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인적 성격 탓일 수도 있고, 내가 하는 공부의 성격 탓일 수도 있지만, 확신을 하기보다는 관찰을 하고 일반화를 하는 것같다.
인하대 정일영 초빙교수님이 유퀴즈에 나온 것을 보았다.
사실 난 2000년대 중후반 EBS 프랑스어로 정일영 선생님을 알고 있던 차였다. 거의 매 회차마다 부활 노래를 한구절씩 불렀던 것만 기억이 난다. ㅋㅋ 한번은 (촬영일 당시) 비가 내린다며 비와당신의이야기를 부르는가 하면, 정확한 맥락은 기억이 나지 않은데, 담배를 펴도 폐활량이 좋을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밖으로나가버리고———" (회상III)를 쭉 부르기도 했다 (물론 몇초 못하심).
사실 프랑스에서 통사론으로 박사를 했다는 것 정도를 알고 있었지, 한국에 돌아온 이후의 힘든 이야기는 유퀴즈에서 처음들었고 이후에 인터넷으로 좀 찾아보게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조금 놀랐다. 왜 놀랐는지가 이 글을 시작하게 된 계기다.
80년대말 해외 유학을 갔다가 돌아오신 분들은 대체로 어렵지 않게 취업이 되었다. 그 이유는 1995년 5.31 교육개혁에 있다. 5.31 교육개혁은 대학설립이나 학부설립을 자유롭게 풀어준 조치다.
한국 사회가 고도화됨에 따라 대학 교육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것과 맞물려, 대학 설립과 정원 확대가 자유화되니 대학 입학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대학생 뽑아놓으면 4년간 자습하다 졸업할 것 아니니까, 덩달아 대학교수 자리도 역대급으로 늘었다.
이렇게 새로 생긴 학교와 학과가 해외 유학 1.5세대들의 공급을 어느정도 받아주었다고 알고있다.
정리하자면, 정일영 선생님의 "다들 비슷한 시기에 돌아왔다"라는 표현에서 나타나듯, 당시 잡마켓에 공급(박사취득자)이 급증했던 게 사실이지만, 공급이 증가한 만큼 수요 (박사취득자가 갈 수 있는 테뉴어 TO)도 급증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는 모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큰 집단 단위에서의 패턴과 개개인이 마주하는 현실은 당연히 다르다. 아무리 비행기추락 사고 날 확률이 자전거 사고날 확률보다 낮다고 해도, 당장 나한테 비행기추락 사고가 안난다는 보장이 있는 건 아니듯.
여담으로 흔히 (서연고 등 오늘날 명문대가 아닌) XYZ 대학의 학부 80년대 학번과 90년대 이후 학번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한다. 80년대 학번의 경우 대학교의 타이틀을 떠나 대학을 나왔다는 것 자체가 엘리트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5.31 교육개혁 이후에는 정말 대학이 너무 난립하다보니 대학 이름 무관, 대학을 간다는 것 자체의 난이도가 무척 낮아졌다고 한다. 이를 돌려말하면 XYZ대학 80년대 학번 분들은 지금의 XYZ대학의 서열 기준으로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엘리트였다는 뜻이다.
취업이 쉽다 어렵다 하는 판단은 보통 내가 눈으로 보는 것으로 가늠하게 되는 것같다. 관찰이다. 내가 관찰하는 사례들은 정일영 선생님 세대의 사례들이 아니다. 다만, 그보다 한참 어린 세대들의 사례다. 솔직히 정일영 선생님의 세대는 이미 정년퇴직을 했거나, 곧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내가 그 세대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찰할 일은 없었고, 당연히 어렵지 않게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무슨 말이냐하면, X세대, M세대들 등 저 시기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는 한국의 잡마켓은 객관적인 상황에서 훨씬 암담하다. 어쩌면 '한국 잡마켓의 잔인함'은 이 블로그에 반복되는 테마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첫 글부터 그 소리를 해오고 있으니...
어렵지 않게는 오늘날과 비교한 상대적 개념이고, 직접 관찰한 적이 없기에 나이브하게 말할 수 있는 개인적 직관이다. 아마도 모두는 각자의 이유로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남의 어려움은 듣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 또한 듣지 않고도 타인의 힘듦을 아는 것이 가장 고차원의 공감이 아닐까?
덧:
정일영 선생님이 박사 논문을 뭐로 썼나 찾아보고 좀 벽을 느꼈다. 진짜 "어렵지 않게" 취소.ㅋㅋㅋ 그 시절 진짜 개 어려웠구나...
https://theses.fr/1995PA081041
Analyse des catégories fonctionnelles : propriétés du temps et de l'aspect du point de vue sémantique, et corrélation entre
Dans la grammaire generative, le caractere semantique des categories n'a pas ete souvent mentionne, car la syntaxe etait preoccupation absolue. Au cours de ce travail, notre dessein est de rechercher une possibilite de reveler l'interaction entre les propr
theses.fr
Analyse des catégories fonctionnelles : propriétés du temps et de l'aspect du point de vue sémantique, et corrélation entre la sémantique et la stucture syntaxique
원문은 웹상에 공개되지 않은 듯하여 도서관 통해 신청할 생각인데 메타데이터만 보고 벌써 질려버림. 1995년에 Jacqueline Guéron 지도로 시제, 상(相) 토픽으로 학위논문 통과됐다고 나와있다. Guéron이 왜 낯이 익은가 했는데 시제 세미나할 때 엄청 봤던 이름이다. 무식한 음운론 연구자도 알 정도의 통사론자였던 것이다! 이 정도면 정일영 선생님은 연구력(?)이 상당하신 것 아닌가?
아니 이 정도의 퍼포먼스에, 대학교를 떠나 다른 직업을 구한 것도 아닌데도 테뉴어가 안 될 정도면 도대체 같은 시기 취업되신 분들은 얼마나 괴물이었던 거야?
- 글이 유익했다면 후원해주세요 (최소100원). 투네이션 || BuyMeACoffee (해외카드필요)
- 아래 댓글창이 열려있습니다. 로그인 없이도 댓글 다실 수 있습니다.
- 글과 관련된 것, 혹은 글을 읽고 궁금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댓글을 달아주세요.
- 반박이나 오류 수정을 특히 환영합니다.
- 로그인 없이 비밀글을 다시면, 거기에 답변이 달려도 보실 수 없습니다. 답변을 받기 원하시는 이메일 주소 등을 비밀글로 남겨주시면 이메일로 답변드리겠습니다.
'생각나는대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LLM은 안 도와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0) | 2026.08.01 |
|---|---|
| 생각나는대로 모음조화 (3) | 2026.07.28 |
|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0) | 2026.07.23 |
| Gen AI가 가져온 평가의 bottleneck (0) | 2026.07.17 |
| 티스토리에 정이 떨어진 순간 (2) | 2026.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