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요약
예전에 작성된 영영사전 비교 평가글을 읽고 흥미로운 지점들을 기록한 단상입니다. 저는 영어교육이나 외국어교육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사전(특히 발음표기 방식)을 평가하는 관점이 "비교평가글" 저자분과 저 사이에 다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번 저의 글은 영어교육과 음운론에서 어휘강세현상을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겸사겸사 모음이 아니라 음절에 강세가 할당되는 사례로 영어 규칙강세 예시도 제시합니다.
출처: https://blog.naver.com/nicezic/90002321733
목차
1. "영영사전 비교연구" (2006) 소개
2006년 어느 블로그 포스팅에 대한 아무말이다. 권희섭 님이 쓰신 글이라고 인용되어 있다. 철지난 글이다. 사전을 만드는 방식부터 사용하는 방식까지 모든 게 달라졌다. 종이사전을 펼치는 건 무척 드문 일이 되었고, 따라서 종이 위에 어휘 정보 구성을 어떻게 하느니 등의 문제는 너무 구시대적으로 느껴진다. 나도 올해 여름에 마지막으로 갖고 있던 종이 국어사전을 버렸다. 여러권으로 되어있는 Oxford English Dictionary는 기념품으로 소장중이지만 먼지만 모아가는 중이다.
비록 종이사전 평가는 구시대적인 느낌이 있지만, 글 내용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많아서 재밌게 읽었다. 또한 당시 많은 영어학습자들이 이 글에 무척 많은 권위를 부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글을 원래 쓰신 것으로 알려져 있는 권희섭 님은 "동시통역하고 텍스트분석과 언어분석을 밥 먹듯 하는 응용언어학을 영국에서 하고 있다"[인용출처] 고 2001년 기사에서 스스로를 소개하신다.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시는 분인가 궁금해서 찾아보았는데 찾아지지 않았다. KCI 등재지에 논문을 게재하신 분들은 연구자정보에 뜨는데, 권희섭 님은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KCI 등재지에는 논문을 싣지 않으신 듯하다. 참고로 유명하신 음운론자이신 김진우 교수님은 아래와 같이 나온다.
"4대 영영사전 비교연구" 라는 거창한 의제를 가진 이 포스팅은 문법정보 제시 방식, 정보의 배치, 폰트 크기 등등에 대해 아주 잘 정돈된 방식으로 논평한다. 대부분의 부분에 대해서 나는 할 말이 없다. ESL, EFL 전공이 아닐 뿐더러 S-side 전공자도 아니라서 문법 정보가 정확하니 제시를 잘 하니 어쩌니를 논할 자격이 안 된다. 다만 기술내용과 등재정보를 극도로 효율적으로 남겨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전반적인 사고 방향 자체에는 무척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발음제시방식에 대한 블로그 글쓴이의 평가를 읽으며 참 기분이 묘했다. 특히 강세에 대한 생각이, '이건 아니지 않나?' 싶었다. 아마도 20년쯤 전의 글이어서 옛날 사고방식(?)이라 그런 것이거나, 영어교육/영어학에서 통상적인 통론에 내가 잘 납득을 하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다.
2. 어휘강세의 표기는 모음에?
이분은 어휘강세의 표시를 음절단위에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피하고 모음에 표기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듯하다. 그러나 어휘강세는 반드시 음절에 할당된다. 어휘강세가 떨어졌음을 알 수 있는 외부적 근거 (=음성학적 관찰)는 다양하고 모음의 quality나 음장이 변화한 것은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 영어는 어휘강세가 다소 불규칙적이지만 비단어 등 규칙적 강세할당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반드시 말음(coda)을 포함한 음절무게(syllable weight)가 관여한다. 1
2.1 곁다리: 영어 어휘강세
영어사전을 논하고 있으므로, 영어사례를 이용해서 음절무게에 따라 강세가 주어지는 걸 확인해보자.
여담이지만 영어 강세 강의를 할 때 지명을 예시로 들기가 참 좋다. 왜냐면 지명은 무엇보다 익숙하고, 북미의 원주민 언어에서 차용된 지명들은 규칙적인 강세패턴을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지명들은 다양한 음절길이나 단어길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지명으로 시작하자.
캐나다는 영어로 3음절 Canada CV.CV.CV 이다. 첫번째 모음이 더 크고 뚜렷하게 발음된다.
캐나다 옆나라 미국은 America V.CV.CV.CV 인데 발음하면 두번째 모음이 더 크고 뚜렷하게 나온다.
두 단어에서 더 크고 뚜렷하게 발음되는 모음은 뒤에서 세 번째 모음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일반화1) 영어의 음절이 많은 단어들에서 어떤 모음은 다른 모음보다 더 세게 발음된다. 일단, 이걸 "강세"라고 하자
일반화2) 강세는 뒤에서 3번째 모음에 주어진다. (수정 및 구체화될 것임)
그런데 캐나다처럼 3음절인 Agenda V.CVC.CV 는 뒤에서 세 번째가 아닌 두 번째 모음이 더 뚜렷하다. 이 사실은 일반화2에 위배된다. 만약 일반화2가 성립한다면 캐나다처럼 첫번째모음(뒤에서 3번째)가 더 뚜렷하게 발음되어야 한다.
Agenda와 같은 사례를 고려한다면 일반화2는 아래와 같이 수정될 수 있을 것이다. (빨간색은 근거없는 주장/신념이라는 의미)
일반화2a) 강세는 불규칙하다. 그러나 강세가 모음에 떨어진다는 건 확실하다.
일반화2b) 강세는 뒤에서 3번째에 주어진다. 그리고 "3번째"라고 할때 말음과 모음을 고려한다. 이때 고려되는 단위를 '박'(mora)이라고 하자.
말음도 강세 계산에 고려된다는 사실은 abacus V.CV.CVC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세번째 음절의 말음 s가 1박을 차지하고 뒤에서 3번째 박에 해당하는 /æ/모음이 뚜렷하게 발음된다.
그런데 뒤에서 3번째에 해당하는 박이 모음이 아니라면 어떤가?
ellipsis V.CVC.CVC 와 같은 단어를 생각할 수 있다. (attested, attentive, autistic, unending 등도 있지만 복합어다. 물론 패턴은 동일하다) ellipsis에서 뒤에서 세번째 박은 p이다. 그럼 /p/가 뚜렷하게 발음되나? 그럴지도 모른다. 적어도 편안한 발화(casual speech)에서도 /p/는 생략되지 않는다. 영어의 casual speech에서는 자음연쇄가 있을때 자음탈락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과 대조적이다. 따라서 뚜렷하게 발음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음성학적 관측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뒤에서 두번째 모음인 /i/모음이 뚜렷하게 발음된다는 점이다. 겉보기에 "모음이 강세를 받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다. ellipsis에서 p와 그 앞의 i까지 포괄하는 단위는 음절이다. 만약 p와 i 모두 선명하게 발음되었으면, 그렇게 선명하게 만든 기제 (즉, 앞서 강세라고 부르는 것)는 음절 단위에 할당된다고 해야한다.
조금만 생각해보자. 음절 중 애초에 모음 발화의 선명도가 높기 때문에, 음성학적 관측에서 쉽게 두드러지는 것이다. 강세를 안받는 음절에서도 pitch, loudness, gestural 등의 측면에서 모음의 선명도가 애초에 가장 뚜렷하다.
일반화2최종) 강세는 뒤에서 3번째 '박'(mora)이 포함된 음절에 주어진다.
(여담: Marina 등의 사례를 통해 영어모음은 음운론적 장단 구분이 있고, 장모음은 2번 카운팅된다는 걸 알 수 있다)
2.2 다시 본론으로
재차 언급하지만 강세는 모음을 포함한 분절음의 단위가 아닌 그보다 큰 단위인 음절 등에 씌워지는 자질이고, 음절 등이 강세를 받았을 때 그것의 표현 양상이 모음 pitch가 올라간다거나 조음제스처에 변화가 생긴다거나 말소리 크기(loudness, dB)가 커진다거나 등이다. 반대로 강세를 받지 않는 음절의 모음이 약화되어 발음될 때에 (특히 어말에서) 말음또한 약화될 수 있다.
따라서 당연히 강세표시는 음절에다가 하는 것이 내 생각엔 더 자연스럽다. 예컨대 antifreeze /ˈæntɪˌfriz/ 와 같이 말이다. 블로그 글에서 '음절 앞에 강세 표시를 하는 것 인쇄의 문제'라느니 하는 것은 조금 많이 의아했다. 이미 컴퓨터 조판 이전부터 é ó á 등 acute accent를 포함한 모음 활자가 존재했는데 무슨 인쇄의 문제?
3. 약모음(weak vowel) 이중표기 문제
Longman 영어사전의 발음표기에 대한 혹평도 음운론자로서 조금 슬펐다. Longman은 (일부) 음성학자 음운론자들(본인포함)이 가장 좋아하는 사전이다. 영어사전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나는 Longman을 추천해주는데 왜냐면 의미 문법 이런건 모르고 발음제시가 Longman이 가장 잘 되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University College London은 음성학에서 매우 권위있는 학벌(?)인데 과장 조금 보태서 한때 UCL이 영어음성학을 혼자 하드캐리하던 시절도 있었다. Longman 사전, 특히 Longman 사전의 발음표기는 당시 John Wells 교수를 필두로 한 UCL의 음성학 전통에 철저히 기반하여 있기에 발음제시가 우리가 보기에 매우 타당하다.
그런데 외국어학습 전공하신 분들에겐 너무 많은 정보로 보이기도 하나보다 😢
그... '이층입주'가 선택하라고 한 게 맞던가....? Longman Dictionary 머릿말에 분명히 발음표기에 대한 설명이 있을텐데 당장 인터넷에서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기술주의적) 상식으로는, 만약 특정 모음의 음가를 일부 사람들이 [ɪ]로하고 다른 사람들이 [ə]로하는데 이게 영국/미국 영어 구분 등 지역적 구분이나 기타 사회언어학적으로 환원될 수 있는 요인 때문이 아니라면, 복수기저형을 의심해볼 여지가 있다. 혹은 이렇게 표기되는 두 모음이 특정 환경에서 중화(merger)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이층입주' 표기를 하는 것이 이론적으론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세받지 않는 모음의 발화에 대한 여담. 어떤 논문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학회에서 발표 들은 페이퍼였을 것이다. 그 논문은 한국인 영어 학습자들의 모음발화를 분석한 것이었는데, 놀랍게도 (혹은 놀랍지 않게도) 강세를 받지 않는 모음이 덜 reduced된다는 것이었다. 블로그 포스팅 저자가 위에 제시된 단락에서도 서술하였지만 "강세 표시가 없는데도 이런 무강세 약모음을 강하게 발음하는 성향을 보여서 그렇다"일 수 있다.
근데 아마 그 이층입주는 최근판에서는 다 없어진 걸로 알고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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