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도입
신지훈님이 옛날 노래1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을 불렀다. 좋아라하면서 열심히 들었는데 얼마전 라이브 영상을 발견했다.
이거 듣는데 위화감2이 엄청들었다. 종성ㄹ이 나나 내가 평소 한국어로 대화하는 사람들 (주로 내 세대이거나 그 위)과 사뭇 다르게 조음된다ǃǃ 조음점이 나보다 한참 뒤인 것같다. 이 글은 그 위화감을 다룬다.

목차
1. 변화의 지점
나는 한국을 떠나서 캐나다에서 주로 생활한지가 10년이 넘었다. 사실 2000년 이후 출생 한국인들(주민번호 뒷자리가 3이나 4로 시작하시는 분들)이랑 오래동안 대화할 일이 거의 없었다. 특히 코로나 이후로는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합쳐서 2개월이 될까말까다. 그래서 한국어 종성ㄹ 조음 변화에 대해 그냥 단편적 사례들로만 알고 있었고 논문만 읽었지 실제로 와닿지는 않긴 하다. (Hwang et al 2019 [논문링크], Crosby and Dalola 2021 [논문링크] [논문 메모한 포스팅]) 그런데 미디어를 통해 듣게되는 20대 여성 한국어 발화에서는 이제 거의 대부분이 종성 ㄹ 발음이 나와 다른 것같다.
Hwang et al (2019)에 따르면 한국어 종성 ㄹ의 조음에서 3가지 측면의 다양성이 있는 것같다.
- place (of articulation): 혀끝이 닿는 위치 (조음점)
- occlusion: 닿는 면적이나 강도
- laterality: 설측음으로서 occlusion 좌측 혹은 우측 중 어디로 공기가 흐르나
나는 음성학자가 아니어서 모르겠지만 2번이나 3번은 어떤 언어에서도 음소적 차이를 유발하지 않는 듯하다. 즉, 한 언어에서 똑같이 ㄹ같은 설측음 발음하는데 혀와 입천장이 만드는 막힘이 얼마나 세냐에 따라 말의 뜻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혀의 왼쪽과 오른쪽 중 어디로 공기가 흐르는지도 그러하다. 난 개인적으로 한국어 ㄹ이나 영어 /l/ 발음할때나 왼쪽으로 공기가 더 흐르는 것같다. 개인차가 큰 부분.
내가 위화감을 느끼는 부분은 아마 20대 여성들의 종성ㄹ 발음에서 1. 조음점이 더더욱 뒤로 물러나고 2. 닿는 면적이나 강도가 더 늘어난 데에서 오는 것같다. 안타깝게도 laterality는 내가 구분할만한 귀가 없다. (그거 구별할 수 있는 음성학자도 있으려나 모르겠다.)
2. 종성ㄹ의 조음지점 여러 곳
그래도 명색이 언어학 블로그이니 조음에 대한 기술을 명확하게 해보는 것도 좋을 것같다. 조음음성학 전공자가 아니기에 아주 상세한 부분에서는 오류가 있을 수 있는데, 오류가 있으면 지적해주세요.
2.1 자음의 조음 기술법 (기초적인 내용)
학부수준 언어학 시험 등에서 '어떤어떤 자음의 조음을 조음음성학적으로 기술하시오'라고 하면 다음의 네 파라미터와 그 값을 물어보는 것이다.3 각각은 독립적인 스위치랑 같다고 일단 전제한다.
그니까 기류에서 하나 고르고 발성에서 하나 고르고 조음위치에서 하나 고르고 조음방식에서 하나 고르면 소리 하나 뚝딱이라는 뜻이다. (실제로는 안 그런 경우 많지만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이론 상으로는)
1. 기류(airstream mechanism): 공기의 흐름. 공기가 어디부터 어느 방향으로 흐르나
2. 발성(phonation): 성대진동여부. 유성 혹은 무성
3. 조음위치(place of articulation): 조음기관articulator가 상호작용하는 위치
4. 조음방식(manner of articulation): 조음기관들의 상호작용 양상 (공기를 얼마나 어떻게 막느냐)
(각 모듈의 세부내용은 별도의 글로 분리했다)
자음의 조음 음성학 (음운론을 위해 필요한 수준만)
0. 요약 다른 글에 썼던 내용이라 중복이지만 따로 궁금해할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조음 음성학에 관한 내용만 따로 용어집에 옮겨옵니다.저는 조음 음성학 연구자가 아니에요. 그니까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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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성 /ㄹ/의 경우 조음음성학의 자음 기술법 4가지 파라미터 별로 어떤 값을 갖는지 보자. 세 가지 파라미터는 세대고 남녀고 무관하게 대체로 고정적인데, 조음위치의 경우가 좀 다채롭다.
1. airstream mechanism: 날숨폐소리
2. voicing: 유성음
3. place: 이게 좀 다채롭다는 게 이 글의 요지
4. 조음방식: 설측음 (공기막힘의 정도에 개인차 있음)
종성 /ㄹ/의 조음위치가 치조음, 후치조음, 권설음 이렇게 세 가지 범위에서 자유롭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어는 설측음의 위치가 딱히 엄밀하게 지정되어있지 않고 liquid 카테고리에 오직 ㄹ만 있기 때문에 자유도가 높은 것이다.

위 그림의 단면에서 빨강 동그라미로 표시된 부분이 종성 /ㄹ/의 유효한 조음점이다. 혓날을 저 위치 어디에든 가져다 대고 혀 측면 한쪽 혹은 양쪽을 조금 열어 공기를 흘려보내면 종성 /ㄹ/로 인정된다.
"같다"와 "갈다"를 연이어 발음해보자.
만약 두 단어에서 혓날이 입천장의 같은 위치를 타격(?)한다면 종성 /ㄹ/를 치조음으로 발음하는 적은 수의 한국인 화자 중 한명이다! 대부분은 "같고"보다 "갈고"에서 혀의 위치가 조금 뒤쪽이다. 이건 신세대(?) 구세대(?) 다 그렇다. 그런데 신지훈 님 같은 Gen Z의 종성 /ㄹ/는 그보다더 더 뒤쪽, 연구개에 더 가까운 위치인 것이다.
3. 왜 '낯선 발음'은 [ɹ]로 인식되나
한국어 종성ㄹ은 아주 디폴트한 IPA의 [l]에 비해 조음점이 다소 뒤이다. 이건 세대와 성별 구분없이 애초에 그런 경향이 있는 것같다. 예컨대 영어의 음절 초성 [l]는 한국어 ㄹ보다 다소 앞으로 조음된다. 방금 "달"을 아주 통상적인 [l]를 종성으로 발음해봤는데, 약간 얌생이같달까? 가볍달까? 하여튼 부자연스러웠다.
그래서 그런지 나무위키에는 "한국어의 종성 ㄹ는 권설음 [ɭ]으로 발음된다. 최근 [ɹ]처럼 발음하는 사람도 많다"라고 서술되어있다.[꺼무위키] 이 서술은 부정확하다. 특히 뒷부분이.
지금 나무위키 성토대회를 하자는 건 아닌데, ㄹ 항목의 '발음'부분 서술은 좀 뜨악하다. (현재 기준 r496판이다) 발음 섹션 아래 접은 글에는 비교적 정확하게 나열되어 있는 듯하나, 그 발음기호 일람을 아래에 풀이한 문단에서는, 일단 접은 글의 내용과 호응하지 않을 뿐더러 종성 ㄹ에 관련하여서는 서술이 좀 이상하다. "한국어의 종성 ㄹ는 권설음이고 요즘은 영어 [ɹ]처럼 발음하는 사람도 많다" 는 요지인데 r486 편집이 소위 말해 '반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정은 커녕 확증편향적 근거??로 누가 동영상도 추가를 해놨다.
뒤이어진 문장은 "종성 ㄹ 음가 바뀌어서 (순행 역행 모두) 유음화가 요즘 세대에 덜 빈번하다"라고 하는데, 참 위험한 소리를 근거도 없이 써놨다. 음성학적인 오개념 서술보다 뒤이어진 음운론적 오개념 서술이 더 아찔한 걸 보면 난 음운론 연구자가 맞긴 한가보다.ㅋㅋ
유음화가 흔들린다는 부분은 단순하지 않고 풀어내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다. 철자형을 그대로 따르는 발음(복합종성 탈락 안하고 모두 발음하는 사례들도 해당한다) 이라든지 형태소분석의 차이라든지.. 예를들어, 종성ㄹ 조음점 변화를 겪지 않은 노령층 분들 사이에서도 "하늘나라"의 제2음절-3음절에 비음화가 발견된다. 당연히 '하늘'과 '나라' 사이에 형태소경계를 얼마나 강하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하늘나라가 하나의 덩어리라면 하[늘라]라, 경계를 더더욱 강하게 처리할수록 하[늘나]라 로 발음한다. 심지어 하늘.나라 이렇게 띄어서 발음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또한 애초에 유음화와 비음화 사이의 적용 영역이 애매한 사례가 있기에 거기에서 따와서 확장하는 사례도 있다.
진짜로 종성 ㄹ의 발음이 central occlusion을 수반하지 않는 [ɹ]로 바뀌었다면 생산적인 ㄹ경음화는 어떻게 설명할 건가? 구강 중간에 occlusion이 생겨서 후두에 압력이 가해지고 그게 장애음뒤경음화(POT)의 기제와 같다면, 종성 ㄹ을 [ɹ]로 발음하는 20대 친구들은 ㄹ뒤에 경음화를 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관찰을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다. ㄹ경음화 대상이 아니더라도 ㄹ뒤에 오는 모든 자음을 더더더욱 경음화하는 방향으로 언어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사실 r485판까지는 아래와 같이 서술되어 있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더 타당한 서술이다.
종성에 위치할 때는 설측 권설 접근음(ɭ)으로 발음되나, 설측 치경 접근음(l)으로 발음하는 사람도 있다.
이걸 교묘하게 바꾼 r486 편집이 진짜 악질이다.
근데 그 모든걸 다 떠나서 내가 진짜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왜 (나무위키 서술하는) 언중들은 "새로운 종성 ㄹ 발음"이 영어 [ɹ] 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실 나무위키뿐만이 아니다. 나무위키에서 인용한 아래 영상에서는 영어강사가 확증편향적 증거를 더 제시한다.
[ɹ]은 (central) approximant다. 혀 가운데가 입천장과 닿지 않고 그래서 공기가 구강의 가운데를 관통하여 지나간다. 한국어 종성ㄹ를 그렇게 발음되는 사례를 모든 세대의 모든 token 중에서 난 정말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새로운 종성 ㄹ 발음"이 [ɹ]로 인식되는걸까? 아마도 approximant에 대해 central-lateral 변별을 하지 못하고 "뒤쪽 조음점", "낯설음" 이 두가지 signal에 꽂혀서 [ɹ]과 같이 범주화하는 것같다. 확실히 (영어에서) [ɹ]의 조음점이 [l]에 비해 뒤쪽이긴 하다. 다시 말하면 기성세대가 '신세대'의 종성ㄹ을 [ɹ]로 인식하는 것은 일종의 foreignism이다. 북미영어 화자들 중 상당수가 北京의 제2음절 초성을 마찰음 [z~ʒ]로 처리하는데 이것도 foreignism의 예시다. 그냥 '낯선소리"라는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hyperforeignism (외래어 더 낯설게 만들기) 사례 공유
파르미지아노 치즈를 지칭하는 영어단어 parmesan을 미국인들이 parme[ʒ]an 으로 발음한다. 불어를 통해 들어온 표현인데, 그래서 [z] 대신 외국어 느낌을 주기위해 [ʒ]로 발음된다. 말소리 [ʒ]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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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시 종성ㄹ의 조음
어쨌든ǃ 정리하자면..
Gen Z의 종성 ㄹ은...
- 더 깊숙한 조음점을 가지고
- 더 세게 닿는 방식으로 발음되는 듯하다.
"더 세게 닿는다"는 표준적인 IPA 체계에 포착되지 않지만, "더 깊숙한 조음점..." 부분은 [l]과 [ɭ]의 차이로 포착이 된다. 현대 음성학의 거장 Ladfoged의 발음으로 들어보자
| [l] |
[ɭ] |
신지훈의 종성ㄹ발음을, 특히 원곡과 비교해서 다시 들어보면 종성ㄹ의 '세대차이'를 더 확연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젠 사랑하지 않는 다는 걸 || 알기에
"걸"은 아주 분명한 prosodic boundary에 선행한다. 전형적인 종성 ㄹ이 기대되는 환경이다.
반면 바로 이어지는 "알"은 연구개음에 선행하는데, 이때의 종성 ㄹ은 상당히 뒤쪽에서 조음될 것으로 기대된다.
배경음악이 들어가 있어서 나는 음향분석을 못하겠다. 그래도 너무 분명하게 차이가 나니 각자 귀로 들어보시길.
음성학은 더듬더듬할 뿐, 주종목은 썰푸는 쪽인 내가 듣기에는 신지훈님 (오른쪽)의 ㄹ이 모든 경우 조음점이 후퇴해있고, 혀끝이 입천장에 더 세게 붙어서 발음되는 것같다. 특히 구강 가운데 막힘(occlusion)은 매우 뚜렷한데, 옆으로 새는 공기의 frication이 들릴 정도다. 하지만 내 귀는 음성학자의 귀가 아니지.4
(덧) 아이유의 종성ㄹ도 들어보자ㅋㅋㅋㅋ 2010년에 부른 것이다.
5. 아기 맹수의 종성ㄹ 조음
https://youtube.com/shorts/PFcp3r3UZYA
"...맹수 같은 또렷함으[ɭ] 가지고 있는...
이 나무[ɭ]들을 어떻게 하면 자[ɭ] 보여드릴 수 있을까..."
아기 맹수 이시현 요리사의 종성ㄹ 조음도 조음점이 상당히 뒤쪽이고 입천장과의 접촉이 뚜렷한 것같다. 이분은 찾아보니 2000년생이라고 한다.
이거 누가 세대별로 좀 조음음성학 실험좀 해줬으면 좋겠다.
글 읽지 말고 아이유를 들읍시다 (영업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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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세대 노래를 '옛날 노래'라고 부를 날이 오다니 슬프다.ㅠㅠ [본문으로]
- 어색하고 뭔가 나만 다른 것같은 느낌 [본문으로]
- 참고로 우리는 발음(pronunciation)보다는 조음(production/articulation)이라는 표현을 더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소리를 만드는 기제'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조음'이라고 할 때 '조'는 '제조' 에 나오는 '조'와 같다. [본문으로]
- 좀 뒤끝있어보일 수도 있지만, 굳이 [ɹ]에 더 가까운 소리를 고르자면, 임현정(원곡가수)의 ㄹ이 occlusion이 더 약하다는 점에서 더 그러할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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