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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대로

"봐봐"를 "봐바"로 발음하는 /w/탈락

sleepy_wug 2022. 2. 15. 07:44

 

0. 결론부터

'먹어!' -> '먹어'
'가!' -> '가'
'신어!' ->'신어'
인 것처럼 '봐!' 역시 '봐'가 맞는 표기이다.

그러나 '봐봐'는 흔히 '봐바' 혹은 '바바' 라고 발음되는데, 이것은 언어보편적인 관찰인 OCP에 따라 당연히 예측되는 것이다.

 

목차

     

    1. 과거의 나에게 주는 선물

    오늘 아침, 페이스북에 "ㅇ년전 오늘 포스팅"이라고 어떤 글이 올라왔다.

     

    어떤 것이었냐하면, '봐봐'를 '봐바'로 발음하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아마도, 내가 석사 나부랭이였을 때, 한국어에서 "봐" 라는 음절에서 /w/가 탈락해서 마치 "바"처럼 발음되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것이 성별이나 나이 등의 변인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지 알고싶다는 포스팅이었다. 성별과 나이는 사회언어학적으로 자주 고려하는 변인들이다.

     

    그때는 생각만 있고, 어떻게 살펴봐야할지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묻혀버렸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과거에 나에게 선물을 한다는 느낌으로 서울코퍼스(자연발화 말뭉치, 논문링크)에서 단어 중간 또는 단어 끝에 /봐/가 출현할 때 그것이 [바]로 발음되는 사례들을 다 종합해보았다. 휘뚜루마뚜루 코딩했는데, 다 돌리는 데까지 한 30분정도 걸렸다.

     

    2. 결과 요약

    결과는 아래의 파일과 같다.

    b0wa_result.tsv
    0.01MB

     

    서울코퍼스는 약 22만 어절 규모인데, 그 중에서 /봐/가 나온 token은 총 120 건이었다. 그 가운데 세대와 성별 무관하게 4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w/를 탈락시켰다.

     

    즉, 서울코퍼스에서 단어 중간 혹은 단어 끝에 /봐/라는 음절이 나온 횟수가 120회였는데, 남녀노소 무관하게 그것을 거의 항상 [바]로 발음한 것이다.

     

    3. OCP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

    사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음운론에는 의무굴곡원칙(Obligatory Cantour Principle)이라는 아주 중요한 법칙이 있다. 이것은 인간언어는 인지적 발화적으로 동일한 성격의 단위가 연속하여 나오는 것을 회피하여 '굴곡'을 만든다는 경향성을 말한다. 가장 비근한 예로 자음과 모음은 번갈아 나타난다. 모음이 연속될 때에는 중간에 무의미한 자음([ʔ] 등)을 삽입하여 연쇄를 깨거나, 두 모음중 하나를 활음으로 만들어서 이중모음화 한다. 

     

    /봐/의 경우도 그러하다. 초성 ㅂ과 이중모음 ㅘ의 초입부는 모두 [양순성] 자질을 가지고 그것이 연쇄되는 것은 OCP에 따라 회피된다. 따라서 초성 'ㅂ'을 교체하거나 'ㅘ'를 수정하거나 하는 것이 음운론적으로 아름답다. 그래서 'ㅘ' 모음에서 [양순성] 자질을 제거한 'ㅏ' 모음으로 교체되는 것이다. OCP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봐봐'를 '봐바' 혹은 '바바'로 발음하는 것은 뭐, 나이고 성별이고 볼 것 없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OCP, 특히 ㅂ과 같은 양순음 뒤에 ㅘ와 같은 [wV] 형태의 모음이 올 수 없는 것은 실증적으로 근거를 가지고 있고, 한국어 말고 다른 언어에서도 관찰된다 (Kawasaki 1982; Ladefoged & Maddieson 1996).

     

    특히 Kawasaki-Fukumori (1992)는 실험논문인데, 이 논문에 따르면 청자들은 [pa] vs. [pwa] 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가장 구분이 잘 되는 쌍은 [ka] vs [kwa] 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구분도 안 되는 거 굳이 구분해서 발음하려는 건 노력낭비니까 노력을 안한다는 의미.

     

     

    4. 처리장치로서의 음운부

    이론언어학[각주:1]에서는 형태부과 독립된 음운부가 존재한다고 상정한다.

     

    무슨 말이냐하면, 말소리 이런거 상관하지 않고 문법적으로 언어 단위들을 조립하는 영역(형태부)가 따로 있고, 그게 대충 조립해서 음운부한테 던져주면 그걸 음운부가 발음가능한 모양으로 처리해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어에서는 동사 어간에다가 -봐 를 붙여주면 "뭘 시도해보라고 제안하는 말"이 된다. '가다'의 어간은 '가-' 이므로 거기에 '-봐'를 붙여주면 '가봐'가 되고 뜻은 "가보라고" 가 된다. 형태부는 바보같이 이걸 그냥 무식하게 모든 어간에다가 적용한다. 그게 실제로 발음되도록 만들어주는 건 조립 단위를 실제로 이어붙여주는 음운부의 몫이다.

     

    어간 형태부
    ('-봐' 붙이기)
    음운부
    실제발음
    (변환기)
    가- 'go' 가- + -봐 가봐 [kɑbwa]
    먹- 'eat' 먹- + -봐 [mʌɡʌbwa]
    신- 'wear' 신- + -봐 [sinʌbwa]

     

     

    위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가-+봐', '먹-+봐', '신-+봐' 등등 형태론은 '동사+봐' 형태를 음운부에 전달한다. '가봐'의 경우는 형태론이 던져준 것을 음운부가 그대로 소화시켜서 발음한다. 그러나 '먹+봐'나 '신+봐' 같은 경우는 음운부에서 따로 '모음삽입' 처리를 해서 발음될 때는 '먹봐', '신봐'로 발음한다.

     

    '봐-+봐' 역시 마찬가지다. 그대로 발음되기 어렵고 '봐바' 혹은 '바바'로 실현되는 것이다.

     

     

    5. 여담

    마지막으로 음절핵이 'ㅘ'일때 초성으로 올 수 있는 자음의 분포가 제한적이라는 사실과, 한국어 조사 '와/과'의 분포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내용의 논문이 있다. 이것이다.

     

    한국어의 격조사들은 그것이 붙는 체언에 종성 자음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다른 형태(이형태)를 선택한다. 체언이 자음으로 끝나면 모음으로 시작하는 격조사를, 모음으로 끝나면 자음으로 시작하는 격조사를 쓴다.

     

    고기- | 고기-
    밥- | 밥- |

     

    그러나 와/과의 경우는 반대다. 체언이 모음으로 끝나면 '-과'가 붙는데 그것은 자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이고, 체언이 자음으로 끝나면 '-와'가 붙는데 그것은 모음으로 시작한다.

     

    고기-
    밥-

     

    논문에서는 음절핵이 ㅘ일때 가장 무표적인 초성자음은 ㄱ이고 그래서 ''이고, 특히 ''의 경우는 매우 유표적이라는 근거를 코퍼스로부터 가져온다. 그리고 유표적 표면형을 출현을 막기 위해 와/과가 다른 조사와 유별난 분포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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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체적으로는 촘스키 이후의 형식주의 언어학(생성문법)을 말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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