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연말 연휴동안 컴퓨터도 핸드폰도 끄고 쉬면서 타분야 책을 읽었습니다.
추천받은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을 다 읽고 다니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이 생각나서 결국 이렇게 연말이 다 가버렸네요.ㅋㅋㅋ
모두 "비생산적 탐구의 즐거움" 라는 테마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언어학이든 뭐든 당장 쓸모가 없는 학문을 업으로 삼는/삼고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기에 소개합니다.
이 글에서는 무슨 책들인지 그냥 간단히 소개하고 뒤에는 잡다한 이야기를 생각나는대로 적었습니다. 잡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가깝습니다.
목차
1. 책 3권

John Williams - Stoner 전간기 영문과 교수로서 살았던 가상인물 William Stoner의 삶과 죽음을 다룹니다. 한국에는 '스토너'로 번역되었습니다. [알라딘 링크]

Karen Armstrong - The Spiral Staircase 자서전입니다. 탐구적 삶에서 의미를 찾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에는 2025년에 "마음의 진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것 같네요. [알라딘 링크]

Zena Hitz - Lost in Thought: The Hidden Pleasures of an Intellectual Life 논픽션입니다.1 마찬가지로 탐구적 삶에서 의미를 찾은 역사상의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것을 종합해서 "성공도 돈도 아니고 역시 비생산적 탐구하며 자기만족하는 게 인생 최고의 즐거움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한국에는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알라딘 링크]
(사실 뒤의 두 권은 제 블로그의 다른 글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링크]
2. 탐구의 즐거움
미식가가 MSG가득하고 단순한 음식보다 복잡하고 미묘한 요리를 좋아하고,
닳고 닳은 영화평론가가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에 높은 평점을 주듯이,
인생의 진짜 즐거움 역시 후천적으로 쌓아올린 취향(learned taste)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감히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에는 비생산적 탐구만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탐구가 주는 도파민이 있습니다.
복잡미묘한 요리나, 예술영화나, 탐구의 도파민 같은 건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선불교 공안(公案) 중 "짠맛을 묻거든 소금을 먹여라"라는 게 있다던데, 짠맛이든 MSG든 상대한테 먹여서 소통이 되는 맛이 있는가하면 복잡미묘한 취향은 "헤이 츄라이 츄라이!" 한대도 소통이 될 리가 없죠.
탐구의 즐거움 역시 그러한 소통불가능한 취향인 것 같습니다.
'범준에 물리다' 유튜브 채널의 영상에도 물리학 교수님들께서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과학자는 인간의 가장 행복한 상태
(출처: 어이없는 영화 속 장면을 본 물리학자들의 반응 ㅋㅋㅋ (가능 vs 불가능)ㅣ범준에 물리다 [링크] )
3. 잡다한 이야기
대학원 과정생으로 지내다보면 같은 강의실에 앉아있더라도 여러 종류의 학생들을 보고, 대학교에 임용된 교수님들 역시 여러 다른 이유로 그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학부때 만난 A 교수님은 인생목표가 "빨리 교수되어서 연차 많이 쌓아 사학연금 많이 받기"였기 때문에, 스피드런 하듯이 학부 들어오자 마자 본인이 "구워삶을 수 있는" (본인이 자랑하듯 한 말임) 지도교수를 찾은 후 석박 통합과정을 통해 삼십대 초반에 최초 임용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수업에는 그닥 관심이 없고 시험도 늘 객관식, 그것도 족보를 타는 방식이었습니다. 연구실에 앉아있지 않고 학회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미래의 A 교수가 될 법한 학생들도 강의실에서 여럿 보았습니다. 일례로, 저의 후배였던 B는 뭐가 급한지 검정고시를 위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남들보다 빠른 시기에 학부를 입학, 졸업한 사람입니다. 대학원에 올라와서도 지금이라면 ChatGPT가 쓸법한 논문을 써갈기는 학생이었습니다. 궁리도 호기심도 탐구도 없이 "있어야 하는 논문"을 음성학 석사논문으로 쓰고, 그것을 확장해서 박사논문으로 써서 졸업했습니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언어학과 과정생들은 늘상 "언어학하고 있네" 상태입니다. 사람의 삶에 어디든 언어가 있기 때문에 늘상 언어학 연구주제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B는 좀 예외였습니다. 학부를 언어학을 했기 때문에 남아있고 어떻게든 빨리 끝내서 언어학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피로감이 얼굴에 가득했습니다.
A 교수, 연구생 B 모두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이고 누군가에게는 '모범'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아마도 저를 어리석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효율적인' 내지는 '커리어 관리'에 비하면 저는 다소 좌충우돌하며 우왕좌왕하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과정이 즐거워서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경우니 그것보다 어리석은 게 또 있을까요. 여기말로는 take a scenic route (경치좋은 길을 탄다)고 하는데, 일부러 7번국도 타고 돌아가는 그런 느낌입니다.
A나 B 같은 사람들이 "똑똑해서" 학계에 남는 사람이라면, 저같은 사람은 "머리가 나빠서" 학계에 계속 남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링크] 머리가 나쁘니 계속 궁금하고 계속 알아야겠고 밖에서 보기엔 다 똑같을텐데 새롭다고 도파민 뿜뿐하고 있으니.ㅋㅋㅋ
그러나 저는 A나 B가 '즐겁다'라고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A교수의 조언은 모두 '어떻게 하면 절세를 하느냐'라든지 '갓생 리츄얼' 등에 관한 것이었고, 본인의 연구분야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괴로워하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B와는 교실 밖에서 언어학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한국 문화권에는 '성공'의 수단으로 공부가 이용되는 전통이 깊습니다. 과거제라는 근대적 체제를 일찍 경험한 역사가 있기에 공부를 통한 출세 거기에 특유의 동양적 가문 개념까지 접목되어 양명(이름을 높인다, 가문을 세운다)할 수 있는 공부가 최고의 공부였습니다.
반면 영미권에서는2 탐구 그자체를 위한 공부의 전통이 깊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본인이 좋아서 매일밤 별의 움직임을 정리하고 학교에 소속되어있지 않더라도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언가가 되지 않더라도 과정 그 자체에서 나오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입니다.
사적인 자리에서만 여러번 말한 것이긴 한데, 저는 그래서 캐나다로 온 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 제가 영문과 학부를 졸업한지가 오래되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지는 더 오래되어서 명확하지 않지만, 한국에서 문학은 시-소설-수필-희곡 으로 분류하지만 영미권에서는 흔히 literature를 픽션-논픽션으로 구분할... 겁니다. 이 각주를 왜 적냐면, 이런 책은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희곡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애초에 한국어 '문학'이 literature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문학'은 왠지 글로 된 예술작품? 그래서 "문예"에 가까운 느낌이지만 literature는 "앞선 선배들의 생각들이 들어있는 글"의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선행연구도 literature라고 부릅니다. [본문으로]
- 20세기 중반 이후 리버럴이 상아탑이 푼 "make a difference" (같이 공부한 사람들끼리 사회 요직 나눠먹고 woke values를 사회저변에 심어버리자) 라는 독이 퍼지기 전까지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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