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보는 언어학과 교수님들과는 어떤 얘기가 나올까?
"적당히 사용감있는 중고 음운론자 팝니다" 식의 중고매매(ㅋㅋ)를 위해 처음보는 사람들과 계속 인터뷰를 하다가, 벌써 8월 말이 되어간다. 아마도 이런 인터뷰는 이제 한동안 없을 거라 생각하니 화두는 사람, 교과서, 박사논문 이렇게 세 가지로 떨어지는 것같다는 생각을 했다.
깊이있고 뉘앙스가 담긴 대화가 아니라 그냥 얕고 넓은 대화에서, 이 세가지는 말그대로 '화두'다. 대화할 때 화에 두목 같이 뭔가 대표적이고 중요한 걸 뜻하는 두 (원래는 '머리'라는 뜻) 이렇게 해서 화두다.
한 마디 두 마디 정도로, 사람 교과서 박사논문에 대해 빠르게 의견을 교환한다.
사람도 교과서도 박사논문도 깊게 파려면 한없이 깊을 수 있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교과서는 몇 개에서 십여 개의 챕터로 구성되며 박사논문도 분량이 상당한데, 대화에서 소통되는 건 그냥 '인상'이다. 이 사람이 어떤 연구를 하냐, 이 교과서가 어떤 느낌이냐 (좋다/나쁘다), 이 박사논문은 뭘 연구했다, 등이 그냥 한마디의 말과 특히 이름(레이블이나 키워드)으로 주고받아진다.
'교과서'가 자꾸 나오는 대화주제라는 건 박사과정 학생일 땐 잘 몰랐는데 요즘들어 새로 느끼는 점이다. 그런데 이 교과서야 말로 완벽하다 하는 이야기는 결코 안나오더라. 다들 어딘가 하나씩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한다. 그렇다고 해서 딱 맞춤인 교과서를 직접 저술하여 사용할 수 있는 사람/집단은 극소수에 불과한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교과서에 대해 뭐가 좋고 뭐가 나쁘고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대화를 하는 경우는 없다. 그냥 모든 교과서는 늘 "별로"다. 그리고 교과서는 어떤 "느낌"(인상)을 주고 그래서 수업에 사용하기로 결정하거나 바꾸기로 결정하거나 하는 듯하다.
언어학개론은 본인들은 Fromkin이나 Yule을 배웠을텐데 최근 몇년 사이에는 사용되는 곳을 별로 못 봤고, 아무래도 캐나다에 있다보니 Essentials of Linguistics 도 자주 사용되는 듯하다. 학교 커리큘럼에 맞춤인 리딩 목록을 쓰는 곳도 많은 것같다. 가장 의견이 많이 갈리는 부분.
음운론은 Hayes, Peng, Gussenhoven & Jacobs, Zsiga 등이 쓰이는 것같고 OT는 교과서로 회자되는 게 Kager밖에 생각이 안 나네.
아래 '접은글'을 펴면 저자이름으로 언급된 교과서들의 정체와 간단한 설명이 나옴.
- Fromkin: An Introduction to Language [위키피디아 링크] (쓸데없는 정보: 내가 들은 영어학개론에서도 이 책을 썼음)
- Yule: George Yule이 쓴 The Study of Language [isbn 링크] (쓸데없는 정보: 이 책은 판갈이를 참 자주한다)
- Essentials of Linguistics (쓸데없는 정보: 오픈 액세스다. 사실 개론서를 비싸게 돈 내고 사게 하는 거 별로인 것같다. 물론 저자분들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중요하지만, 언어학 첫발 들여놓게 하는 데 경제적인 부담을 주는 게 더 안될 일이라는 생각)
음운론
- Hayes: Bruce Hayes가 쓴 Introductory Phonology [goodreads 링크]
- 쓸데없고 긴 정보: 만약 내가 이 블로그에서 음운론과 관련해 이상한 소리를 한다 생각하면 내가 이 책을 과대해석해서 그랬거니 라고 생각하시길.ㅋㅋㅋ 아마도 가장 인기있는 음운론 교과서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나는 AMP 컨퍼런스에서 화장실에서 소변보다가 Hayes를 처음 만났는데 순간 든 생각이 이 책에 사인받을 수 있을까 였음.ㅋㅋㅋ
- Peng: Long Peng이 쓴 Analyzing Sound Patterns [goodreads 링크]
- 추천하는 책이다. 사소한 오류가 있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이 책은 정말정말 좋은 책이다. 지식전달도 전달이지만 음운론한다는 게 뭐냐 재미를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바로, 언어현상 데이터를 정리하고, 일반화하고, 분석하는 재미를 알려준다는 게 이 책의 매력이다.
- 사실 이런 '언어현상이 대빵먹어' 식의 책은 음운론, 음성학 양쪽에서 까일 가능성이 높다. 이론을 깊이하는 음운론자들은 너무 얕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개론용 교과서의 목적이 음운론의 모든 하위분과에 정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음성학은 거의 안 다룬다. 다시 적는데 이 책은 음성학이 음운론을 위해 꼭 필요한 정도만 나온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 이유때문에 음운론 개론을 위해 아주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 또 하나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거의 독자들 멱살잡고 끌고가다시피하면서 언어데이터 분석을 해주는데, 사실 논문을 봐도 잘 정리된 데이터와 주장이 일직선으로 쫙 연결되어서 그 이면에서 어떻게 데이터를 분석하는지 경험해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데이터 딱! 분류 딱! 개념 딱! 분석 (실패) 딱! 대안분석 딱! 성공 딱! 추가 데이터 등장 딱! 대안분석도 실패 딱! 그럼 어떻게 수정해야하는지 딱! 이렇게 다 알려준다.
- 최적성이론(OT)도 좀 나온다. 후반부에 초분절 다룰 때 처음 OT가 소개된다. 앞에선 OT 프레임워크에서 분석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OT는 소개 정도이지 OT 교과서라고 하기는 어렵다.
- 그런데 생각해보면 OT가 처음 각광받게 된 계기가 Autosegmental 그리고 성조언어(Tonal language) 분석하는 틀로서였으니까, OT에 대한 이야기는 철저히 그 맥락 안에서만 하는 게 개론의 목적에는 더 타당할지도 모른다.
- Gussenhoven & Jacobs: Understanding Phonology [위키피디아 링크]
- 쓸데없고 긴 정보: 이 책은 불친절하다는 평이 있는 듯하다. 난 사실 책 전체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나 수업에서 사용해본 적은 없기 때문에 의견이 없다. 자질론 부분만 많이 봤다. 그 부분은 훌륭하다. 다만 소문을 듣기로는 서술이 너무 빠르고 과도하게 넓은 범위를 담고 있어서 학부수업에서 실제로 교과서로 사용하기에는 벅차다고 한다.
- Zsiga: Elizabeth Zsiga가 쓴 The Sounds of Language [isbn 링크]
- 쓸데없고 긴 정보: 1판은 주황색 불이고 2판은
까스불파랑불이다. 책이 엄청 두껍다. 학생들에게는 '리딩에 시간투자를 해야한다'라고 분명하게 말을 해주어야 한다. 장황하고 배경지식을 많이 제공해주어서 시간을 투자해서 읽으면 엄청 유식해진다. 특히 음성학적인 정보가 매우 방대하다. 리딩을 발췌해서 잘 구성하면 음운론 수업에 쓰기도, 음성학 수업에 쓰기도 좋은 책같다. (근데 나는 음성학 잘 몰라서, 아마 음성학자들이 볼 때는 의견이 다를 수 있을 듯하다.)
- 쓸데없고 긴 정보: 1판은 주황색 불이고 2판은
- Kager: René Kager가 쓴 Optimality Theory [goodreads 링크] (쓸데없는 정보: Goodreads에 달린 리뷰에서 볼 수 있듯, 약간 최적성이론 교과서 중에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 아닐까한다.)
- OT 얘기가 나온 김에, 위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난 개인적으로 Doing Optimality Theory도 도움이 되었다. 다만, 기본적으로 OT 귀동냥을 좀 한 다음에 봐야하고 a grain of salt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함.ㅋㅋ 이봉형 교수님이 "최적성이론 해보기" 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셨는데 "해보다"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같다.
'사람'은 "뭐를 연구하는 사람"/"뭐를 연구했던 사람" 정도의 캐릭터(?)로 소비되는 것같다. 산만하게 이것저것 하는 사람보다는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될 수 있는 (인식될 수 있는) 연구를 하는 사람이 더 회자되는 것같다.
마지막으로 '박사논문'은 "요즘 이런 논문이 나왔더라"하는 가십성(?) 대화를 상당히 많이 한다. 실제로 그 박사논문을 펼쳐서 정독을 한 경우는 흔치 않고, 디펜스에서 들었던 이야기, 컨퍼런스 발표 등에서 들었던 이야기 등을 딱 한마디 정도의 인상으로 압축하여 교환한다. 그게 전부다. 심도있게 비판을 한다거나 이게 맞는 소리니 틀린 소리니 뭐가 잘됐느니 잘못됐느니 하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세미나를 할 때 박사논문을 발제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맥락에서 언급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럴 땐 깊이있게 논의한다.
정일영 선생님 박사논문을 최근에 본 영향 때문인지 세 가지 모두 Perceptibility로 귀결되는 것같다. 교과서는 '느낌', 사람은 '키워드' 그리고 박사논문은 '인상'으로 인식가능(perceptible)하고 인식가능해야 회자된다.
이어서 어떤 글을 읽을 건가요?
- 글이 유익했다면 후원해주세요 (최소100원). 투네이션 || BuyMeACoffee (해외카드필요)
- 아래 댓글창이 열려있습니다. 로그인 없이도 댓글 다실 수 있습니다.
- 글과 관련된 것, 혹은 글을 읽고 궁금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댓글을 달아주세요.
- 반박이나 오류 수정을 특히 환영합니다.
- 로그인 없이 비밀글을 다시면, 거기에 답변이 달려도 보실 수 없습니다. 답변을 받기 원하시는 이메일 주소 등을 비밀글로 남겨주시면 이메일로 답변드리겠습니다.
'생각나는대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학생도 학생들도 사과를 먹는다 (0) | 2026.08.15 |
|---|---|
| LLM은 안 도와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0) | 2026.08.01 |
| 잘못된 일반화 (0) | 2026.07.29 |
| 생각나는대로 모음조화 (3) | 2026.07.28 |
|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0) | 2026.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