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그룹 중 Engrish in Japan이 있다. 페이스북에서만 아는 지인이 가입되어있다고 추천이 뜨길래, 어떤 그룹인가 궁금해서 들어가서 봤는데 운영진 중 한명이 이런 스크린캡처를 올려놓았다. 누군가 가입신청서를 냈는데 웃기다는 내용과 함께.
Engrish는 일본에서 맥락에 어긋나거나 혹은 이상하게 사용되는 영어를 말하는 표현이다. 일본어화자들이 l/r을 잘못사용하는 것에 착안한 표현이다. 일본어에서는 liquid sounds [l] [ɹ]이 변별되지 않는다.
이런식의 멸칭에 대해 옳다 그르다는 접어두자.
이걸 보는 순간 아 이건 내 능력을 훌쩍 넘어가는구나 싶었다. 아래 둘 중 하나일텐데 어느쪽이더라도 내가 담기에는 능력이 부족하다.
첫번째:
이 가입신청서는 참으로 자기표현적이다. 영어를 Engrish로 쓰는 일본 사회 그룹, 에 가입하고자 하는 일본인이 Engrish를 '영어'로 이해하고 답변했다. 어쩌면 가입하려는 사람은 이 그룹이 어떤 식의 유머를 다루는지 몰랐을 수도 있다.
두번째:
아니면 Gen Z 식의 유머인가? 사실 나는 Gen Z sarcasm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Boomer 유머가 세상을 과장해서(이러다가 X시 집값이 달까지 가겠어?) 우리 millennials가 스스로의 처한 상황을 과장해서 자조한다면 (이 월급으로 X에 살려면 아마 우리가 죽고 손자 쯤 가야 집장만 하지 않을까? 그땐 나 혼자 방 쓸수 있는거지?) Gen Z는 자신이 sarcasm이 되는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말이 과장을 한 건지 거짓말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쉽게 말해서 Gen Z한테 웃긴 밈이란 유머가 되지 않는 밈이라고 하지 않나. (밈인데 안 웃긴 게 웃기다?!?!?!)
만약 그렇다면 저 가입신청을 넣은 사람은 일본인은 아니고 예컨대 영어 화자인데 비꼬기 위해 저런 가입신청서를 쓴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이해하기에는 내가 그릇이 작다.
첫번째라면 사회언어학자가 매우 흥미롭게 여길 스크린샷이 아닐까한다. 스스로를 재귀하는 사회언어현상일지 모른다. 나로서는 머리속에 stack overflow걸릴 것 같다. 형식화용론 수업에서 '두 장군 딜레마'의 변형 사고실험이 소개된 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두통이 생각난다. '대화'그 자체라는 게 이루어지려면 다음의 진술문이 참이어야 한다. 1
a. 내가 말한 의미를 상대가 이해할 수 있다.
b. a.를 내가 이해할 수 있다 (즉, 민지와 승연이가 대화하려면, 민지는 자기말을 승연이가 이해할 수 있다는 걸 민지 스스로가 알아야 한다)
c. b.를 상대가 이해할 수 있다.
d. c.를 내가 이해할 수 있다.
e. d.를 상대가 이해할 수 있다.
..... ad infinitum
두번째라면.. 그냥 이해 못해도 안 불편해해야지.🤣 "첫번째" 섹션에 나의 트라우마(?)를 공유했으니 "두번째"에도 트라우마를 언급하자. 이런 영상이 있었다. https://youtu.be/qrfWqiqKvSw Gen Z가 millennial 유머는 왜 이상한가라고 영상을 만들었는데, 그 유머의 컨텐츠는 모두 Gen Z 유머이다. 메타도 이런 메타가 없다. 자기 세대 유머에 대해 자조하는 건가? 난 아마도 영원히 그 세대의 유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덧: ChatGPT에게 물어봤다. 생각할 거리를 더 던져주었다. 아주 stereotypical한 문법오류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마도 영어 화자가 장난친 것 같다는 심정이 강해진다. 지금 시대에 시간차를 두고 텍스트로 하는 소통에는 auto correcting이 개입하기 때문에 비원어민 화자도 신경쓰면 문법오류 없이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문법오류를 일부러 포함시킨 것은 유머로 이해할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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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과학, 특히 네트워크이론에서 유명한 딜레마인데, 내가 보낸 패킷을 상대가 받았는지 확신할 수 없을 때 (또한 vice versa) 어떻게 네트워킹이 가능한지에 대한 문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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