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변별자질을 어려워합니다.
오늘날 형식주의 음운론에서 (그리고 통사론도 그런걸 생각해보면 사실상 형식주의 이론언어학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변별자질의 설정과 운용입니다. 2학년 음운론 입문 과목에서 학부생들이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개념 중 하나인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분절음을 자질들의 묶음이라고 이해시키려해도 헤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음성학적인 조음위치, 조음방식 등의 개념은 서로 독립적인 것을 쉽게 이해하듯 합니다. IPA 차트에도 각각 행과 열로 표시되어 있으니, 하나의 소리를 조음위치 자질과 조음방식 자질 그리고 후두자질 등을 이용해 분석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그닥 어려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이해시키려고 노력을 해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냥 자질-분절음 쌍을 암기하기도 합니다.
분명한 편향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언어학으로 대학원을 가고 음운론을 전공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아마도 변별자질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추측하건대 몇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우선 분석적 사고 자체를 낯설어하는 학생들이 변별자질을 어렵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이 단일한 것이 아니라 그걸 쪼갤 수 있다는 생각자체를 많이 해보지 않은 학생들은 왜 분절음을 자질의 집합으로 보는지조차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형식주의 이론언어학은 어느정도 분석철학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문장도 쪼개고 단어도 쪼개며 음성음운론에서는 소리도 쪼갭니다. 쪼갠다음 다시 분류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언어학은 이게 전부일지도 모릅니다.ㅋㅋㅋ
또한 추상적 사고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변별자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음성학 파트에서 아주 손에 잡히는(혹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다루었다면, 음운론의 관심사는 패턴입니다. 설명을 위해 무언가를 상정하고 규칙을 만들고 예측을 합니다. 자질도 그러합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저 "뜬구름"입니다. 조음위치는 눈으로 볼 수 있고 값이 비교적 명확하게 떨어집니다. 입술을 둥글게 내미는 소리라면 음성학적 [원순성] 자질의 발현이라는 걸 누구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순성]이 변별자질이냐는 패턴을 보아야 합니다. [원순성]의 유무가 어떠한 의미차이를 유발하지도 않는다면 그건 해당 언어에 없는 자질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숙고의 과정자체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한 학생은 "그냥 수학 아니냐"고 했는데, 어쩌면 수학과 음운론적 분석은 닮아있을수도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질의 효용이 피부에 와닿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자질을 이용해서 규칙을 써보고 그 규칙으로 보지않았던 형태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자질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순차적으로 데이터를 보여주는 방식의 과제제시를 좋아합니다. 일단 일련의 데이터를 보여준 다음 그것으로 최대한 음운론적 분석을 한 다음, "아 맞다, 사실 데이터 더 있어" 하면서 추가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추가적인 데이터까지 고려했을 때, 규칙이나 상정했던 가정들이 수정되는 과정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변별자질을 포함한 음운론적 개념에 능숙하게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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