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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챌린지 20

[실험은 어려워] 8. 수집된 녹음을 분절하자

(지난이야기: 한국어 유음화 실험에서 한국어 화자들의 발화 녹음 데이터를 수집하였다. ['실험은어려워' 시리즈 보기]) 단순히 한국어 화자들의 목소리를 녹음했다고 해서 모든 실험과정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방음부스 대여기간이 끝나고 이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할 시간이 되었지만, 각각의 피실험자들로부터 수집한 것은 5분에서 10분정도의 긴 wav 파일 3개. 한 명의 피실험자마다 세션 3개를 진행하였는데, 한 세션 동안 녹음이 끊임없이 이어져서, 긴 wav 파일 안에 단어 여러개 발화 데이터가 들어가있는 것이다. 문제가 있었던 피실험자들의 데이터는 아예 이 수준에서 파기해버렸고, 나머지 wav파일들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Praat에서 직접 들으면서 어떤 stimulus를 발음한 것인지 textgrid에 태깅..

생각나는대로 2024.11.17

변별자질이라는 허들

학생들이 변별자질을 어려워합니다.  오늘날 형식주의 음운론에서 (그리고 통사론도 그런걸 생각해보면 사실상 형식주의 이론언어학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변별자질의 설정과 운용입니다. 2학년 음운론 입문 과목에서 학부생들이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개념 중 하나인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분절음을 자질들의 묶음이라고 이해시키려해도 헤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음성학적인 조음위치, 조음방식 등의 개념은 서로 독립적인 것을 쉽게 이해하듯 합니다. IPA 차트에도 각각 행과 열로 표시되어 있으니, 하나의 소리를 조음위치 자질과 조음방식 자질 그리고 후두자질 등을 이용해 분석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그닥 어려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이해시키려고 노력을 해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냥 자질-분절음 쌍..

생각나는대로 2024.11.16

[실험은 어려워] 7. 데이터를 수집하자

(지난이야기: 한국어 유음화 실험을 하게 되었다.['실험은어려워' 시리즈 보기]) 홍보를 열심히 했는지 2일차부터 한 두명씩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실험을 위해 방음부스를 1주일 정도 정해진 시간(오후1시에서 5시) 빌렸는데, 실험 첫날에는 아무도 오지 않아서 하루를 그냥 날렸다. 둘째날 가장 처음 피실험자를 맞이했는데, 특별해서 아직도 기억난다. 대학교 2학년 여성이었는데, 불어불문학과 재학중이라고 했다. 실험설명을 하고, 동의서를 받고, 방음부스에 같이 들어가서 연습세션 해보고, 그 뒤엔 나는 방음부스를 나온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데이터를 뽑아내기 위해서 방음부스에 피실험자를 가두는 홀로 두는 것이다. 눈치보지 말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일뿐더러, 실험 진행자(본..

생각나는대로 2024.11.15

[실험은 어려워] 6. 실험참가자를 모으자

(지난이야기: 한국어 유음화 실험을 하게 되었다.['실험은어려워' 시리즈 보기]) 윤리 통과도 했겠다, 이제 실험만 진행하면 된다. 그런데 내가 준비가 다 되었다고 실험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내 실험에 참여해줄 사람을 모집하는 일이 남은 것이다. 실험참가자를 모집하기 위해서 작은 게시물을 만들어서 캠퍼스 내 게시판에 붙였다. 지금이라면 에브리타임이나 당근 등의 앱을 이용할 것이지만, 그때는 아직 그런 앱이 없었다. 그래서 다소 오프라인이었다.  게시판에 붙일 홍보 게시물에는 실험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보상, 어떤 사람들을 모집하는지, 그리고 내 연락처와 PI (교수님) 연락처를 남겼고 관심있으면 카톡이나 문자로 연락을 달라고 적었다. 이때 실험 그자체에 대한 목적은 적지 않는다. 유음화 실험이라고,..

생각나는대로 2024.11.14

[실험은 어려워] 5. 윤리심사받기 (2)

(지난이야기: 한국어 유음화 실험하려고 IRB심사 냈는데 갑자기 윤리위원회에서 얼굴좀 보자고 미팅을 잡아버렸다! ['실험은어려워' 시리즈 보기]) 윤리심사위원회에서 만나서 이야기좀 하자고 일정 잡자는 메일이 왔다. 난 PI (교수님)에게 이런 게 흔한 일이냐고 물어봤는데, 자기도 처음이라고 했다. 어쨌든 빨리 일정을 잡아서 미팅을 했다. 사실 도대체 뭘 위한 미팅인지 감이 안 잡혀서 좀 많이 걱정을 했는데, 다른 것은 없었고 그냥 심사결과 내기 전 그냥 얼굴 보면서 실시간(?)으로 물어보고 답하고 하면 효율적이라서 미팅을 잡는다고 했다. 미팅에서 물어봤던 건 주로 참가자 모집에 관한 것이었다. 첫째, 현찰지불로 보상하는 것에 관해서 질문을 받았다. 나는 연구비한도 내에서 한 사람당 정해진 액수를 지급할 ..

생각나는대로 2024.11.13

[실험은 어려워] 4. 윤리심사받기 (1)

(지난이야기: 싫지만 한국어 유음화 실험을 해야 해 🤪 [시리즈 보기]) 지난 이야기에서는 한국어 유음화 실험을 하기 위해 실험단어를 구성했다. 2음절 CVC-CVC 구조를 가진 한국어 비단어로서, 제1음절의 종성이 ㄹ로 끝나고 제2음절의 초성이 ㄴ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가자를 모집하는 것이다. 아무리 실험단어가 멋지게 구성되어 있더라도 그 실험에 참여할 사람이 없으면 아예 데이터 자체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성실험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기 때문에 대학교의 연구윤리위원회 내부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흔히 IRB라고 하는데, 그냥 Ethics board라고도 한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IRB는 Institutional Review Board의 약자라고 한다...

생각나는대로 2024.11.12

음운론 연구에서 수어의 위치에 관한 단상들

0. 요약곧 저널 Language에 실리게 될 Law, Power & Quinto-Pozos 논문 manuscript가 돌고있다 (이하 LPQ). 우리 리딩그룹에서도 circulate되어서 덕분에 나도 구해서 같이 읽었다. 리딩그룹에서 (여러의미에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오갔다. 아마 많은 음운론/역사언어학 연구자들 그룹에서도 그랬을 것같다. LPQ는 음운론, 특히 통시언어학(혹은 미시적으로는 음운변화 비교연구)에서 수어가 온전한 위치를 차지하고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수어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환기시킨다. 수어에서도 입말과 유사한 음운변화의 원칙이 적용된다. 그러나 언어변화 데이터에서 수어가 고려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건 잘못되었다. 수어도 언어다. 이런 요지. 나머지 부분에선 리딩그룹에서 오..

생각나는대로 2024.11.11

[실험은 어려워] 3. 실험단어 만들기

(지난이야기: 싫지만 한국어 유음화 실험을 해야 해 🤪 [시리즈 보기]) 한국어 음운문법을 가진 화자들이 어떻게 유음화를 적용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처음보는 단어에 유음화를 적용하는지 안하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재차 강조하자면, 개별적인 한국어 단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걸 만들어내는 음운문법에 포커스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단어(nonce word)는 '그럴싸하게 생겼지만 의미가 없는 음소의 연쇄'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고전적인 예로 영어의 blik과 bnik이 있는데, 전자는 비단어이고 후자는 불가능한 단어다. blik은 영어에서 음소가 결합되는 규칙을 따르기 때문에 '우연히' 뜻이 없는 단어다. 미래에 이 단어가 영어 렉시콘에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 bnik은 그렇지 않다. 죽었다..

생각나는대로 2024.11.10

[실험은 어려워] 2. 주제와 방법론을 고정하기

(지난이야기: 싫어도 실험을 해야 해 🤪 [시리즈 보기])내가 탐구하던 주제는 한국어의 유음화였다. 한국어에서 /nl/ 연쇄는 음소배열 상 이유로 표면형에서 투명하게 실현될 수 없기 때문에 유음화(/nl/ → [ll])된다. 교과서적으로는 깔끔한데, 사람마다 유음화의 적용 양상이 다르다. 유음화의 예시는 칼날 → [칼랄], 설날 → [설랄] 정도가 있다. 그런데 현실발음에서는 세대별로 다른 양상이 나온다.   위 표는 박선우 이주희(2017)에 수록된 임수록(2013)이다. 갈수록 해당 규칙이 덜 적용되는 방향으로 언어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주 최근 내가 진행한 다른 실험에서 사용한 연습단어 인류/일류를 실험참가자들(20대)이 발음으로 구별하기도 했다.[링크] 규범주의적으로는 '인류'에..

생각나는대로 2024.11.09

[실험은 어려워] 1. 실험할 결심

실험을 밥먹듯이 하는 음성학자들과는 달리 나는 실험이 무섭다. 하지만 언어학은 경험과학이기 때문에 결국 관측의 과정이 가장 크게 말한다. 어떠한 이론 프레임워크를 가지고있는지와는 별개로 언어현상을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언어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관측을 통해 이 가설을 검증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실험만이 관측을 위한 수단은 아니다. 인류언어학자들은 실험적 방법이 아니라 채록을 통해 관측을 하고, 본인 스스로가 소수언어의 화자라면 본인의 직관으로 스스로 데이터를 생성하여 그것을 연구할 수도 있다. 여담으로 전자에 대해 helicopter linguist (특정 언어에 대해 아주 겉핥기만 하고 기초적 수준의 인상만 남기고 말아버리는 연구자) 라는 놀림이 있고, 후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물..

생각나는대로 202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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