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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대로

학부생의 질문 '직관'은 딱 거기까지만

sleepy_wug 2024. 11. 25.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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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음운론 수업에서 음절화(syllabification) 수업을 하다가 "내 직관은 안그런데요?" 하는 질문을 받았다.

 

우선, 맥락을 명확하기 하기 위해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통적으로 음절 나누는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해 '박수치기' 혹은 'tapping하기' 등의 수단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cal👏  li👏  for👏  nia👏
ste👏 reo👏 ty👏 ping👏
lin👏 gui👏 sting👏 

 

얼추 중고등학교 때 이런 연습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음절 개념 자체에는 익숙하다. 다만 문제는 박수치기나 tapping이 모국어화자 자신의 직관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직관은 오염될 수 있다. 그래서 연구자가 본인의 직관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건 위험하다.

 

"난 서울말 유창하게 해서 사투리 안쓰거든요"라는 직관과, 이 문장을 녹음 후 pitch그래프를 그려서 높낮이를 보는 것과 무엇이 더 실상에 가까운 정보일까?

 

이제 그 학생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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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ority Sequencing Principle을 적용해서 다음절어의 음소연쇄를 음절단위로 묶는 연습을 하다가 window /wɪndoʊ/ 와 degree /dɪɡɹi/ 를 음절 단위로 묶는 연습을 시켰다. 둘다 모음사이에 2개의 자음으로 된 연쇄가 있는 2음절어인데, 이 자음연쇄 중 첫 번째 자음이 어느 음절에 배속되는지가 다르다. window의 경우 제1음절의 말음(coda)이고, degree의 경우 제2음절의 첫음(onset)이다.

 

이렇게 설명을 하자, 그 학생은 "내 직관은 그렇게 tapping하지 않는다"라고 하며 [dɪɡ.ɹi] 로 나누어진다고 주장했다.

 

즉, [dɪɡ]가 하나의 음절 [ɹi]가 다음 음절을 구성한다는 것.

 

내가 해준 답변은 다음과 같다.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각자의 직관을 이용하지만, 자신의 직관이 설명대상인 것은 아니다. 네가 tapping을 그렇게 했다면, 그렇게 한 이유가 있을텐데, 그게 음절개념과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냥 편의를 위한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tapping/clapping이 곧 음절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이쯤되니 그 학생은 흥미를 잃은 듯해 보였다.

 

그래도 나는 다른학생들이 들으라고 답변을 이어갔다.

 

너희가 직관에만 근거하여 어떠한 결론을 냈다고 하자. 그렇다면 너는 너의 직관을 환원적으로(reductionally)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tapping/clapping이 근거하는 기제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기제가 음절이랑 상관된다는 걸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Sonority Sequencing은 다르다. 만약 Sonority Sequencing에 따라 음절화를 하였는데, 그 결과가 제3의 증거에 의해 기각되었다고 하자. 그럼 그런 네 문제가 아니다. 누가됐던 Sonority Sequencing을 정리한 사람 (whoever came up with the 'principle') 의 문제다.  [각주:1]

 


 

사실, 모든 음운론 연구자가 '음절' 혹은 '음절 내부 단위'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매번 "내가 상정하는 것은 이렇다"를 설명해야 하는 것중에 하나다. 이는 음소를 정의하지 않고 대체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또한 실제로 tapping/clapping 단위가 반드시 음절은 아니다. 일본어 화자들에게 tapping/clapping을 시키면 음절이 아닌 mora 단위로 나눈다. 

 

마지막으로 "어떤 자료(data)를 신뢰할 것인가?"의 문제와도 닿아아있다. 우리(=나를 포함한 일부 음운론자들)가 동의하는 것은, 연구자 직관에서만 기인하는 자료는 코퍼스 자료보다 신뢰할 수 없으며, 언어의 샘플인 코퍼스는 언어 그 자체보다 신뢰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어느 학회에서, 내가 코퍼스 다루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한 통사론자가 내게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었다. "직관은 때론 상반되곤 하는데 코퍼스는 그렇지 않아서 좋겠어요" 하지만 나의 답은, 코퍼스는 부정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직관에 따라 뭐가 명확하면 그건 그대로 명확한 것이지만, 코퍼스는 결코 그럴 수 없다. 코퍼스에서 빈도가 높다고, 뭐랑 비교해서 뭐가 더 어떠하다고 해서 그걸 binary한 양 해석하는 것만큼 큰 함정은 없다고. 직관을 믿어서는 안 되지만, 코퍼스는 거기에 족쇄채워져서는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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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기서 air quote를 한 이유는, "sonority sequencing을 대체로 principle이라고 하지만, liquid-nasal 순 등이 불명확하고, 음성학적 환원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며, 어쩌면 그저 tendency일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이걸 principle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앞서 말했기 때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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