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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분위기 언어학

정말로 '문해력 저하' 맞습니까?

sleepy_wug 2021. 3. 18.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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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대 문해력"이라고 검색해보면 마치 요즘 중고생들은 무식하고 (문자)언어를 제대로 쓸줄 모르는 것 같은 인상이다. 이러한 담론의 가장 전형적인 것은 아래에 아카이브 한 어느 커뮤니티의 글이다.

 

arca.live/b/dogdrip/22867485

 

요즘 급식들 문해력 수준. - 냥드립 채널

책을 안 읽나???

arca.live

(아카이브: archive.is/omDg8 )

 

EBS에서 방송된 "당신의 문해력"이라는 방송을 캡처한 것으로 보인다. 재밌는 것은, 캡처된 장면들만 놓고 보았을 때 문제시되는 것은 문해력이 아니라 어휘력이라는 점이다. 만약 방송에서 묘사된 것이 문제라면 방송을 제작한 PD부터 게스트들까지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어느누구도 '문해력'이라는 어휘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어휘력 부족이다. 

 

그런데 정말 문해력의 저하인가? 아니면 언어변화를 포착하지 못하는 기성매체들이 우물에서 숭늉찾는 격으로 "젊은이들이 어른들의 고상한 언어(엣헴)를 모른다"고 투정하는 것인가?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기성세대와 젊은세대들은 언어생활 자체가 다른 데에서 기인하는 오해이자 갈등이다. 10대 20대를 제외한 지금 살아있는 모든 세대는 중앙화/표준화된 언어생활을 해왔고, 그에 반해 젊은세대들은 파편화된 언어생활을 하고있는 중이다. 그리고 규범과 제도가 부재한 자연스러운 언어생활은 오히려 후자에 가깝다. 따라서 EBS에서 제시된 "왜 옛날사람들이 쓰는 표현을 요즘세대가 모르냐?" 문해력의 저하라고 보기 힘들다. 같은 논리로 "왜 옛날사람들은 요즘말을 모르냐? 문해력 문제있어?" 하면 과연 기성세대는 어떤반응을 보일까?  

 

기술의 발전이 언어에 가져오는 영향에 대해 많은 연구들이 있었지만, 유튜브나 트위치 그리고 인터넷 커뮤니티들 같이 언어변화에 큰 영향을 준 기술은 많이 없었다. 이러한 것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고도로 세세하게 나눠지는 파편화된 커뮤니티들이기 때문이다. 각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는 유행어들이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다. 심지어 트위치는 채널마다 고유의 문화가 있다. 이것은 30대 이상의 기성세대가 경험해온 언어문화와는 다르다. 그들이 경험해온 언어문화는, TV나 라디오 등 중앙화된 매체에서 '교양있는 언어'가 나오고 그것으로 맞춰진 게 '어휘력이 좋고 문해력이 좋다'고 평가받는 문화다. 심지어 고연령층의 경우는 국정화된 단일한 교과서로 언어를 강제로 표준화당했던 세대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형화된 언어다. 오히려 커뮤니티 자생적인 언어가 실제 언어에 더 가깝다. 많은 민족주의자들이 착각하고있지만, 일제시대에도 한반도에서는 한국어가 쓰였다. 서슬퍼런 30년대, 중앙매체와 학교에서 일본어가 쓰이던 시대에도 사람들의 일상언어는 한국어였다. 규범이 없던 이 시기의 한국어는 지역마다 계층마다 조금씩 다른 언어들이었지만, 다른 커뮤니티 출신이 소통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소통을 위한 언어는 필요에 따라 조립되었기 때문이다 (연구주제로서는 accommodation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하며, 작게는 음성단위에서부터 크게는 어휘와 표현에까지 대화상황에 따라 화자들은 조금씩 다른 언어표현들을 전략적으로 사용한다.). 충분히 소통이 가능하고 표준화된 무언가를 주입시킬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나는 이런 담론 자체가 기성세대들의 게으름이라고 생각한다. 소통이 안되면 소통이 될 수 있도록 재조립하는 게 아니라 (즉, 개념과 뜻을 전하기 위해 표현을 그때그때 바꾸는 게 아니라) 표현을 고정해놓고 왜 그 표현을 모르느냐 "모르면 배워라" 라고, 팔다리 다 잘린 기형의 언어를 주입시키고 싶은 것이다. 

 

독서가 "텍스트"를 읽는 것이라면 그들은 독서를 많이 안하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수많은 게시글들은 뭐 '마음에서 마음으로' 아니면 '텔레파시로' 소통되나? 모두 문자언어들 아니냐? 유튜브 영상들 트위치 영상들에서도 수없이 음성언어와 문자언어가 쏟아진다. 소통이 소규모 집단지향적이 되고 한편으로는 국경과 기타 바운더리를 초월한 초월적이 되면서 그들의 언어는 그때그때 조립되고 달라진다. 그들은 서로 문자언어와 음성언어로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다.

 

마지막으로 기득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결국 이미(기) 가진(득) 권력(권)으로 이런식의 폭력을 가할 수 있다는 게 기득권 아닌가? 다 좋지만 문해력이니 어휘력이니 들먹이며 공포심 조성하는 폭력을 가하지는 말자.

 

적어도 이 칼럼 에서 지적하듯이 '팬데믹'이니 '코호트 격리'니 '연동형 비례대표제' 같은 어휘의 사용은 언어권력에 의한 폭력적 어휘채택이라고 지적받지 않는가? 교과서에 아이들이 모르는 어려운 단어들을 쓰는 건 폭력적 어휘채택이 아닌가?

 


2023년 9월 추가:

최근 EBS에서 이 포스팅과 비슷한 논조의 다큐를 방영한 모양이다. 즉, "교과서가 문제다"라는 요지다. 아래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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