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에서는 달/딸/탈 이 구분되는데, 이때 음소 ㄷ/ㄸ/ㅌ가 후두에 있는 조음기관을 어떻게 조작하느냐로 구분된다. 대부분의 자음이 입과 코의 수준에서 결정된다는 점에서 이건 특별하고, 그래서 별도로 '후두자질 변별'이라고 부른다.
VOT는 후두자질의 차이가 음성적으로 어떻게 구현됐는가를 측정하는 음향음성학적 측정도구다. 이건 Voice Onset Time의 약자로 한국말로는 '성대진동개시시간'이라고도 하는데, 후두에 공기가 통과한 후 얼마 뒤에 성대의 진동이 시작되느냐를 측정한 것이다. "타"라고 아주 천천히 발음하고 "따"라고 아주 천천히 발음해서 비교하면, "타"를 발음할 때는 ㅌ..ㅎ....ㅏ, "따"를 발음할 때는 ㄸ...ㅏ 정도로 발음될 것이다. 자음을 발음하기 시작했을 때 (후두에 공기가 통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모음 ㅏ 가 시작될 때까지의 길이는 "타"가 월등히 길다. 그래서 "타"의 VOT는 "따"에 비해 무척 길다.
나무위키의 '근대 한국어' 항목의 가장 최근 버전(r131)에서 아래와 같은 대목을 봤다.
그러나 서울 방언을 기준으로, 대략 1965년(출생년)을 전후하여 평음의 VOT는 길어지는 한편 격음의 VOT는 짧아지며 둘의 VOT가 비슷하게 융합되어 버렸다. VOT 순으로 정렬하면 '경음 ≤ 평음 < 격음'이 '경음 < 평음 ≤ 격음'으로 바뀐 것이다.
한국어의 ㄷ/ㄸ/ㅌ는 원래 VOT로 (혹은 VOT만으로) 구분되었지만, 현대한국어에서는 VOT만으로는 평음(ㄷ)과 격음(ㅌ)이 구분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통설이다. VOT merger라고 한다. 이것은 사실이고, 이 사실을 바탕으로 어떤 연구자분들은 '서울한국어에 성조가 생기는 중'이라는 tonogenesis (Cho 2017) 혹은 유사-tonogenesis를 주장하기도 한다 (Bang 2018 등).
위에 인용한 나무위키 서술은 현대한국어에서 진행중인 VOT merger에 대한 통설을 대체로 따르고 있다.
다만 두 가지 지점은 약간 의아하다. 첫째, "경음 ≤ 평음" 이런 식으로, 옛날에는 경음과 평음의 VOT가 유사했다(?)는 식의 서술은 조금 의아하다. 정말 경음의 VOT와 평음의 VOT가 겹치던 시절이 있었을까? 둘째, "출생년 1965년"은 뭔가 너무 딱잘라서 구분하는 것 같아서 좀 이상하다. 1964년 12월 31일 생은 옛날 한국어, 1965년 1월 1일 생은 현대 한국어 막 이런건가?ㅋㅋㅋ
사실 이 세대구분의 지점이 어디인지에 대하여 학회에서 한 번 질문한 적이 있었다. 서울한국어에서 성조가 발생하고 있다는 tonogenesis 지지하는 발표였으므로, 아마도 강윤정 교수님이었거나 조성혜 선생님 발표였을 것이다. 내 질문은 이런 거였다: "1930년대 데이터, 2000년대 데이터 이렇게 비교하면 VOT 패턴 차이가 확연한데, 그렇다면 어느 세대부터가 언어변화의 시작이었을까요?"
그때 들었던 답변이 "1950년대 60년대생 여성부터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정도였다. 여성이 언어변화를 선도한다는 건 사회언어학적으로 잘 알려진 일반화이고, 1950년대나 60년대생으로 추정하는 것은, 수도권 집중화로 서울에 다양한 언어배경의 화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을 VOT merger의 사회문화적 원인으로 이해하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한, 다양한 연령대의 발화를 분석해보면 어느세대부턴가 평음/격음이 VOT만으로 구분이 안 되고, 그 세대가 얼추 50년대생 60년대생 정도인 것이다. 그러나 1965년생! 이렇게 딱 자르기는 너무 어렵다.
마지막으로 "그런데 정말 평음-격음이 VOT만으로 구분되던 시절"이 존재했던 걸까? 라는 의문도 있다. 개인적인 의문이다.
그건 내가 막 1960년대 1970년대를 살아보지 않았고, 그 당시에 나온 논문을 보아도 평음과 격음이 VOT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서술이 나오기 때문이다. VOT라는 개념 자체를 음성음운론의 고정 상수로 만들어버린 Lisker and Abramson (1964)를 보아도, 그걸 따른 Han and Weitzman (1970)을 보아도, 경음과 평음이 VOT로 구분된다고만 나오고, 김진우 교수님의 (1965)는 실증적, 관념적 증거를 들어서 대놓고 "VOT만으로 변별되지 않는다."라고 못박기도 했다.
뭐 잘 알려져있다시피 VOT와 후행모음의 음높이(F0)는 높은 상관관계를 가진다. 생리학적 이유가 있을텐데 난 조음음성학자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 하여튼 VOT가 짧을수록 F0가 높고 뭐 이런 관계인데, 그렇다면 애초에 VOT만 딱잘라서 그것만으로 변별된다고 말하는 건 이상할지도 모른다.
음운론이 끝나고 음성학이 시작되는 순간이 바로 이 "VOT만으로 구분..." 지점이다. 나는 사실 이 지점에서 흥미가 확 떨어진다. 그래서 음성학을 못하나보다. 솔직히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다. 누가 나한테 물어본다면, "뭐 VOT랑 F0 둘다였지 않겠어요? 다만 시대별로 비중 차이가 생겼으려나?"와 같이 물음표로 대답할 것같다. 단지 자질을 운용한다는 게 중요하지, 그 자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음성적으로 실현되는지는 부차적인 관심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아니! 그래서 VOT냐고 F0냐고!"에 흥미가 확 오를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 음성학을 해야한다.ㅋㅋㅋ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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