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요약
"박소은 - 보통의 연애" 가사 중 나오는 표현인 '...밀린 친구들 만나고...' 에 대하여 갑자기 분위기 언어학(!)해지는 글입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이 나오나 통사적으로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통사론 비전공자가 재밌자고 농담한 것이니까 분석 부분은 전혀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목차
1. 박소은 - 보통의 연애
(1:50 무렵)
일도 열심히 하고,
밀린 친구들 만나고,
좋은 사람 생기면 그때는
나 잊어도 돼🎵🎵
아 노래 너무 좋다. 그런데 친구가 밀렸다고?
2. 밀린 친구?
"밀린 친구들 만나고"는 구문이 재미있다. "밀린"은 대략 [친구 만나기]와 같은 명사절을 수식하는 의미다.
(1) "밀린"이 명사를 수식
a. 밀린 [숙제]를 했다.
b. 밀린 [친구 만나기]를 했다.
그런데 맥락상 "일도 열심히 하고, 밀린 친구 만나기도 하고, 좋은 사람 생기면...." 정도인데, 노래가 되기 위해서 표현을 달리한 것이다.
그렇게 되니까 마치 "밀린"이 "친구들"를 수식하는 구조가 되었다. "착한 친구들 만나고, 잘생긴 친구들 만나고, 손이큰 친구들 만나고" 하듯 "밀린 친구들 만나고"인 것이다.
근데 사실 밀린 친구는 아래 자료화면에서의 예리 같은 친구다. 아래 움짤에서 웬디가 예리를 다이빙대에서 밀어버린다.
3. ECM, is it you?
이 표현이 재미있어서 곱씹다가 '갑자기 분위기 ECM' 스러웠다. ECM은 Exceptional Case Marking의 약자인데, 영어에서 대격 부여가 의미(흔히 목적어 스러운 의미)랑은 하등 관련없이 통사적으로 결정된다는 증거로 인용된다.
아래의 (2a)에서 보면, chill하는 사람은 Alex가 아니라 "우리"이고, 따라서 "우리"를 의미하는 주격 'we'를 사용하는 게 의미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하위절에서 2인칭복수 대명사가 격을 받을 수 없어 인상되고 want 로부터 격을 부여받는다. 내 전공이 아니라 설명이 거칠다. 4.3에서 이 구문을 조금 이야기하긴 할건데, 읽고나서도 잘 이해가 안가면 가까운 통사론자를 찾아가세요.💖
(2) Exceptional Case Marking
a. Alex wants us to be chill.
(Alex는 우리가 chill하기를 원한다.)
무작위 이름은 어려워
0. 요약 통사론, 의미론으로 수업을 하거나 논문을 쓸 때는 예시문장(예문)을 사용합니다. 예시문장에는 한국어의 "홍길동" 같은 '아무개 이름'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것이 저에게는 골치아팠습
linguisting.tistory.com
4. 도출해봅시다
4.1 "밀린 만나기" 도출
망상이긴 하지만, "밀린 친구들 만나고" 역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밀리-] [친구들] [만나-] 가 통사부에 주어졌다. 하나의 전략은 [ [친구들] [만나-] ]-기 이렇게 명사화되고 그걸 [밀리-] 가 수식해서 [밀리-]-ㄴ [ [친구들] [만나-] ]-기 가 되는 것이다. 결국 입밖으로 나오는 말은 "밀린 친구들 만나기!" (Todo list에 들어갈법하다)
(3) 도출 1
1단계: [친구들] [만나-]
2단계: [ [친구들] [만나-] ] -기
3단계: [밀리-]-ㄴ [친구들 만나]-기
이 도출에서 중요한 것은 -기 붙어서 명사화되고 나면 종량제봉투 묶듯 아주그냥 다시는 못열게 묶어버리는 것이다 (spell-out / phase). 그래서 "밀린"의 입장에서는 "친구들만나기"의 내부구조는 보이지 않고 다만, "뭐라뭐라..-기! 로 끝나는 명사" 정도로 읽히고 처리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다른 도출이 가능하다면 어떨까?
4.2 "밀린 친구 만나" 도출
똑같은 통사체들 [밀리-] [친구들] [만나-] 가 통사부에 주어졌는데, 모종의 제약 (삐빅, 통사론 버스에 음운론자가 잘못탔습니다) 으로 [[친구들][만나-]] 가 명사화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밀리다!' 라는 표현이 너무너무너무 중요해서 이걸 문장에 쓰는 게 막 제약서열이 높은 것이다 (삐빅, 아직 안 내렸습니다). 그래서 명사를 찾는 거다. 찾아보니 명사화 해주는 핵인 '-기'는 안보이고, 대신 명사화되지 않은 덕분에 종량제봉투를 아직 안 묶은거지. 그래서 지나가던 [밀리-] 가 그 안을 투명✨하게 접근하고 심지어 [친구들] 을 보고 "어 너 명사구나? 내 도도독.. 동료가 돼라" 하는 것이다.
(3) 도출 2
1단계: [친구들] [만나-]
2단계: [ [친구들] [만나-] ]
3단계: [밀리-]-ㄴ [[친구들] 만나]
4단계: [밀리-]-ㄴ 친구들 [t 만나]
5단계: [[[밀리-]-ㄴ 친구들] [t 만나]]
일단 1단계까지는 도출이 같다.
그런데 문제는 2단계에서 -기 가 불출석해서 밖에서 안을 다 들여다보는 사태가 벌어지는 게 핵심이다.
이렇게 꺽쇠괄호가 안 잠겨버리니까 3단계에서는, 지나가던 밀린이 어디 내가 수식할만한 명사 없나 하고 찾다가, 아직 안 잠긴 꺽쇠 괄호 [...] 안에서 친구들 을 보고 "찾았다 명사" 하는 것이다.
그리고 4단계에서는 친구들을 빼내서 동료로 삼는다.ㅋㅋㅋ
ECM과 유사하다고 생각한 게 바로 이 지점이다. (4단계와 5단계에 있는 t 는 trace의 약자로 흔적이라고 부른다)
4.3 말이 안 되는 지점
진짜 너무 당연하지만 노파심에 이 섹션을 적는다.
사실 [어떤 커뮤니티에 인용된 내 블로그 글]를 보고 식겁했다. 나는 농담으로 "단어길이가 짧고 변변찮은 자음(?)이 없을 땐 이 충분히 선명 요건을 갖추기 위해.ㅋㅋㅋㅋ 어두를ㅋㅋㅋㅋㅋ 경음화한다.ㅋㅋㅋㅋ " 라고 적었는데, 이걸 진담으로 받아들이면서 "오 이미 연구된 사례가 있구나" 라고 반응하는 걸 보고 약간 충격을 받았다.

나는 충분히 농담임을 표현했다고 생각했는데, 앞으로는 더 확실하게 표현해야 겠다는 생각을 함.
4.2의 도출은 말이 안 된다. 볼드체로 다시 적는다: 그러나 4.2의 (3)과 같은 도출은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
'밀린'과 같은 수식 표현은 부가어(adjunct)이다. 그리고 표준적 이론틀 안에서는, '밀린'도 '친구들'도 이동을 유발할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밀린'은 구조상 아래에 있는 통사 요소를 끌어다올 수 없다.
(2a)의 ECM 구문에서의 'want'와 'us'랑 비교해보자.
(2a) Alex wants us to be chill
이 문장에서 안겨있는 'chill하다'의 의미상 주어가 되는 명사구를 편의상 빨간색이라고 하자. 이 빨간색은 아래와 같은 형식자질의 명세를 가진다.
[인칭: 1, 수: 복수, 격: (안정해짐)]
진짜 핵심은 바로 저 밑줄친 '안정해짐'부분이다. 통사부로 저 주어가 들어올 때, 인칭도 정해지고 수도 정해지지만, 격은 안 정해진다. 결과적으로 어떤 격을 가질지, 주격을 가질지, 대격을 가질지... 는 의미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통사부가 결정한다.
형식주의자들은 줄임말을 쓰는 걸 좋아하므로 안정해짐 이렇게 안쓰고 uCase (unvalued Case) 처럼 쓴다. 즉, 통상 아래와 같다.
DP = [Person: 1, Number: PL, uCase]
여담으로 왜 us, we 같은 표면상의 단어를 쓰지 않느냐면, 통사부가 그런거 결정 안하기 때문이다. 그런건 통사부가 형식자질 다 결정해서 SM(sensory-motor)접면한테 건네주면 거기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똑같은 의미의 '1인칭복수, 그리고 chill의 주어' 더라도, 통사부가 uCase 부분을 어떻게 결정해주느냐에 따라
[Person: 1, Number: PL, Case: Nom] → /wi/
[Person: 1, Number: PL, Case: Acc] → /ʌs/
이렇게 각각의 형태로 된다. 즉 음운부가 됐건 형태부가 됐건, 통사부가 뱉은 걸 받아서 "의미 그런거 모르겠고, 형식자질들이 이렇게 왔으니 거기에 맞도록 사람이 발음할 수 있는 형태를 주겠다" 이런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phonetics가 받아서 턱 근육을 어떻게 움직이느니 혀를 어떻게 움직이느니 하여 실제로 내뱉게 될 것이다.
그리고 want의 자질 중엔 [Acc] 자질이 있는데 이건 Case자질에 값을 부여한다. 그런데 φ자질(person, number, gender...)들의 값이 '안정해짐' 이다. [uφ] 라고 쓰자. (오개념인 것 알지만 여기선 설명을 간단히 하기 위해 이렇게 썼습니다. 엄밀히 V: want 그자체가 아니라 v 의 자질도 포함해요. 그러니 제발 뒤에서 숨어서 욕하지 마세요 굽신굽신...🙇 )
V = [... uφ, Acc]
값이 안정해진 자질은 소화가 안 된다. 그래서 통사부에서는 이러저러한 통사작용을 통해 모든 자질에 값을 부여해야만 구조를 다음 단계로 넘길 수 있다. 다음 단계는 SM (sensory-motor) 과 CI (Conceptual-Intentional) 접면이다. 각각 소리와 의미를 담당한다.
어쨌든, 지금까진 [uφ] 와 [uCase] 이렇게 값이 정해지지 않은 자질이 2개나 있기 때문에 이 값이 결정되어야 한다.
그래서, want가 자신의 [uφ] 를 채워줄 통사체를 자신이 성분통어(c-command)하는 구조 안에서 찾는다. 통상적으로, 목적어가 되는 명사구가 걸리지만 이번엔 그런 명사구는 없지만, 빨간색 DP가 발견된다.
말로만 하려니 헷갈리니 이쯤 되어서 수형도 하나 넣어주자.
V(want)가 자신이 성분통어하는 범위, 즉 위 그림에서 IP이하를 보건대, DP가 자신의 [uφ]를 채워줄 수 있다. 왜냐면 위에서 적었듯 이 녀석은 형식자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써보자 Person, Number 이런게 φ자질이다.
DP = [Person: 1, Number: PL ...]
그런데 통사론의 세계는 평화로운 세계이기 때문에 want가 자신이 원하는 걸 DP한테서 삥뜯거나 그런 일은 없다. 다만 거래를 할 뿐이다.
DP는 [uCase]가 있어서 고민인데, 그걸 want가 채워줄 수 있다. [Acc] 때문이다.
그래서 둘이 만나서 거래하여 아래와 같이 모든 [uFeature] 들이 해소되어서 통사구조를 잘 소화시킬 수 있게 된다. (만날 때 DP가 이동하지만 어순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에 아래 수형도에서는 표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밀린 친구들'로 돌아와서, "밀린"과 "친구들"의 관계는 이러한 관계가 아니다.
5. 결론
결론: 이 글 쓰면서 박소은 플레이리스트 들었는데 삶의 질이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공부는 몸에 좋지 않으니 모두들 좋은 음악을 듣자.
늘 그렇듯 갑자기분위기언어학 카테고리의 글들은 설명하려는 현상 그자체가 아니라 이론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게 목표다. 이래서 이 글도 ECM구문 그리고 통사적 이동과 격부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적당한 마무리였다)
2025년 4월 20일 이후에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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