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무슨 글
오늘 L2, bilingualism 연구하는 친구(이하 P)랑 점심을 먹었습니다.
날이 좋아 밖에서 부리또 먹으면서 이런저런 주변얘기하다가 어젯밤에 봤던 블로그 글(과 내 반응)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Phonetics and Phonology - 기본 개념
큰일남이제 안락하던 통사론을 떠나서음운론으로 가야함 갠적으로 음운론에 큰 트라우마가 있은꿈많고 순수하던 데학셍시절나한테 첫 C+을 줫던 음성학개론 Place랑 manner 자리를 그렇게 내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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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스크린캡처를 해서 챗GPT한테 번역을 부탁해서 같이 읽었는데, GPT의 번역은 제가 보기엔 나름 품질이 좋게 나와서 몇군데 제가 맥락만 설명해주고 오역같은 건 없었습니다.
여러 쓸데없는 얘길 했는데 아래 두 가지 포인트는 저 자신한테 새겨둘 만하다 생각해서 까먹기 전에 '생각나는대로' 정리하는 글입니다.
1. L2 learning과 이론음운론의 차이
2. 정확하지 않아도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치는 고치지 않는다.
말소리에 대한 음운론적 관계과 음소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된 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었습니다.
말소리의 음운론적 관계
0. 요약 말소리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말소리는 음운론적 관계 속에 있습니다. 음소는 말소리를 기반으로 쌓아올리는 허상이며 '개념'이지 실체가 아닙니다. 음소는 물리적인 특성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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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2 learning의 음운론은 '발음'이다
1.1 '발음쪽'에 대한 관심은 떨어진다
아마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이유겠지만, L2 learning에서 발음과 음운론을 아예 다루지 않아야 한다는 학자들이 있는 모양이다.
2차세계대전직후 유행했던 Audio-Lingual Method에 대한 반성일수도 있고, foreign accent가 차별의 근거로 사용되는 현대의 사회적 맥락 때문에 특정 표준발음을 상정하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해버리는 게 옳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발음의 경우 결정적 시기가 빠르고 강하게 적용되기도 하니, 특히 성인대상 L2교육이라면 발음이 학습동기만 떨어뜨릴 뿐, 좋을 게 없다고.)
물론 나 역시 한국 '수능영어듣기'에 나오는 영어발음이 웃기고 득보다 실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긴 하니, 어느정도 vibe는 공유하는 듯하다. 뭐랄까.. "캐나다 사람들이 속으로 화났을 때 화를 눌러담으며 이빨 꽉 깨물고 친절한 척 하는 억양" 느낌이랄까.
"발음은 덜 중요해요" 하는 것 다 좋고 그런데, 이로 인한 문제는 S-side에 지나치게 관심이 편중된다는 것이다. (발음 아닌 문장 형식에 대해 "다루어서는 안 된다"라는 사람이 있을까?) P나 나나 P-side 쪽이기 때문에, 일본이나 한국의 '영문법' 학습이 얼마나 엄밀한지 혀를 내두른다. 내가 인용했던 임고생 분의 블로그 다른 글에서도 보니, 아마도 Andrew Carnie 교재가 임용고시 통사론의 교재 내지는 범위인 듯하다. Carnie 통사론은 언어학 전공생한테도 추천할만큼 아주 좋은 책이다.(주의: 이 사람은 통사론 전공자가 아닙니다) P와 내가 짐작건대 아마도 음운론에 대해서는 그정도의 관심이 주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1 물론 이 부분은 S-side 사람이 보면 또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1.2 이론 음운론과는 다른 초점
하여튼, L2쪽의 전반적으로 '기울어진' 분위기 때문인지, 아마도 교육쪽에서도 이론 음운론, 심지어 목표언어의 음운론 자체에 관심을 덜 두는 분위기인 것 같긴 하다. 즉, 전통적 '이론 음운론'과는 phonology라는 간판은 공유할지 모르겠으나 아예 분위기와 관심이 다른 모양. 발음대조나 L2 발화의 오류분석 등 음성학적인 연구가 중심이다. 그래서 P는 아마도 한국의 영어교육도 비슷하지 않겠느냐고 짐작했다. (P는 ESL/EFL 아니라 '영어교육'에서 영어 음운론을 어떻게 다루나 모르고, 나 역시 영어교육을 모른다. 영어과외는 가르쳐봄ㅋㅋㅋ )
사실 이것이 일면 당연한 게, 이론언어학과 언어교육은 아예 다른 필드이고 따라서 관심사와 목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언어교육은 이론언어학에는 없는 교육에 방점이 찍히고 뭘 가르칠 것인가/가르칠수 있는가 에 지대한 관심이 쏠릴 것이다. 반면 이론 음운론은 언어현상에 대한 엄밀한 기술과 설명이 관심이다. 이 차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음소와 말소리의 음운론적 관계의 문제일 것이다. 아무리 UG를 크게 잡는 이론 음운론 연구자더라도 음소개념을 주어진 것으로 삼는 것은 이상하다. 반면 L2 교육이라면 L2의 음소 인벤토리를 주어진 것으로 삼는 게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면 그 언어에서 변별되는 소리들(=음소)을 가르쳐야 하니까.
결국 임고생님 + 메롱 님께서 다신 댓글이 이 부분에서 참 옳은 말씀인 듯하다. 두 분은 나의 이전 글에 감사하게도 친절한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말씀하신대로 "영어라는 초점"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주어졌는지는 묻지 않고) 주어진 음소가 환경에 따라 실현되는 양상을 기술하는 게 중요하다.
2. 잘 작동하는데 왜 굳이?
내가 P에게 했던 하소연은 거칠게 말하자면 이거였다. "음소를 이미 있는 걸로 상정하고2 그것이 환경에 따라 이음으로 실현된다고 하는 건 마치 주객전도(tail wagging the dog) 아닌가?"
내 넋두리에 대한 P의 답변은 정곡을 찔렀다.
"꼬리쪽에서 보면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게 맞을걸?"
목적에 일단 합하면 그게 뭐가 문제냐는 것이었다. 결국 목적이 다르고, 그 목적에 맞는 장치면 더 이상 엄밀할 필요가 없다는 것.
'개념에 잡아먹힌 좀비다'[링크] 라느니 하지만, 어쩌면 좀비든 강시든 벰파이어든 목적(=지식을 전달하기)을 달성한다면 그게 하느님이겠지.
한국어 단모음체계와 개념에 잡아먹힌 좀비
https://youtu.be/a5g8F57FO_0 설명하는 본인도 /ㅟ/랑 /ㅚ/발음을 이중모음으로 하면서 무슨 단모음표에 적고 있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념에 잡아먹혀서 그냥 개념과 개념 사이의 매핑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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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실 나 역시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빠르게 돌아가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목적인 사람에게 내가 짠 프로그램은 엉망진창 비효율적으로 보일 것이고, 수려하고 읽기쉬운 코드를 쓰는 지향하는 사람은 내가 짠 코드를 보고 더럽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언어데이터 분석이 목적이고 프로그램은 그냥 그 목적을 달성해주기만 하면 비효율적이든 더럽든 좀비든 강시든 벰파이어든 상관이 없다.
무슨 택시운전처럼 승객이 택시기사 밀어내고 운전해 불법 되는 것도 아니고, 결국 주객전도의 주-객은 절대적인 게 아닌 셈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소와 말소리의 음운론적 관계는 음운론의 가장 핵심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학생들한테 잘 가르칠 수 있을까가 나는 늘 고민이다.
오개념을 배우는 건 좋은데, 오개념 내지는 approximation인 줄을 아는 것과 그게 음운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다르다. 심장이 🧡 처럼 생겼다고 생각할 수 있고, 진짜로 그렇다고 믿는 것도 뭐 상관 없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외과의가 되고 내 가슴을 가르는 건 용납못한다. 말소리에 대한 음운론적 관계 역시 그렇다.
음소가 오늘날 음운론에서 얼마나 중요하냐면, 사분오열된 오늘날 이론 음운론에서 연구자 모두가 동의하는 게 딱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말소리가 존재한다'이고 둘째는 '음소'라는 개념일 것이다. (농담이다. 사실 모두가 동의하는 건 딱 하나다ㅋㅋㅋㅋ 음운론 연구자들끼리 얼마나 '음소'를 입에 안 올리냐면 phoneme 철자도 까먹을 지경이다.)
심지어 John Goldsmith는 Goldsmith (1998)에서, "음소라는 개념의 수립은 20세기 음운론의 최대 업적"이라고도 했다. (물론 1998년이라는 세기말 맥락에서 20세기 운운했다는 데서 알 수 있듯, 이 논문은 '음소' 개념을 공격하는 대표적인 논문이다ㅋㅋㅋ)
어쨌든 말소리의 음운론적 관계와 음소는 음운론 개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데, 이걸 설명하는 데 있어서 강의자마다 제각각의 전략이 있을 것이다.
'피터파커'-'스파이더맨' 이런 슈퍼히어로 예를 드는 것이 아주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다. (나 학부때는 슈퍼맨이었는데 이젠 다 스파이더맨 하더라 😂.) '피터파커', '스파이더맨' '메리제인왓슨' 이렇게 세 사람이 있다. 피터파커가 있는 자리에 스파이더맨은 없다. 스파이더맨이 있으면 피터파커가 없다. 피터파커랑 메리제인왓슨이 한 화면에 나올수도, 스파이더맨이랑 메리제인왓슨이 한 화면에 나올 수도 있다. 피터파커와 스파이더맨은 상보적관계에 있다 그럼 피터파커-스파이더맨이 화면에 안나올 때는 어쩌고저쩌고 이런 레파토리.
한국분 중에는 내동생 곱슬머리 동요를 예로 드시는 분도 봤다. 엄마가 부를때는 꿀돼지 아빠가 부를때는 두꺼비 누나가 부를때는 왕자님 어떤게 진짜인지 몰라몰라 몰라 . 이 동요에서 꿀돼지, 두꺼비, 왕자님이 이음이고 그 실체를 알 수 없고 물리적이지 않아 '어떤게 진짜인지 몰라몰라몰라'인,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존재하는.ㅋㅋㅋ 내동생은 음소다.
내 경우는 시각적으로 그리고 단계적으로 설명하는 게 효과적이더라.
내가 항상 음운론 개론에서 말소리의 음운론적 관계와 음소 개념을 처음 도입할 때는, 우선 데이터 상 관심있는 다양한 말소리의 IPA 표기를 칠판에 나열한 다음 그 위에 '구름' 몇 개를 그린다. 그 구름 안에 음소표기를 의미하는 / / 를 쓴다. 다양한 말소리 중 데이터에서 해당 소리로 인한 최소대립쌍이 없으며, 상보적 관계를 보이고, 음성적으로 비슷한 것들을 그 구름과 선으로 이어준다. 다 했으면 / / 사이에 고양이 🐈 를 그린다. 일부러 고양이를 정성들여서 오랫동안 그린다. 그리고는 '고양이 그림 매번 그리려면 힘드니까 이제 약속 하나 하자. 고양이 그림 대신 선으로 연결된 IPA 중에 대표 하나 뽑아서 그걸로 쓰기로' 이렇게 한다. 우리학교 커리큘럼에는 이 '대표형'으로 '가장 분포가 넓은 이음을 쓴다'로 되어있긴 하기에, 그렇게는 가르친다. 다만 어짜피 IPA 기호나 음소는 자질의 단축키일 따름이다. 음운론은 자질의 놀이다.
다음 글은 글로 쓰기 부끄럽지만 그래도 나중에 링크할 일이 생길 것 같으므로 "말소리의 음운론적관계"를 써야할 것같다. 아래 '더 읽어보기' 링크들을 봐라. 음소가 그렇게 20세기에만 중요한 개념이라면서 죄다 섹션 일부에서 쬐끔씩만 언급해놓지 않았나.
https://linguisting.tistory.com/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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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inguisting.tistory.com/94#3.3._%EB%89%B4%EC%A7%84%EC%8A%A4_-_Di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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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Carine Syntax 정도의 음운론 교과서라면 Hayes나 Odden 정도 생각하는데, 임용고시의 '표준' 음운론은 어떤 교과서일까 궁금하다. 다만 내 기억으론 Hayes나 Odden 모두 음소와 음운론적 관계에 대해 그런식으로 하향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 구체적으로는 뭐 이런얘기했다: "음소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혈통에 따라 막 부모가 한국어 화자면 한국어 음소 인벤토리를 UG에 내장하고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특정 음소를 당연히 상정하지? 무슨 빛이 있으라 했더니 빛이 있었다 이런 것도 아니고, 음소가 있어라 하면 음소가 있어지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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