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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분위기 언어학

캐나다 총리 관련성의 격률 위반 사례

sleepy_wug 2025. 6. 21. 05:03

0. 요약 

캐나다 총리 마크 카니가 화용적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관련성의 격률을 위반(flouting)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미국과의 무역 협상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마크 카니가 직답하지 않과 격률을 위반하며 화용적 효과를 냅니다.

 

 

목차

     

    1. 인터뷰 영상과 대화본 

    https://youtu.be/hvey5lg_B_Y

    The item included is used under the principles of "fair use" as outlined in Section 107 of the Copyright Act of 1976. It is provided solely for educational purposes to facilitate learning, research, and the advancement of knowledge. 여기 포함된 자료는 미국 1976년 저작권법 제107조에 명시된 "공정 이용" 원칙에 따라 사용됩니다. 학습, 연구 및 지식 증진을 촉진하기 위해 오직 교육 목적으로 제공됩니다.

    원본: https://youtu.be/YUz8FUqakEQ(10:36부터)

     

    인터뷰어: Do you plan to renegotiate USMCA? Can you trust [Trump] as a partner? 
    카니: We'll see about the sequencing. I think the revealed preference of the US is working on some of these sectoral aspects before broader trade deals. It is an advantage to us that USMCA exists. It is not right that it's being violated but it is still an advantage that it exists. And we intend to make the most of our advantages in these negotiations.
    인터뷰어: Do you trust him?
    카니: I will work with him and negotiate with him.
    인터뷰어: Do you trust him?
    카니: Look. My answer is my answer.
    인터뷰어: Okay, I'll leave it on that note.


    인터뷰어: USMCA(미국-멕시코 캐나다 협정)을 재협상할 계획이신가요? [트럼프 대통령]을 파트너로서 신뢰할 수 있나요?
    카니: 진행 순서를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미국 측이 선호하는 것은 광범위한 무역 협정에 앞서 한정된 분야에 먼저 집중하는 쪽인 것 같습니다. USMCA가 존재하는 것이 캐나다에게 이득입니다. 그것이 위반되고 있는 건 옳지 않지만,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재협상 과정에서 최대한의 이득을 취할 생각입니다.
    인터뷰어: 트럼프를 신뢰하십니까?
    카니: 저는 트럼프와 협력하고 협상할 것입니다.
    인터뷰어: 트럼프를 신뢰하십니까?
    카니: 보세요. 제 대답은 그게 전부입니다.
    인터뷰어: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각주:1]

     

     

    2. 대화격률이란? 

    언어학의 분과 중 화용론(pragmatics)은 말씀 화(話) 자에 쓸 용(用) 자를 쓰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언어가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연구한다. 즉, 실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대화 맥락이 연구의 관심사다.

     

    언어 표현의 의미는 맥락과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맥락 속에 들어오면서 의미가 어떻게 실현되는지는 철저히 맥락의존적이다. 똑같은 말이더라도 어떤 상황에서 말해지는지에 따라 그 의도가 다르고 모국어화자는 이 다른 의도를 대부분 정확하게 포착해낼 수 있다.

     

    지영: (아름다운 도자기를 들고 있으면서) 민정아 이거 봐봐. 내가 만든거다.
    민정: 참 잘 했다!
    지영: 이거 의외로 무게가 나가. 좀 들어봐봐봐 (아름다운 도자기를 민정이에게 전해주며)
    민정: 뭐야 별로 안 무거운데? (살짝 공중에 던지다가 떨어뜨림) 헐! 
    지영: 참 잘 했다! 

     

    똑같은 "참 잘 했다!" 인데 맥락에 따라 민정이가 한 말과 지영이가 한 말은 의미가 정반대이다.

     

    이런 식으로 '비꼬기' 등과 같은 '언어기능'은 이론언어학의 다른 분과들에서 쉽게 포착되기가 어렵다. 그래서 화용론의 영역이다.

     

    마찬가지로 '체면', '예의차리기', '진짜 의도 숨기기', '정치적 모호함' 등도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일이라서 언어학의 연구대상이긴 하지만 화용론이 아니면 다른 곳에서 연구되기가 참 애매하다.

     

    인간은 의사소통할 때 명령어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사회적 대화를 한다.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은 그냥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타인'이랑 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타인과 내가 '말하지 않아도 공유하는' 어떠한 약속같은 게 존재한다. 마치 좁은 복도를 걸어갈 때 반대편에서 사람이 오면 살짝 귀퉁이쪽으로 걸어가주는 것과 같은 '약속'이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경찰서 가지는 않는다.

     

    대화 맥락에서도 마찬가지다. 원만하게 대화가 이루어지려면 '대화격률'이라는 약속을 지킬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굳이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


    대화격률에는 아래와 같이 크게 4가지가 존재한다.

     

    1. 양의 격률(Maxim of quantity): 더도 덜도 말고 꼭 필요한 정도의 말을 한다.
    2. 질의 격률(Maxim of quality):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근거가 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3. 관련성의 격률(Maxim of relation): 대화 맥락에 적합한 말을 한다.
    4. 태도의 격률(Maxim of manner): 애매모호한 말을 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말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상대방이 어찌 할 것이다 라는 기대 를 정리한 것이지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 같은 게 아니다. 아래 대화에서 정연은 양의 격률과 관련성의 격률을 위반한다.

     

    민지: 밥 먹었어?
    정연: 방금 학생식당 갔다 오는 길인데 메뉴 별로더라. 그런데 거기서 무슨 영화 촬영 같은 거 하는 것 같더라고. 사람들 엄청 많고 카메라 같은 것도 있던데, 연예인도 오려나?

     

    정연은 대화의 주제인 '식사 여부'랑 관련 없는 영화촬영과 연예인 이야기, 그리고 학생식당 메뉴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따라서 관련성의 격률을 위반했다. 또한 그냥 '응/아니' 정도로 대답할 수 있는 상황에서 너무나 장황한 대답을 한다. 이것은 양의 격률의 위반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이렇게 대화격률을 위반했지만, 민지의 반응은 "야 뭔소리를 하는거야?" 같은 게 아니라 '아 정연이가 밥을 안 먹었겠구나' 정도일 것이다.

     

    또한 정연은 이렇게 대화격률을 일부러 위반하면서 아마도 "나는 지금 배가 안 고프고 학교에 등장한 영화 촬영 팀에 더 관심이 있다" 정도의 말을 돌려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연이 대화격률을 위반 안하고 직설적으로 본인의 의사를 말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민지: 밥 먹었어?
    정연: 나 배 안고프고 지금 학생식당에 영화 촬영하는 것 같은데 그게 궁금하다.

     

    물론, 대화 자체가 나쁘지 않지만, 정연이 사회적으로 다소 어색한 사람이라는 건 알 수 있을 것 같다.

     

    즉 대화격률은 위반될 수 있고, 위반될 때 특정한 화용적 효과를 낸다. 그리고 이러한 화용적 효과를 잘 읽어내는 것이 능숙한 언어사용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운전을 생각해보자. 파란불은 가는 것이고 빨간불은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정지신호는 저기 있네" 

     

    그런데 파란불이라도 앞차가 멈춰있을 수 있다. 그럼 악셀을 밟을 수 없다. 교차로 맨 앞 파란불이더라도 내 왼쪽차가 신호무시하고 갈 것 같으면 살짝 감속하는 게 요령이다. 만약 응급차량이라면 빨간불이더라도 가야 한다. 이런 식으로 정해진 것이 있더라도 상황에 따라 잘 위반 하는 것이 운전실력의 척도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격률이 있지만 잘 위반하면서 실제로 대화한다.

     

    3. 의도적인 격률 깨기 flouting 

    다시 마크 카니의 대답으로 돌아와보자.

     

    인터뷰어: Do you plan to renegotiate USMCA? Can you trust [Trump] as a partner? 
    카니: We'll see about the sequencing. I think the revealed preference of the US is working on some of these sectoral aspects before broader trade deals. It is an advantage to us that USMCA exists. It is not right that it's being violated but it is still an advantage that it exists. And we intend to make the most of our advantages in these negotiations.
    인터뷰어: Do you trust him?
    카니: I will work with him and negotiate with him.

     

    "트럼프를 신뢰하느냐?" 라는 질문에 '신뢰한다' 혹은 '신뢰하지 않는다'는 모두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답변이다. 따라서 직답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카니 총리는 "트럼프와 협력하고 협상할 것이다"(I will work with him and negotiate with him.) 라는 관련성의 격률을 위반하는 대답을 한다. 아마도 행간에는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협상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도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기자도 바보는 아니라서 한번 맞받아친다. 

     

    인터뷰어: Do you trust him?
    카니: Look. My answer is my answer.

     

    기자는 행간의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라는 의미에서 똑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이때 카니 총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My answer is my answer") 대답한다. flouting 전략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카니 총리와 다소 다른 방식으로 대화격률 위반 전략(flouting)을 계속 유지하는 사례도 있는데 유명한 '아니 없어요' 밈이 해당한다. https://linguisting.tistory.com/54

     

    언어학으로 보는 슈스케2 모태솔로 (양의 격률 위반 사례)

    이 포스팅은 한국의 인터넷 문화에서 유명한 소위 '슈스케2 모태솔로' 대화를 화용론의 관점에서 다시 보는 글입니다. '갑자기 분위기 언어학(?)' 스러운 포스팅이 될 것입니다. 일단 해당 영상은

    linguisting.tistory.com

     

     

    4. 마무리 

     

    아마도 뛰어난 정치인일수록 이런식으로 행간에 의도를 숨기는 정치적 발화에 능숙할 것이다.

     

    이제 대화격률과 대화격률의 위반을 염두에 두고 정치인들 인터뷰를 유심히 살펴본다면 실시간으로 화용적 전략을 쓰는 모습을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어떤 글을 읽을 건가요?

     

    관련성의 격률 위반 사례 이장우의 재치있는 대답

    0. 요약기안84의 유튜브 채널 "인생84"에 출연한 이장우가 관련성의 격률을 위반 flouting 하면서 재치있는 대답을 했습니다. 아래 영상에 나오는 대화입니다. https://youtu.be/fH7Bc0IOrzI?si=cMKVy2LnP5bcRfnF&t

    linguisti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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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기까지 듣겠습니다"는 손석희의 트레이드 마크다. 답변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더 묻지는 않겠고 인터뷰를 종료하겠다는 뉘앙스다. I'll leave it on that에 상응하는 한국어 표현 중 이것보다 적확한 것을 잘 모르겠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