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이야기: 싫지만 한국어 유음화 실험을 해야 해 🤪 [시리즈 보기])
지난 이야기에서는 한국어 유음화 실험을 하기 위해 실험단어를 구성했다. 2음절 CVC-CVC 구조를 가진 한국어 비단어로서, 제1음절의 종성이 ㄹ로 끝나고 제2음절의 초성이 ㄴ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가자를 모집하는 것이다. 아무리 실험단어가 멋지게 구성되어 있더라도 그 실험에 참여할 사람이 없으면 아예 데이터 자체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성실험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기 때문에 대학교의 연구윤리위원회 내부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흔히 IRB라고 하는데, 그냥 Ethics board라고도 한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IRB는 Institutional Review Board의 약자라고 한다.
https://en.wikipedia.org/wiki/Institutional_review_board
연구윤리에 따라 '윤리적인' 방식으로 실험이 이루어지느냐는 물론 실험에 참가 대상 범위에 대해서도 심사가 이루어진다. 억지로 실험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이 비윤리적인 만큼, 억지로 실험에 참여 못하도록 배제하는 것도 비윤리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윤리심사는 꽤나 까다로운데 이건 우리 선배 연구세대들이 지은 업보 때문이다. 우리 선배들은 '과학의 진보'라는 명분하에 약자를 학대하면서 실험을 했고, 그 과정에서 약자의 약자인 소수자 아동은 특히 큰 피해를 받았다.
"사람은 어떻게 먹어야 건강해질 수 있는지 알아야 하니까, 사람을 굶겨봐야지. 우리 아들딸을 굶길 수 없으니 기왕 잡아놓고 있는 First Nations 아동들을 굶겨야겠다" 가 합리적으로 생각되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약간의 정신승리를 위함도 있다.
"윤리심사가 까다로운 것은, 화내거나 짜증낼 일이 아니. 우리 연구자들이 악마가 되지 않게 하기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이걸 참 여러번 되새겼다.
윤리심사는 여러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 우선 신청서를 쓴다.
신청서에는 우선, 프로젝트의 목표 (한국어의 유음화 적용양상이 사람마다 다르대요. 정말 그런가 확인하고 싶어요.) 그리고 실험의 방향 (남녀, 세대별로 비단어 발음을 시킨다음 녹음해서 분석할 거에요) 등 실험 자체에 대해 묘사한다. 그리고 예산을 어디서 받느냐를 적어낸다. 무슨무슨 제약회사에서 지원을 받으면서 그 약의 효용을 실험한다든지 하는 케이스인데, 내 경우는 사적자금이 들어가는 실험이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누굴 대상으로 실험을 할 것인지를 적었다. 나는 포함요건에 한국어 원어민 화자를 묘사해서 적었고 배제요건에 언어장애랑 서울이 아닌 타 지역 방언 구사자를 묘사해서 적었다. 포함요건과 배제요건에는 그걸 요건으로 상정한 근거를 포함시킨다. 마지막으로 가장 골치아팠던 부분은 실험 실제 진행자(본인)이 실험을 진행하기에 타당한 사람인지를 증명하는 부분이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납득이 되는 게, 내가 무슨 화학 실험을 아웃소싱받아서 한다면 그건 말이 안 될 것이다. 실험이 끝나고 디브리핑도 해야하고, 실험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고도 즉각 대처해야 할텐데, 그럴려면 실험 진행자가 실험분야에 대해 지식을 갖춘 사람이어야 하겠지. 그런데 처음부터 경험자를 찾으면 경험은 어디서 쌓나요.
신청서를 잘 작성하면 IRB 담당하는 부서에서 위원회를 구성해준다. 그리고 그 위원회에서 내 실험의 윤리적 타당성을 심사한다. 내 경우는 법학전공자가 위원장이었고, 심리학 연구자들 두 사람이 붙었다. 위원장과 위원 두 사람, 총 세 사람이 우리 신청서를 쭉 읽고 보강해야 할 부분을 지적해서 답장을 준다.
신청서를 보내고 위원회 어떻게 구성됐나 확인하고 한동안 보강내용 답장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날, 위원장이 대뜸 대면 인터뷰를 잡자고 했다. 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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