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요약
음운론의 연구주제 중 하나인 모음조화를 최적성 이론에서 어떻게 다루나 큰 틀을 생각나는대로 써봅니다. 귀동냥 정도 했다 생각들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관심이 생기면 책이나 논문 혹은 챗봇을 통해 더 공부를 이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목차
1. 화두 (혹은 데이터)
최적성이론과 규칙기반에서 모음조화를 어떻게 설명하나 보자. 한번 생각해두면 그리고 다른 종류의 조화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혀높이 조화의 예를 들어보자. (0)에서는 조화를 유발하는 trigger를 파랑, 조화를 당하는 target을 빨강으로 표시했다.
(0.i) 순행조화 (어간 /ti/에 접미사 /-to/가 붙음)
/ti-to/ → [titu]
(0.ii) 역행조화 (어간 /to/에 접두사 /-ti/가 붙음)
/ti-to/ → [teto]
파랑색은 고집이 세서 자기는 안 변하고 빨강색을 자기랑 닮게 만든다.
(0.i)에서는 파랑색이 고모음(high vowel)이라 뒤에 따라오는 모음도 중모음 /o/에서 고모음 [u]로 바꿔버린다. 파랑과 빨강의 방향이 순방향이라서 순행조화다.
반면 (0.ii)에서는 파랑색이 중모음(mid vowel)인데 자기 앞에 있는 빨강모음인 고모음 /i/를 끌어내려(??) 자기랑 비슷한 중모음 [e]로 바꿔버린다. 파랑과 빨강의 방향이 여기서는 역방향이다. 그래서 역행조화다.
2. 규칙기반에서는 어떻게 설명하나
2.1 규칙이란
현대적인 음운론의 시작은 1968년에 나온 The Sound Pattern of English다. 줄여서 SPE라고 한다. SPE가 말하는 음운론은 "자질을 규칙에 따라 조작하는 놀이" 같은거다.
자질이 뭐냐 쉽게 말하면 설명서 같은건데, 입과 혀처럼 말소리 내는 것과 관련된 신체기관(조음기관)이 이 설명서를 읽고 말소리를 만드는 것이다. [자질에 관해 더 알아보기]
규칙은 뭐냐. 예를 들자면, "미역국"같은 "국"에 있는 "물"을 "국물"이라고 할텐데, 머리속으로는 "국"과 "물"을 생각해도 입밖으로 발음해 낼때는 "궁물" 처럼 발음된다. 이렇게 ㄱ을 ㅇ으로 바꾸는 것이 음운론이 하는 일이고, 이렇게 바뀌는 것은 아무렇게나 하는 게 아니라 규칙에 따라 한다. 단지 "국물"이라는 단어 하나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북미"[붕미], "독물"[동물], "삭막"[상막] 처럼 ㄱㅁ이 이어져 나올 때는 모두 ㅇㅁ로 발음되고, 심지어 "국난"[궁난] 처럼 ㄱㄴ이 이어져 나올때도 ㄱ이 ㅇ으로 바뀐다. 즉, ㄱ받침이 ㅁㄴ같은 콧소리 앞에 나올 때 규칙적으로 ㅇ로 바뀌는 것이다.
SPE에서는 규칙, 그리고 자질 이게 초점이고, 특히 SPE에서 "음운 규칙은 어떠어떠해야 한다"라고 형식화한 게 수십년 간 표준으로 정착되었기 때문에, 뭔가 규칙을 써서 음운론을 하는 것을 SPE식이다, 규칙기반 접근법이다 이렇게 말한다.
2.1 규칙기반에서 조화
규칙기반 접근법에서는 순행조화와 역행조화에 대해 각각 다른 규칙을 사용한다.
규칙기반에서는 조화가 순행인지 역행인지에 따라 맥락(context)이 달라진다. 맥락 부분에 하이라이트를 줘서 각각의 규칙을 간단히 표현하자면
(1.i) 순행조화를 도출하는 규칙은
V → [α high] / [α high] C₀ __
(1.ii) 역행조화를 도출하는 규칙은
V → [α high] / __ C₀ [α high]
이럴 것이다. 참고로 V는 모음, C는 자음, 그리고 C₀ 는 0개 이상의 자음을 말한다.
3. 고전 최적성이론
1960년대 SPE 이후 규칙기반 이론이 음운론의 표준이었으나, 점차 새로운 접근법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즉, 발음되는 소리에 제약을 가하는 방식으로 설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약을 사용하는 음운론은 이전부터 계속 존재했으나, 1990년대에 이르러서 비로소 최적성이론(Optimality Theory)로 정형화되기에 이른다.
눈감은 컨테이어벨트에 착착 규칙이 적용되는 것과 달리 최적성이론에서는 기저형(머리속에 있는 형태)에 대해 가능한 출력형(가능한 발음형)들이 쭉 후보로서 나열되고, 각 제약이 후보를 좋다/나쁘다 평가한다. 그리고 가장 좋은 후보가 출력된다. 가장 좋은, 최적(Optimal)의 후보가 선택된다고 하여서 최적성이론이라고 부른다.
규칙기반 이론에서 조화를 설명하려면 규칙이 2개나 필요했는데, 최적성이론에서는 순행조화와 역행조화가 단 하나! 진짜 단 하나의 제약서열로 설명된다.
순행조화건 역행조화건, 아니 사실 상당히 많은 음운작용이 유표성제약 ≫ 충실성제약 의 핵심적 제약서열의 변주다.
모음의 혀높이 조화에서는 유표성제약이 Aɢʀᴇᴇ(high), 충실성제약이 Iᴅᴇɴᴛ-IO(high) 되겠다.
두 제약의 정의는...
Aɢʀᴇᴇ(high)
*[α high, +syllabic] C₀ [-α high, +syllabic]
중간에 자음이 몇개가 됐건 [high] 자질값이 다른 모음이 나오는 후보에게 별 달아줘라.
Iᴅᴇɴᴛ-IO(high)
* x ℜIO y, x = [α high], y = [-α high]
입력형(Input)과 출력형(Out) 사이에 [high] 자질값이 다른 후보에게 별 달아줘라.1
그리고 두 제약 간의 서열은 Aɢʀᴇᴇ(high) ≫ Iᴅᴇɴᴛ-IO(high)
(여기서부터 사기꾼의 설명 시작)
(2.i) 순행조화 /ti-to/ → [titu]
| /ti-to/ | Aɢʀᴇᴇ(high) | Iᴅᴇɴᴛ-IO(high) | |
| ☞ | a. [titu] | * | |
| b. [tito] | *! | ||
(2.ii) 역행조화 /ti-to/ → [teto]
| /ti-to/ | Aɢʀᴇᴇ(high) | Iᴅᴇɴᴛ-IO(high) | |
| ☞ | a. [teto] | * | |
| b. [tito] | *! | ||
쨘 🪄. 완벽하게 설명됐다 (아니다)
(사기꾼의 설명 끝)
😂😂😂😂
사실 위와 같이 설명할 수는 없다. 밑장빼기처럼 후보군 조작하는 기법인데 학부생들이 의도치않게 쉽게 빠지는 함정이기도 함. Tableaux 그릴 땐 적어도 관심자질(즉 [high])과 관심위치(즉 각 모음) 의 모든 combination을 커버하는 후보군을 상정해야 한다. 쉽게 말해 후보가 반드시 4 (= 2 * 2)개여야 함.
예를 들어 순행조화다 하면 아래와같이 후보 4개 모두에 대해 평가를 해야한다. 예를들어 a.는 두 모음 모두 고모임인 경우니까 [titu], b.는 2번째 모음이 고모음이 아닌 경우니까 [tito] 같은게 된다.2 그 결과 승자가 a와 d 2개 나와버린다.
| /ti-to/ | Aɢʀᴇᴇ(high) | Iᴅᴇɴᴛ-IO(high) | |
| ☞ | a. [+high]...[+high] | * | |
| b. [+high]...[−high] | *! | ||
| c. [−high]...[+high] | *! | ||
| ☞ | d. [−high]...[−high] | * | |
역행조화의 경우도 입력형이 동일하고 제약서열도 같기 때문에 똑같이 승자가 둘이 된다.
겉보기에 OT는 기본적인 조화 패턴도 도출하다가 오류가 나버렸다!! 그니까 이런 쓸데없는 표 그리기 놀이 같은거 집어치우고 진리의 SPE로 돌아가자 막 이래야 하나??ㅋㅋㅋ
그럴리가!ㅋㅋ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제시된 데이터에서 조화의 방향성은 완전 무작위가 아니다. /ti/와 /to/라는 두 개의 형태소가 결합하는 /ti-to/의 경우 반드시 둘 중 하나가 핵의 역할을 하고 그리고 조화도 그 핵의 자질을 닮는 방향으로 나타난다. 핵은 '어간'같이 뭔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걸 말한다.
다시말해서 이전까지 (=규칙기반 시절에) /ti-to/ → [titu] 를 두고 순행조화라느니, 뭐 뒤에있는 모음이 앞에 있는 모음을 닮는다느니 했던건 /ti/가 어간이고 /-to/가 접미사라는 사실을 무시한 설명이었다.
반대로 /ti-to/ → [teto] 는 /to/가 어간이고 /ti-/가 접두사인 경우다.
규칙기반에서는 이런 형태론적 정보를 무시하고 그냥 뭐가 먼저나오니 뒤에나오니 이런것만 따져서 완전 다른 두 가지 규칙이 있어야만 조화 패턴을 설명할 수 있었지만, OT에서는 데이터를 제대로 반영한 입력형과 "어간의 모음 자질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Iᴅᴇɴᴛ-IO(F, stem) 같은 충실성제약 단 하나만 추가하면 방향성은 꽁짜로 얻게된다. 아니, 심지어 그 충실성제약 없어도 된다.
충실성제약 추가하면 Aɢʀᴇᴇ(high) ≫ Iᴅᴇɴᴛ-IO(high, stem) ≫ Iᴅᴇɴᴛ-IO(high) 뭐 이렇게 하면 되고 아마 이전글에서 설명했을 거다.
추가적인 충실성제약 안 쓰고 기존의 제약 2개만 가지고 마법처럼 정형을 도출하는 방법은, 접사의 모음을 높이 자질에 관해 미명세시켜버리는 것이다. 즉, 접사는 기저형에서 [high]자질값이 안 정해져있고 도출에 따라 +인지 −인지가 결정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같은 상태라고 보는것임.

(고양이를 넣고 싶어서 억지로 맥락을 만들었음)
왜 접사의 모음이 미명세냐고 OT 하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입력형이 /ti/인걸 어떻게 아는데?" 라고 대답할 것이다. 다른 곳에서도 적었다시피 "입력형이건 기저형이건 언어학자가 (논증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허상이고 가짜다." 사실 target의 모음은 alternate하며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음성학적으로 다르게 발견된다.
마치 한국어의 양순음이 어두에선 무성음이고 모음사이에선 유성음이니까 음운론적 입력형에서 아예 음성자질을 명세하지 않는것과 같은 이치다.
어쨌은 접사의 [high]자질을 미명세하고 입력형에서 ?로 표시했을 때...
(3.i) 순행조화 /ti-t?/ → [titu]
| /ti-t?/ | Aɢʀᴇᴇ(high) | Iᴅᴇɴᴛ-IO(high) | |
| ☞ | a. [+high]...[+high] | ||
| b. [+high]...[−high] | *! | ||
| c. [−high]...[+high] | *! | ||
| d. [−high]...[−high] | *! | ||
(3.ii) 역행조화 /t?-to/ → [teto]
| /t?-to/ | Aɢʀᴇᴇ(high) | Iᴅᴇɴᴛ-IO(high) | |
| a. [+high]...[+high] | *! | ||
| b. [+high]...[−high] | *! | ||
| c. [−high]...[+high] | *! | ||
| ☞ | d. [−high]...[−high] | ||
이렇게 된다.
위의 (2i-ii)와 비교했을 때, Iᴅᴇɴᴛ-IO(high) 의 평가가 달라진다. 입력형에 high자질이 없으면 출력형에는 뭐가 나오건 상관없다. 그래서 예를 들어 후보 (3ia)의 경우 파랑색 모음만 Iᴅᴇɴᴛ-IO(high)의 평가를 받고, 해당 후보의 파랑색 모음은 입력에서도 [+high], 출력에서도 [+high]이므로 별을 받지 않는다. 반면 후보 (3id)의 경우, Iᴅᴇɴᴛ-IO(high)의 유일한 평가 대상인 파랑색 모음이, 입력에서는 [+high]였다가 출력에서는 [−high]가 되었다. 달라졌다. 그러므로 별을 받는다.
4. 최적성 이론의 우월성
정리하자면, 방향성 측면에서만 다른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 규칙기반 프레임워크는 별도의 규칙 2개를 상정해야 하는 데 비해 OT는 하나의 제약 서열이면 충분하다. 어떤 설명이 더 우월한지는 명약관화. (주의: 내가 최적성이론 이후에 음운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규칙기반과 OT를 비교설명할 땐 철저히 OT 쪽으로 편향적임.ㅋㅋㅋ)
그런데 이렇게 최적성이론이 더 우월한 사례가 한 두개가 아니다. 20세기말 초기 OT 문헌을 보면 공모(conspiracy)라는 개념이 자주 언급되는데, 하나의 표면형 구조를 회피하기 위해 다양한 음운과정이 상정되어야 하는 것을 말한다. 비음 뒤 무성음 (*NC̥ )이 대표격이다 (Pater 19993). 분명히 자연언어에서 선호되지 않는 표면형 구조가 있는데, 이 한가지 회피를 문법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규칙기반 프레임워크에서는 번잡한 규칙과 규칙순을 상정해야만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반면 OT에서는 무표성제약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
5. 오늘날 OT에서는 조화를 어떻게 설명할까?
섹션 3에서 나온 Aɢʀᴇᴇ(F) >> Iᴅᴇɴᴛ-IO(F) 제약서열은 Baković (2000) 등 고전OT에서 제시한 방식이다.
난 연구주제가 조화가 아니라OT에서 조화를 다루는 아주 최신의 연구는 모른다. 그러나 코스웍하던 당시에는 모음조화건 자음조화건 그런 장거리 작용은 ABC (Agree By Correspondence) 제약이 표준이었던 것같다. 그런 연구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면, Walker, Rose 그리고 Hansson 등을 찾아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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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오늘날 충실성제약에 굳이 * x ℜIO y, x = [αF], y = [-αF] 같은 형식표기를 하는 걸 본적은 없다. Kager 교과서에도 형식표기 안함. 그런데 기왕 Agee 제약에 하는김에 구실 맞춘다고 억지로 만들어봤다.ㅋㅋㅋ x와 y 사이에 ℜIO 즉 입출력쌍(IO) 이라는 관계가 성립할 때, x가 [α high]이고 y가 [-α high]이면, *을 부여한다. [본문으로]
- 학부수준에서는 a.에 직접예시 [titu], b.에 직접예시 [tito] 이렇게 써주겠지만, 엄밀히 말해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자질로 써주는 게 타당하다. a.는 고모음 두개 연속, 즉 [titu]일수도 [titi]일수도 [tuti]일수도 [tutu]일수도 있다. [back]자질의 명세는 해당 tableaux로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후보에는 구체적인 모음이 나올 수 없다. [본문으로]
- Pater, J. (1999). Austronesian nasal substitution and other NC effects. The prosody-morphology interface, 310-34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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