생 문학/어학 프로젝트로 이런 사례들을 더 조사하는 것이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만약 우연하게도 이 글을 읽는 독자님께서 졸업논문이 고민이신 학부생이라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1. 각운 (rhyme)

문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로서의 rhyme은 흔히 각운이라고 부른다. 각운(脚韻)에서 각(脚)은 '발'(foot)이라는 뜻인데, 그래서 각운은 말 그대로 시의 행 끝에 비슷한 소리를 의도적으로 배치시키는 것을 말한다. 각운이 잘 살아있으면 긴 글을 외우기 쉽고 암송하기도 재밌다. 또한 각운의 사용은 어떤 의미에서는 창작자의 능력을 뽐내기 위한 수단이다. 나는 문학전공이 아니고 시는 잘 모르기 때문에 다른 블로그[이곳]을 추천한다. 구글에서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나온 사이트이다.

 

ChatGPT는 각운을 이렇게 설명한다. 예시도 적절하다.

 

 

각운의 사용 양상은 음운론과 문학(시)의 경계에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언어학은 언어직관을 연구하는 학문인데, 만약 각운의 사용이 문예의 영역이 아니라 일상 언어사용에서도 빈번하게 이루어진다면 아마도 각운을 "개별 문장을 초월하는 단위에서 작동하는 언어직관"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영어 시에서 각운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한국에서 흔히 "발라드"라고 불리는 가사가 강한 노래 종류에서도 각운이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국제어(lingua franca)로서의 영어는 더 이상 영어 원어민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만약 각운이 언어직관이라면) 언어직관 중에서도 매우 주변부적인 영역인 '각운'은 비원어민들이 가장 놓치지 쉬운 부분이 아닐까한다.

 

한국 아티스트들이 영어로 노래를 내는 경우들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어떤 노래는 가요라기보다는 교육용 동요(?)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왜 그런 것인지 여태까지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마 각운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어느날 스텔라 장이 부른 L'amour Les Baguettes Paris를 듣고 있었는데, 왜 이노래는 진짜 샹송 느낌이 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이 노래는 매우 영리하게 각운을 지키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2. 어색한 각운

2.1. 과나 30 reasons why bald head is good

 

영어로 된 노래 중에서 각운이 맞추어지지 않아서 어색하게 들리는 첫번째 곡은 유튜버 과나가 부른 30 reasons why bald head is good이다.

 

개인적으로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조금 혼란스러웠다. 한국어 원곡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거기에 들어갈 영문 자막을 곡조에 억지로 끼워맞춘 느낌이었다. 각운을 떠나서 가사전달이 안 되고 (가수분의 영어발음이 좋지 않다는 뜻이 아님) "번역된 노래" 라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고개가 갸우뚱했다. 

 

혹시 한국에서 어색함이 유머로 통하는 밈 같은 게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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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Clazziquai - Lazy Sunday Morning

두 번째 노래는 클래지콰이가 부른 Lazy Sunday Morning이다. 보컬이 너무 매력적인데[각주:1], 신기하게도 발음좋은 외국인이 한국인 영어학원 원장이 만든 노래를 불러준 것 같은 느낌이다. 즉, 자국어 노래같다는 느낌이 아니라, 번역된 노래같다는 인상이 든다. 그 이유는 각운이 뚜렷하지 않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아래의 가사를 보자 (사실 앞서 본 과나 노래는 진짜로 영어노래를 만들려고 만든 게 아닌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가사를 살펴보지 않았다.)

 

It's getting late on Sunday morning,
I get up and see
Empty beer bottles rolling around on
The bedroom floor
My head's spinning full of beer
As thinking of my lonely late night party
And my old lady she don't care
As I look for food in the fridge

 

의미나 문장구조 모든 걸 빼놓고 단지 '운'(韻)만 보자면 각운이 거의 지켜지지 않고있다. floor-beer-care가 각운을 이루어야 하도록 구성된 모양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예컨대 제4행과 제5행은 각운을 따지기에는 무게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3. 매력적인 각운

그러나 아래와 같이 매우 흥미롭게 각운을 맞춘 경우 말장난으로서 재미도 있고, '번역된 노래'가 아닌 '오리지널 노래'라는 느낌이 더 드는 것 같다.

 

3.1. Stella Jang - L'amour, Les Baguettes, Paris

나는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 이미 있는 샹송을 스텔라 장이 부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매력적이고 프랑스어권 스럽고 무엇보다 각운이 너무 세련되게 맞추어져 있었다! 그냥 무식하게 똑같은 단어나 똑같은 음절형을 때려박은 게 아니라 각운은 맞되 조금 비튼 것이 엄청나다.

 

물론, 나는 불어를 외국어로 배웠고 불어 직관이 없기 때문에 "샹송같다"라는 느낌은 지지받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혹시 불어권 화자가 이 노래에 대해 리액션한 것이 있나 찾아보았는데 아직까지는 못 찾았다.

 

 

 

가사에서 각운이 지켜진 부분들을 아래와 같이 표시해보았다. 각 행은 가사의 한 행을 의미하고, 가운데 열에 각운을 나타냈다. 마지막으로 오른쪽 열에는 그게 각운이 되는 이유를 적었다.

C'est drôle, je ne sais pour quoi ...[p] ... [kwa] 
...[p] ... [twa]
[k]와 [t] 모두 무성파열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살짝 비튼 각운 너무 영리해.
Ça me fait toujours penser à  toi
Pour plein d'autres gens, c'est la  magie ... [maʒi]
... [paʀi]
[m]과 [p] 모두 양순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L'amour, les baguettes,  Paris
     
Toujours au même en droit [d] [ʀwa]
[t].. [vwa]
[d]와 [t]는 유무성 측면에서만 다르고 동일 조음 자음이다.
Comme si c'était hier, j' te vois
Pour plein d'autres gens, c'est la  magie ... [maʒi]
... [paʀi]
[m]과 [p] 모두 양순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L'amour, les baguettes,  Paris




개인적으로 이 노래의 가장 압권은 아래 가사에서 나오는 [ʀy] - [ply] 각운이라고 생각한다. Plus (더이상)라는 단어는 사실 의미나 통사구조 상으로는 불필요한 단어인데 순전히 rue와 각운을 맞추는 용도로 들어간 단어다.[각주:2]


Mais moi, quand j'arrive sur cette rue [ʀy]
J'pense à toi qui ne réponds plus  [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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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이길 도착할때
더이상 대답 없는 널생각해

 

3.3. 뉴진스  - Ditto

나는 아무래도 영어권의 대학교 소속이다보니까, 학부생들한테 음운론 수업을 할 때는 alveolar flap [ɾ]을 꼭 언급한다. [ɾ]는 영어에서는 /t/나 /d/의 이음으로 출현하고, 한국어에서는 /ㄹ/의 이음으로 출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alveolar flap은 같은 음성신호더라도 그것의 음운론적 가치는 개별언어에 따라 다르다는 아주 좋은 예시가 된다.

 

뉴진스의 노래 Ditto는 [ɾ]을 이용한 아주 재미있는 말장난을 보여준다.

 

 

 

위 영상 기준, 1:26부터 1:55 까지의 클라이맥스에서는 한국어와 영어를 넘나드는 재밌는 말장난이 나온다.

즉, [ɾ]라는 같은 소리가 한국어와 영어에서 다른 음소로 인식되기에 뉴진스 ditto의 아래 가사는 음성적 수준에서 라임이 되는 말장난이다.[각주:3]

Like you a little
Don't want no riddle
말해줘 say it back,
 
oh, say it ditto
아침은 너무 멀어 
so say it ditto

I don't want to 
walk in this 미로
다 아는 건 아니어도
바라던 대로 
말해줘 say it back

Oh, say it ditto
I want you so, want you, 
so say it ditto

 

middle [miɾəl]
riddle [ɹiɾəl]
ditto [diɾo]
[miɾo]
[dɛɾo]

 

 

그리고 뉴진스 해린은 고양이를 닮았다.

밈 고양이 중 "오빠얘기좀해" 고양이가 생각난다

 

이 고양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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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특히 노래 가장 앞부분에서 알렉스가 morning발음할 때 [n]을 살짝 geminate시키는 부분이 끝내준다. [본문으로]
  2. 심지어 스텔라장의 라이브 영상에서 나오는 해석은 "대답 없는 너를 떠올리게 돼" 인데 아예 plus를 번역하지 않았다. 즉, 순전히 각운을 맞추는 단어라는 의미다. [본문으로]
  3. 이와 같이 언어를 넘나들며 말장난 하는 것은 정말 고도의 언어적 센스가 요구되는 것 같다. 단순히 뉴진스 사례 뿐만이 아니다. "요아소비 - 밤을 달리다"의 영어가사와 원어가사 사이의 음성적 유사성도 흥미롭다. Penguin lounge. 님의 블로그 글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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