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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분위기 언어학

영어권 뉴스에서 한국어 모음 ㅡ (으) 어떻게 발음되나

sleepy_wug 2023. 9. 13. 05:49

0. 요약

2023년 9월 12일, 북한의 김정은이 러시아의 푸틴과 회담을 하러 러시아로 향했는데, 이 뉴스를 영어권 뉴스에서 보도하면서 한국어의 /ㅡ/ 모음을 영어권 화자들이 발화한 사례들이 추가되었습니다.

 

영어에는 한국어 /ㅡ/ 에 쉽게 대응되는 모음이 없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발음할지가 궁금합니다.

 

한국어의 /ㅡ/ 모음을 저는 [ɨ]로 발음합니다. 그러나 [ɯ]로 전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래의 모음삼각도에서 손가락으로 표시된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중설모음으로 발음하느냐 후설모음으로 발음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이 글에서는 영어권 언론 분야 종사자(아나운서, 기자, 전문가)들은 '으' 모음을 어떻게 발음하나, 그리고 한국의 아나운서들과 발음이 어떻게 다른가를 다룹니다.

 

 

저는 아주 아주 작은 샘플만 재미로 살펴보았는데, 관심있는 사람이 있다면 텀페이퍼나 학부 졸업논문 정도로 확장하여도 괜찮을 주제인 것 같습니다. 한류가 지속된다면, 한국어 단어를 영어권 화자들이 차용(빌려씀)하는 경우가 많을텐데, "영어권 화자의 한국어 차용"이라는 측면에서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목차

     

     

    김정은-푸틴 정상회담

     

    1. 재미있는 /ㅡ/ 모음

    한국어에서 /ㅡ/ 모음은 상당히 재미있다. 외국어를 차용할 때 모음이 필요한 순간 끼어드는 게 바로 /ㅡ/ 모음일 정도로 기본 모음이다. 예컨대 strike [stɹaɪk]를 차용할 때는 source language에 없는 모음이 세 번이나 들어가서 "스트라이크" 로 차용한다. 이때 세 모음 모두 /ㅡ/ 다.

     

    [이 글]에서 언급했지만, 많은 한국어 관련 논문에서 /ㅡ/ 모음을 /ɨ/로 전사하는데, 나는 (관성 때문인지, 게을러서인지) /ɯ/로 쓰곤 한다. 서울방언 화자인 내가 실제로 이 모음을 어떻게 발음하나 알아보기 위해 녹음을 해서 포먼트를 측정해보기도 했다. 그 결과 나는 그 모음을 [ɨ]로 발음하고 있었다. /ɨ/와 /ɯ/를 가르는 관건은 혀를 얼마나 전진시키느냐이다.

     

    그런데 영어권에서는 이 모음을 어떻게 발음할까? 일단 영어의 음소목록에는 /ɯ/도 /ɨ/도 없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겠지만, 원순모음화해서 [u]로 발음하거나, 영어에서 아무데나 끼어드는 모음 [ə]로 발음하는 것도 하나의 가능성이다.

     

    음성학의 묘미는 직접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은 음성 데이터가 대기 속의 산소처럼 많고 그걸 분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Praat)도 공짜이기 때문에, 궁금하면 아주 간단하게 수집해서 분석해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그래서 해보았다.

     

     

    2. 뭘 해본 거지?

    김정은이 러시아에 가서 푸틴과 회담을 한다는 뉴스가 여러 영어권 언론에 보도되었다. 당연히 북한 지도자의 이름이 발음되었고, /ㅡ/ 모음이 들어있다. 

     

    그래서 호주, 캐나다, 미국, 영국[각주:1]의 뉴스 클립들을 몇개 씩 모아서 영어권 화자, 특히 언론 분야 종사자들의 '교육받은 발음'(educated speech)에서 한국어 /ㅡ/ 모음을 어떻게 차용하는지 살펴보았다.

     

    구체적으로는 포먼트formant 값을 보았다. 포먼트 값, 특히 F1 F2값은 조음위치를 알 수 있는 간접적 지표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한국어에서 /ㅡ/ 모음을 /ɨ/로 전사하기도 하고 /ɯ/로 전사하기도 하는데, 이 두가지를 가르는 관건은 혀를 얼마나 전진시키느냐이다. 혀를 얼마나 전진시키느냐는 F2값을 보면 알 수 있다.

     

    프랏을 이용하면 손쉽게 포먼트 분석을 할 수 있다. 모음 발화 영역을 선택해서 조음 개시부터 해서 50% 지점까지의 포먼트를 측정해서 평균냈다. 뒷부분의 경우 이어지는 음운환경이 다양해서[각주:2] 보지 않았다.

     

    데이터는 여기있으니 프랏에서 열어서 직접 보고 싶은 사람은 보시오.

    Praat에서 열 수 있는 collection 파일

    혹은 시청각 영상으로 보고 싶은 사람을 위해 아래에 동영상을 넣어놓았다.

     

     

    사실 나는 음성학자가 아니라서 음향분석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해 늘 자신이 없지만, 대신 이렇게 원자료와 어떻게 했는지를 솔직히 공개하면 된다. 그럼 더 훌륭한 음성학자가 제대로 분석할 수 있을테니까. 

     

    3. 결과: 한국인 아나운서와 비교

    결국 4개 국가의 화자 8명이 발음한 "김정은"을 수집해서 /ㅡ/ 모음 발화 총 12개 토큰을 분석했다. F1, F2 그리고 F3값은 아래와 같다.

     

    ID Country Gender repetition F1 F2 F3
    Peter Australia Male 1 470.5639 1217.52 2631.185
    Peter Australia Male 2 442.0148 1150.426 2503.636
    Peter Australia Male 3 429.0151 1171.965 2575.785
    Peter Australia Male 4 511.3654 1167.484 2631.931
    Adrienne Canada Female 1 626.5046 1607.294 2860.466
    Briar Canada Female 1 406.8553 1321.09 2639.113
    Global Canada Female 1 603.1371 1734.552 2904.962
    CNN USA Female 1 496.5223 1320.109 2581.698
    Alexander USA Male 1 510.5797 1192.189 2231.633
    BBC caster UK Female 1 600.8822 1294.173 3076.473
    BBC caster UK Female 2 476.6166 1296.688 2858.913
    BBC journalist UK Female 1 552.2217 1798.547 2808.514

     

    이렇게 숫자만 던져놓으면 뭔 의미인가 잘 알 수 없으니까, 한국인 아나운서들은 단모음을 어떻게 발음하는지랑 비교해보면 좋을 것 같다. 왜 보통의 한국인 화자가 아니라 아나운서를 보았냐 하면, 애초에 내가 수집한 영어권 발화들이 언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인 아나운서 발음 데이터는 하영우 & 오재혁(2017)[각주:3]에서 가져왔다.

     

     

    3.1 남성 조음 비교

     

    위의 도표는 모음삼각도와 쉽게 비교될 수 있도록 축을 구성한 것이다. F2값이 높을수록 조음점이 앞에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F1값은 높을수록 조음점이 낮다는 것을 시사한다. 

     

    영어권 남성 화자 2명이 있었다 호주 시드니의 신문사 국제부 에디터인 Peter Hartcher의 발화에서 나온 /ㅡ/ 모음을 빨간색 점으로 표시했고, 전직 국가안보위원회NSC 국장이었던 Alexander Vindman의 /ㅡ/ 모음을 파란색 점으로 표시했다. 한국인에 비해 두 영어권 화자의 조음점이 낮고 혀의 위치가 비교적 뒤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두사람의 모음은 [ə]나 [ʌ]보다는 확실히 조음점이 높지만, 한국인 아나운서만큼 고모음으로 발화하지는 않았다. 한국인 화자들에 비해서 혀가 뒤로 간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영어 모음 인벤토리에서는 중설고모음(혹은 비원순 후설고모음) 영역 자체가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어의 /ㅡ/ 모음을 따라하기로는 이게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3.2 여성 조음 비교

    이번에는 여성 언론인들의 /ㅡ/ 모음 조음을 살펴보자. 의도치않게 여성 샘플이 많이 수집되었다. 신기하게 항상 여성 샘플이 더 많이 수집된다.

     

     

    위의 도표도 모음삼각도와 쉽게 비교될 수 있도록 축을 구성한 것이다. F2값이 높을수록 조음점이 앞에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F1값은 높을수록 조음점이 낮다는 것을 시사한다. 

     

    여성 화자들의 모음 발화에서 F2 값의 편차가 크게 나타났는데, 이것은 한국인 아나운서와 영어권 언론인들 모두에게서 나타난 흥미로운 현상이다. 아마 이것은 언어적인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F2 값 측정방식에서 오는 한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슨얘기냐하면, 남성 목소리 여성 목소리 사이에서는 기본주파수(F0)를 포함해서 포먼트 분포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것은 목소리가 만들어져 나오는 생리적 구성의 차이(성대의 길이 등) 혹은 발화된 음향이 녹음되고 포먼트분석되는 방식에서의 한계 때문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남성발화와 여성발화를 반드시 나누어 따로 분석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나에게는 확답이 없다. 음성학자한테 물어보자.

     

    또한 앞서 본 남성 발화에서처럼 영어권 화자들이 한국어 아나운서들보다 확실히 /ㅡ/의 조음점이 낮다. 애초에 이것은 확실히 영어와 한국어 간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4. 한계

    한가지 고려하지 못한 주요 요소는 원순모음화하는지 여부인데, 한국어 /ㅡ/모음이 비원순모음인 데 반해 영어권 화자는 김정은의 영어표기 Kim Jong-un 에 이끌려서 /ㅡ/를 원순모음으로 발음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스펙트로그램 상 원순모음 판별을 어떻게 하는건지 좀 복잡하다. 무엇보다 각 화자별로 baseline 을 두고 비교를 해야하는데, 이 글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게 한계다. 아마 바통을 이어받아서 더 진행한다면 (아마도 나는 안할거다) 각 화자별로 /u/ 의 발화를 딴 다음 그걸 비교대상으로 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애초에 각 화자들의 모국어(영어) 모음 삼각도를 그린다음 그 모음 삼각도를 baseline으로 삼는 게 더 타당할 것같다.

     

    또한 샘플의 개수가 너무 적다는 것도 한계다. 근데 불과 십 몇년 전 실험음성학 연구들 보면 화자 3명, 5명 갖고도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내던 걸 보면, 샘플의 수가 적다는 건 그닥 흠이 아닐지도???

     


     

    자, 도표상으로만 봐서는 캐나다 CBC 소속의 Briar Stewart 기자가 /ㅡ/ 발음을 가장 한국인에 가깝게 한 걸로 보이는데, 기념으로 이사람의 '김정은' 발음을 다시 들어보자. (오 스무스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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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실 뉴질랜드 모음이 매우 재미있어서 뉴질랜드 뉴스를 꼭 분석하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뉴질랜드 뉴스 보도 중에선 김정은을 다룬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본문으로]
    2. Kim Jong-un이 phrase final인 경우도 있었고, 뒤 이어서 ... regime, ... loves, ... wants 등등 다양한 단어가 나옴 [본문으로]
    3. 하영우 & 오재혁 (2017). 아나운서의 단모음 실현 양상과 특징. 음성음운형태론연구, 23(1), 55-9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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