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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대로

만족할 만한 설명 그리고 전공자가 말하지 않는 이유

sleepy_wug 2024. 8. 6.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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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요약

어떤 게 '설명'으로 인정되는가에 대한 아주 짧은 단상입니다. 결국 설명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닐까요?

 

목차

     

    1. 물고기와 불고기

    출처: https://www.threads.net/@tip_tip_tib/post/C-SY7VAvHn0

    아카이브: https://archive.is/vXMcO

     

    유사한 기저형에 대하여 음운론적 형태론적 규칙이 선택적으로 적용(어떤건 적용 어떤건 안 적용)되는 경우를 비균일적(non-uniform) 언어규칙이라고 한다. 물고기는 경음화하는데 불고기는 안 한다. 젓가락의 ㅅ받침과 숟가락의 ㄷ받침은 발음이 [t]로 같은데 받침을 다르게 쓴다. 비빔밥은 경음화하는데, 볶음밥은 하지 않는다. 등등. 비균일적 언어규칙에 대한 형식주의적 전통적 설명은 구분자질(diacritic features)이다. SPE (진짜 페이지까지 기억한다 373페이지) 에 구분자질을 다루는 아예 섹션이 하나 있는데, 이땐 60년대여서인지 약간 설명못하는 거 다 덤핑하는 뉘앙스가 강하다. 심지어 Halle의 70년대 다른 책을 보면 [+do this] [-do this] 같은 수준의 무성의한 diacritic feature가 나온다. 영어음운론 논문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구분자질은 [+latinate] [-latinate] 등 어원 관련이 있다. 이 설명체계에 따르면 [+latinate]이면, -tion, -al suffixation 이런거 한다. 대표적 예로 똑같이 '주다'라는 뜻의 동사가 give, donate 이렇게 두개 있는데, 자질값에 따라 명사형 만드는 게 다르다. donate는 [+latinate] 자질을 가지므로 donat-ion 하고, give는 [-latinate]이라서 gif-t 한다. 

     

    어쨌든! 왜 물고기는 된소리 나는데 불고기는 안 나나? 친절한 네티즌, 심지어 가장 첫 threader가 '만족할만한 설명'을 달아주었다.

     

    중세국어에 '~의' 조사에 해당하는 요소로 'ㅅ'이 잇었답니다.
    이것이 뒤 예사소리 'ㄱ'의 경음화를 일으켜 'ㄲ'이 되고
    그래서 [물꼬기]가 된다고

     

    이 설명에 다른 사람들은 만족한 듯하다. 

     

    2. 왜 만족한 듯하지? 좋은 답변인가?

    그런데 왜 이 설명 이후에 "왜요?"라는 추가질문 없이 모두 만족한 것인가? 아니 애당초 비균일적 언어현상에 대한 만족할만한 설명이란 무엇인가? 단지 새로운 정보(역사적 사실)를 제공하면 만족할 만한가? 그럼 왜 모국어 화자는 그 정보를 모름에도 불구하고 해당 현상의 적용과 비적용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모국어 화자가 모르는 역사적 사실의 집합체로 설명체계를 구성하는 것은 순환논리 아닌가? 설명이 되는 것은 없고 말하는 사람이 그냥 잘난척하는 게 아닐까?

     

    어쩌면 물고기는 기저형에서부터 애초에 경음을 포함하고 있을지 모른다. 물고기-육고기의 대립은 '학습'의 대상이고 더이상 습득되지 않는다. 물꼬기/꼬기 가 그냥 통째로 학습되는 것일 수 있다. 아마도 가톨릭대 배주채 교수님의 국어음운론 교과서에서 언급된 예시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국문과 영문과 학과 할때 접미사 -과(<科)는 분포상 꽈로밖에 소리나지 않으므로 경음화된 형태를 기저형으로 보아야 한다. 물고기의 기저형에 경음을 포함시키고 규칙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규칙은 이와 같은 논증이고, 구조주의언어학적 사고의 ABC다. 이미 100년전에 끝난 이야기. 그리고 역사언어학에 기댄 설명의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다.[각주:1] 인간은 몇 세기를 걸쳐 살지 않고, 심지어 자기자신의 고증조 할아버지의 성함도 모르는데 당장 입밖에 나오는 말을 설명하는데 고증조 할아버지가 썼던 형태(물+ㅅ+고기)를 되짚는다.

     

    물론 철자법은 과거 형태의 힌트가 될 수도 있다. '시내'의 주변을 '시냇가'라고 하는데 이때 '시내'와 '가' 사이에 들어간 사이시옷 ㅅ은 중세국어의 속격조사를 이어받는 것이다. '시냇가'에서 경음화를 여전히 유지하는 건 ㅅ 표기의 영향이 직접적일 수도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ㅅ표기가 없어져서 경음화가 안되는 반대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prime number, 즉 素數 (일단 의도적으로 한글표기 안함)는 [솓쑤] 혹은 [소쑤]로 발음하는데, 옛날에 '솟수'로 표기하던 것을, 국어원의 규범주의 드라이브로 인해 '소수'로 표기를 바꾸자 이제는 심지어 일부 학원강사들조차 경음화없이 [소수]로 발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대한민국 국립국어원이 한국어를 다림질하려고 한대도, 물고기를 뭀고기로 표기하나? 아니지 않나? 그런데 어떻게 물+고기로 형태소분리를 하고 심지어 경음화까지 할 수 있는 것이지? 하나의 정답은 이 문단의 처음에 적혀있다. 어쩌면 물고기는 기저형에서부터 애초에 경음을 포함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철자와달리) 물고기는 기저에서부터 경음을 포함하고 있는걸까?"에 이어지는 질문 한가지. 그렇다면 한글은 정말로 기저형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가? 물고기에 경음화가 적용 된다의 전제는 물고기는 기저에서 경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XX화가 적용된다는 말은 기저에서는 XX가 아닌 게 표면에서는 그렇게 된다는 것이므로.

     

    마지막으로, "중세국어 ㅅ이 예삿소리 ㄱ을 경음화시킨다"는 설명에서 빠진 것은, 중세국어의 ㅅ을 현대국어의 불파음화되는 종성 ㅅ와 동일시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정말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둘 중 하나일 것이다. 1. "현대국어에서 종성 ㅅ이 불파되어 [t]이고, 뒤이은 평음을 경음화시키니까 중세국어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2. "중세국어 ㅅ이 무언가 신비로운 이유로 현대까지 이어져내려와 현대국어에서도 종성 ㅅ이 된다. 그리고 현대국어에서는 종성 ㅅ가 불파폐쇄음이 되고 후행 평음을 경음화시킨다" 

     

    둘다 아리송하다. 1은 망상이고 2역시 그러하다. 아마도 내 생각에는 사실 중세국어 ㅅ이 후행음절의 초성을 경음화시킨 것이 아니라, 아마도 서울대 김현 교수님 이론처럼 종성불파 문법화 이전의 종성 ㅅ[s]의 후두자질이 후행자음에 spreading되어 후행자음의 음성학적 변이를 주던 것일 수도 있다. 당시 음소로서 경음의 범주는 확립되지 않았었다. 그리고 경음 범주가 확립될 때 이미 이전세대의 출력형 /mul/ [sk] /oki/ 에서 [s]에 후행하는 [k]를 경음으로 습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물고기에서 왜 경음이 나냐고 묻는 것은 "쌀"에서 왜 경음이 나냐고 묻는 것과 같은 것이다. 쌀 역시 자음군에서 나타나는 음성적 현상이 경음이라는 범주로 음운화(phonologized)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경음화를 거치지 않고 기저부터 경음이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다른 정신나간 설명을 생각해보자. (이 문단은 말도안되는 개소리를 적겠다ㅋㅋ) 물고기와 불고기의 가장 큰 차이는 초성에 있다. 물고기는 공명음으로 시작하고 불고기는 장애음으로 시작한다. 한국어 음운론에 형태소가 결합할 때 '필수선명성요건'같은 제약이 있다고 하자. 이 제약은 형태소가 결합 시 "충분히 선명"하지 않을 경우 사잇소리를 삽입한다. 약간 변태같은 렌다쿠라고 해두자.ㅋㅋㅋ 물+고기의 제1형태소는 뭐 흐리멍텅한 ㅁ으로 시작하고 ㄹ로 끝나고 자음같은 자음이 없어서(즉, 자음이랍시고 있는 건 죄다 공명음이라서) "충분히 선명"이라는 수준에 도달하지 않는 것ㅋㅋㅋㅋ 그래서 선명성 향상을 위해 사잇소리를 넣어야 하는 것이다. 반면 불+고기는 무려 장애음으로 시작하므로 (어두는 특별한 지위를 가진다) 충분히 선명하고 그래서 사잇시옷이 필요없다. 차용어에서 단어길이가 짧고 변변찮은 자음(?)이 없을 땐 이 충분히 선명 요건을 갖추기 위해.ㅋㅋㅋㅋ 어두를ㅋㅋㅋㅋㅋ 경음화한다.ㅋㅋㅋㅋ 께임, 꼴프, 쩜프, 까스 등등. 그러나 단어길이가 좀 긴 가이드, 고르바초프, 자이로스코프 등은 경음화할 필요가 없다. 이미 자음이 많아서 충분히 선명하므로. (그리고 이 설명은 경음이 음운론적으로 중첩자음이라는 이론에 근간을 둔다. 아예 무근본은 아님.ㅋㅋㅋㅋ)

     

    하고싶은 말은 이거다. 논리적으로 만족할만한 답변은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1. 언어습득 과정을 통해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 2. 패턴으로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역사적 발전과정을 나열하는 건 설명이 아니다.

     

     

    3. 오히려 질문인 답변이 좋은 답변

    그리고 이쯤되면 오히려 답변하는 과정이 곧 더 많은 질문을 하는 과정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반추하건대, 언어학 과정생들 사이의 대화가, 나와 교수님들이 하는 대화가 이런 식인 듯하다. 현상에 대해 질문은 뚜렷해도 답변은 '가설적'(hypothetical)이다. 다른 말로 선명한 것보다 흐릿해도 흥미로운 답변, "그럴 듯한데?" 하고 구미가 당기는 답변, 그리고 "에이 설마 이게 말이되냐?"이지만 정말로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검증이 될 수 있는 답변이 좋은 답변이다. 

     

     

     

     

    지루하게 선명하기보다는 흐릿해도 흥미롭게

     

    지루해도 선명하기보다는 흐릿해도 흥미롭게!

     

    이와 대조적으로 '옛날옛적에 어떤 형태여서 오늘날 말을 이렇게 한다'는 설명은, 비록 질문이 아니라 답변처럼 보이긴 하지만, '옛날옛적에 어떤 형태였다'와 '오늘날 말을 이렇게 한다'라는 두 가지 사실을 느슨하게 이어놓은 것밖에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옛날옛적에 어떤 형태' 이든 아니든 '오늘날 말을 이렇게' 하는 건 관련이 없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머리에 떠오른 🥬를 말로 표현하고자 한다. 상고해보건대 이 단어는 과거 白菜라고 했으니 그 형태를 기억하되 상고한어에서 白菜가 발음되던 양상에다가 그것이 삼국시대에 차용될 때 당시 한반도 언어에서는 자음연쇄를 허용하지 않아 제1음절의 종성이 탈락하였음을 기억하고 거기에 지난 십수세기 간의 역사적 음운변화를 적용하여 발음은 배추라고 하자' 라고 한국어 화자의 언어기관이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흐릿해도 흥미로운 답변에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는 듯하다. 일상 질문에 대한 전공자 등판이 흔치 않은 것이 이 때문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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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리고 그 함정은 의외로 마수를 뻗치고 있는데, 왜냐하면 역사언어학에 중독된 사람은 모든 언어현상을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더 심하게는 지난 100년 간 형식주의 이론언어학이 수차례 부정해온 미신 "언어는 습관이다"를 여전히 답습하며, 언어를 마치 역사/문학/문화 현상인 양 취급하고 이론언어학의 존재가치조차 부정해버리는 아주 고약한 지경에 도달하게 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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