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0. 요약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의 모 대학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캐나다로 진학하여 언어학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국에서는 영어영문학과에서 공부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언어학과에서 공부합니다.
이 블로그는 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늘어놓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주된 이야기는, 토종 국내파인데다가 좋은대학(서-연-고-서-성-한.. 이런거 있잖아요ㅋㅋ) 출신도 아니고 게다가 유학원을 거치지 않고 독고다이로 좌충우돌 박사과정에 진학한 과정, 박사공부에 대한 넋두리, "언어학하고 앉아있네"하는 소리를 들을 법한 이야기 등입니다.
언제든 방명록과 댓글을 통해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 어쩌다보니 석사과정
저는 비틀비틀 곡선을 만들며 오느라 박사과정 진학을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재수를 하고 경영학과로 학부 입학을 했습니다. 그런데 학부졸업을 할 때 쯤 되니 경영학과랑 영어영문학과를 복수전공하고 있더군요.
경영학과에서는 졸업을 위해 복수전공 혹은 심화전공을 요구했는데, 경영학과에서 공부할수록 환멸을 느끼던 차였기 때문에 경영학 심화전공을 하기는 싫었습니다. 그래서 "영어소설이나 읽어볼까" 싶어서 영어영문학과를 복수전공했습니다. 1
하지만 저는 영문과에서 공부하는 문학이 어려웠고, 오히려 언어학이 더 많이 끌렸습니다. 2
그래서 학부 졸업을 앞둔 학기에는 본격적으로 영문과 어학전공으로 진학하는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선택은 사실 학문의 큰 뜻이 있었다기보다는 실용적 이유가 컸습니다. 무엇보다, 같은 대학의 영문과로 들어오면 학비 면제는 물론 매달 일정 정도의 생활비가 나온다는 이야기에 솔깃했습니다. 경영학 전공을 살린 취업을 하기 싫은 차였는데,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모색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 석사 진학은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석사과정에서 진학하고 나니 비로소 '탐구하는 활동'의 재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언어학자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좀 멋있었습니다. 언어학-하고 있네! 스러운 그 설명할 수 없는 희열이 있습니다.
근데 힘든건 진짜 힘들었습니다. 밤을 새면서 공부를 했는데 사실 밤샌건 "이 내용 개꿀잼. 책읽다 보니 해가 뜬줄도 몰랐네" 라기보다는 언제까지 여기까지 해야한다 하는 진도를 맞추다보니 핫식스를 들이키며 밤을 샐 수밖에 없었습니다. 딱히 제가 성실해서 그랬던 건 아니고, 동기들은 수업 전에 준비를 다 해오는 것 같아서 지기 싫어서 그랬습니다.
석사학위 과정을 다니는동안 학교에서 받는 돈과 알바를 해서 생활이 가능했습니다. 따라서 부모님께 손을 벌릴 일이 없게 되었고, 그래서 부모님께서는 대학원 진학에 반대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인문학 전공 대학원 공부를 응원하시는 것은 아니셨고, 그건 지금 역시 그러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하기싫다 하기싫다 하면서 꾸역꾸역 하다보니 졸업이 되었습니다.
2. 어쩌다보니 박사준비
석사과정 입학 시점부터 제 지도교수님께서는 줄곧 미국 박사 진학을 추천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시큰둥했습니다.
왜냐면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박사 안할거면 왜 석사하니."(주의: 실제 발화와 많이 다를 수 있음) 식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한국에서 나고자라 석사까지 한국에서 했기 때문에, 해외유학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언어학이란게 그렇게 막 박사학위를 딸정도로 공부할 가치가 있는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언어학에서 엄청난 성과가 나왔다고 해서 사람들의 밥상에 반찬이 더 올라가지 않습니다. 언어학에서 아무리 혁신적인 논문이 나왔다고 해도 그 좁은 상아탑 밖에서 보기엔 "그래서?" 일 따름입니다. 언어학 연구과 공부의 동력은 대체로 연구자의 자기만족입니다.("화폐대신 지식을 보상으로 받는다"라고 표현합니다. 지식페이) 3
하여튼 저는 "박사과정 갈 실력이 안됨"을 보일 객관적 증거를 보이고 싶었습니다. "울고싶은데 뺨때린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포기하고 석사과정에서 마칠 이유가 필요했었나봅니다. 그래서 GRE와 토플 공부를 했습니다.
GRE 시험을 봤는데 운이 좋아서 점수가 레알 잘나왔습니다. 객관식에서는 찍은 게 맞았고, 라이팅의 경우, WR 채점하는 사람(혹은 프로그램?)이 아침에 쾌변을 했는지 라이팅도 말도 안되게 좋은 점수가 나와버렸습니다. [GRE Verbal 공부한 방법] [GRE 문제풀이 공부한 방법]
토플은 스피킹만 3일 공부했습니다. (국내파고 된장발음이라 스피킹이 걱정이었습니다) 근데 토플점수도 좀 잘나왔습니다. 제가 토플 수도없이 봤어서 (고등학생때 국제학부 지망생이라서 토플 수시 준비했음) 제 실력을 아는데 왜 토플이 잘나왔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3. 낚였다는 걸 깨달았을 때 발을 뺐어야...
이렇게 되고 나니 좀 신이 났습니다.
숨겨왔던 나~의 실력이 있었나봅니다.
"야 이거 내가 박사 원서쓰면 으아~ 막 MIT UMass UPenn 다 붙는거 아니야?" 했습니다 (주의: 진짜 세 대학에 원서를 썼음)
아니 지금 돌아보면, 어쩌면 온 세계가 전심을 다해 나를 박사과정준비라는 '그물'로 몰아넣어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보기좋게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GRE 잘나왔겠다. 토플 잘나왔겠다. 지도교수님이 (본인이 미국 박사가라고 말씀하셨으니) 매우 호의적으로 추천서 써주시겠다 말씀해주셨으니, 박사 처음 지원하던 그 때는 맨밥을 먹어도 밥이 술술 넘어갔습니다. 왜냐면 "아 진짜 다들 나 장학금 주면서 모셔가는 거 아님?" 이런 김칫국 많이 마셨거든요.
그때가 2016년 말이었습니다. 2016년 12월에 원서를 썼고 2017년 9월 입학이 목표였습니다.
이때 저는 5군데에 원서를 썼는데 그중 단 한군데만 인터뷰를 했고 나머지는 인터뷰도 없이 광탈했습니다. 그 인터뷰한 곳도 저를 뽑지 않았습니다.
그때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해 박사과정은 다 불합격하했는데 대신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에 합격(?????????)했습니다. (갑자기???)
지금 돌아보면, 낚였음을 깨달았던 그때, 조용히 워홀 다녀온 다음 상아탑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고 정상인으로 돌아와 살았어야 했습니다.
4. 와신상담
어쨌든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는 붙었으니 도망치듯 2017년 1월에 캐나다로 떠났습니다.
부모님과 주변사람들로부터, "돈받고 언어학 박사간다고 지랄하더니 꼴 좋다" 하는 소리 듣기가 싫어서 도망간 것입니다.
유효기한 얼마 안남은 석사 학생증을 이용해 토론토에 월 800불짜리 학생아파트에 들어가 지내다 기한이 다되어서 쫓겨났습니다. 그러고 나서 도망간 월 570불짜리 더러운 아파트에서 시끄러운 이웃들과 싸우면서 살았습니다. 인터넷이 끊기고 왼쪽방엔 정신병 환자가 울고 오른쪽방에선 weed(대마초) 냄새가 솔솔 풍겨오는 곳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수도 없이 후회하며 한탄했습니다.
자기비하를 엄청했던 시기입니다. 근데 이상하게도 언어학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은 점점 약해졌습니다. 오기가 생긴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도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박사과정 진학 준비에 있어서 제가 부족했던 게 무엇인지 보였습니다. 첫째로 사소한 것이지만 자기소개서의 형식이 맞지 않았습니다. 제가 조언을 구했던 사람들은 대개 문학이나 응용언어학 박사진학을 한 사람들이었는데, 언어학과에서 요구하는 자기소개서 역시 비슷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었던 게 잘못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연구실적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어떠한 형태의 실적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아예 박사지원 원서에서부터 포트폴리오를 요구합니다. [연구실적과 블로그 이야기]
그래서 다시 도전하기 위해 연구실적을 쌓는 흉내라도 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학부와 석사를 했던 저의 모교는 제가 졸업을 하자마자 도서관 access를 끊어버렸습니다. 공부를 하고 싶으면 닥치고 좋은 대학을 가야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논문을 찾아 읽을 수 있는 길이 없었습니다. (물론 나중엔 알아서 잘 찾게 됐습니다. sci-hub 만세!!)
교수님들께 "제 연구결과를 봐주세요. 이거 신기하지 않나요. 코멘트좀 해주세요. 같이 논문을 씁시다." 메일을 많이 보냈습니다. 모두들 저의 메일들을 씹다시피 했습니다. (사실 일면식 없는 다른 교수님들의 경우, 제가 누군지 알고 답장을 하겠습니까.)
"아뿔싸." 함정에 빠진 것 같아서 서럽더군요. 이미 비틀비틀거린다고 나이는 먹을대로 먹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도전하자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 한번만 더 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되자 시간이 없어도 논문을 보고 분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토론토에서 낮에는 햄버거 패티를 굽고 토마토를 썰고, 저녁에는 논문을 읽고 음성분석을 했으며 밤에는 엉엉 울었습니다.
그렇게 분석했던 데이터는, 석사때 음성실험하기만하고 제대로 분석은 안해놨던 것들이었습니다. 그것을 praat으로 수작업으로 분석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Montreal Forced Aligner 써서 그냥 기계 시켜버릴 수작업인데 그땐 그런거 몰랐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생각하니 또 빡치는데, 박사진학 후 Forced Aligner라는 게 존재한단 걸 듣고나서 "왜 닥치고 좋은 대학을 가야하는가"를 진짜 뼛속까지 느꼈습니다. 서연고 출신 과정생들은 나같은 노가다를 안했으리라 생각하니 다시 또 화가나네요. 혹시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 중에 한국어 음성발화 데이터를 막 프랏 텍스트그리드 이용해서 수작업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그만두고 [이 글]을 읽는 등 MFA 알아보세요.
어쨌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습니다.
분석결과를 통계돌리고 발표 abstract를 써서 학회들에 돌렸습니다. 또한 포트폴리오를 위해 그것을 논문의 형식으로 쓴 다음 하드디스크에 저장해놨습니다.
이런식으로 하다보니 결국 2017년 11월달에 다시 한 번 박사과정 원서접수를 시작할 때 쯤, 저는 1번의 개인 paper발표와 2번의 poster발표를 했고, 2개의 writing sample을 추가했습니다.
버거 뒤집어서 번 돈을 발표다니기 위한 비행기표와 박사과정 지원 원서비로 다 썼습니다.
알버타, 토론토, 밴쿠버, MIT(언어학), MIT(인지과학), 캔자스, UMass, Indiana, Boston, 델라웨어, NYU, 그외의 다른 대학들까지 해서 총 15군데에 원서를 냈으니까, 패티 뒤집어 번 돈 원서비로 다 썼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사실 저는 15군데라는 숫자를 일부러 맞추기 위해 의외의 대학에도 원서를 썼었습니다. 왜 15개의 대학이냐 하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때쯤 되니 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너무 떨어져서 각각의 대학 합격을 독립사건으로 가정한 다음 단순히 acceptance rate의 곱으로 합격 가능성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곳에라도 붙을 확률'을 x%로 threshold 설정하고 사건의 횟수를 계산하니 15회여서 15군데 쓴 것이었습니다. 4
이번에는 감사하게도 지원한 15개 대학 중 캐나다에서 1곳, 미국에서 2곳에서 최종 offer가 왔습니다. 그 중, 저는 캐나다 소재 대학원을 선택했습니다. (offer란게 도대체 뭔지 등, 북미권 대학원 입시 과정에 대한 포스팅은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그 대학은 연 3만불의 장학금을 4년 보장해주었고, 졸업후의 영주권을 생각했을 때도 캐나다가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5. 쓸데없는 소리
"영주권을 생각했을 때도" 라고 했는데, 영주권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어짜피 못난 대학에서 학석사 했으니 한국에 돌아가서 좋은 자리 못가고 그러니까 한국에 돌아가기 싫어서입니다. 한국에는 여전히 "어떻게 X대 나온 사람이 우리 Y대 학부생을 가르쳐요?" 하는 정서가 있습니다.
사실 놀랍지도 않지만, 한국 대학교육은 최종소비자에 민감합니다. 그리고 최종소비자는 학생도 아니고 "학부모"입니다. 그러니 대학의 의사결정자들이 학문분야 고유의 특성이나 학과별 고유의 대학서열같은거 무시하고 무조건 "유명한 대학" 출신 교수진을 확보하려고 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유명한 대학"에 따옴표를 친 것을 유의하세요.
그런데 그 최종소비자들의 머릿속에 있는 "유명한 대학"의 서열은 어떨까요? 미국의 듣보잡 주립대가 캐나다의 Mcgill University, University of Toronto, UBC 등보다 상위에 있어요. 왜냐하면 "University of (미국 주州의 이름)" 출신이다. 라고 하면, 그 주의 이름은 왠만하면 알거든요. 심지어 어느정도냐하면 코넬을 듣보잡으로 생각하는 게 한국의 평균이에요.
6. 그리고 계속
저는 공부하는 거 안 좋아합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꾸역꾸역 계속 '언어학'하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는 "언어학하고 앉아있는 소리", 그리고 "언어학하기 위해 발버둥쳤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허심탄회하게 적을테니 편하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방명록과 댓글을 통한 소통도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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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제가 경영학과 입학한 직후 국내외에서 많은 이슈들이 있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쌍용차 회계조작과 매각 그리고 대량해고(해고는살인이다), 용산사태 등등을 현시태로 맞이하면서 대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고나니 저는 도저히 경영학 전공으로 진로를 나아가면서 죄책감을 안 느낄 자신이 없었습니다. [본문으로]
- 회심의 순간(?)이랄까? 그런 순간이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들었던 영문과 어학 음운론 교수님이 담당하셨던 영어학개론 수업을 들었는데, 통사론의 X-bar 이론 진도를 나가면서 "NP의 핵은 N, VP의 핵은 V이듯, 지금껏 S로 써왔던 '문장'도 핵이 있는데 문장은 핵이 뭘까? 바로 T란다." 이렇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에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기독교의 바울로가 시리아 가던길에 환상을 본 사건에 비견하고 싶습니다 (저 자신에게는요). 레이블따위는 겉모습일 뿐이고, NP, VP 심지어 "문장"까지도 XP로 정리하는 일반규칙이라니 너무 멋지지 않나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아이는 쑥쑥 자라서 '문장의 핵은 T가 아니다'라는 논문을 쓰게됩니다.)[본문으로] - 사실 언어학은 더 연구될수록 사회적으로는 마이너스입니다. 언어학 공부하지 마세요. (
나만할거야😂) [본문으로] - (뽑는학생수) ÷ (총 지원 원서 갯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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