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naver.me/5JpHfPdC
아카이브: https://archive.ph/q4Qw6
정답은 4번 모음삽입이다. (왜 2번이 아니라 4번인지는 뒤에...)
지식인에 올라온 답변은 2개인데, 한 사람은 자음이랑 모음이 삽입됐으니 1, 4번이라고 했고, 다른 사람은 2번이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틀렸다.
정답만 쓰고 끝내기엔 너무 시시하니 음운론적 논증(phonological argumentation) 하는 방식을 정리하는 예시로 삼아보자. 음운론적 논증은 말 그대로 주어진 언어데이터를 음운론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말한다. 우리학교 커리큘럼 기준, 학부 2학년 3학년 음운론 수업에서 집중적으로 훈련시킨다.
음운론적 논증의 형식은 우선 일반화와 해석으로 구분된다. 일반화는 언어현상에 대한 중립적인/밋밋한 기술(description)이다. 중립적이기 때문에 어떤 음운론 이론을 따르건 간에 동일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해석은 데이터를 생성하는 기제를 음운론적 이론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음운론 이론에 따라 해석은 다르게 서술한다.
계속 뜬구름잡는 소리를 키보드로 쳐봐야 손가락만 아프니 다시 몰타어 데이터로 돌아가자. 이제 답안을 써보겠다. 빨간색은 답안과 관계없는 코멘트다. 말그대로 빨간색 글이라 흔히 루브릭(rubric)이라고 부른다.
데이터:
지문: 다음에 제시된 몰타어(Maltese) 명사구에서 관찰할 수 있는 음운형상은?
여담이고 학생들은 관심없을 일이겠지만, 음운론 데이터를 제시하는 방법에도 격식이 있다. 언어명이 처음 나올 때에는 그것을 identify할 수 있도록 어족이나 glottolog id를 적어준다. 또한 제국주의적인 폭력에 대한 반성으로, 언어데이터를 제공할 때에는 '사람과 지역'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는 것이 권장된다. 이전까지 그러한 맥락을 무시하듯 흡사 '박제'하듯이 혹은 '수집'하듯이 언어를 제시해온 것은 잘못이다. 이 형식을 적용해서 번잡하더라도 문제 지문을 다시 쓴다며 이렇게 될 것이다.
지문: 다음에 제시된 명사구 데이터는 몰타어(Semitic, Malta-Tunisian Arabic, glcode: malt1254)로부터 나왔다. 몰타어는 지중해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 사이에 있는 몰타섬에서 57만 명에 의해 사용된다. 이 데이터에서 관찰할 수 있는 음운현상은?
이것은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학교를 포함한 많은 북미 학교들의 언어학과에서 권장된다.
a. | [fellus] | 'chicken' | [ilfellus] | 'the chicken' |
b. | [aria] | 'air' | [laria] | 'the air' |
c. | [mara] | 'woman' | [ilmara] | 'the woman' |
d. | [omm] | 'mother' | [lomm] | 'the mother' |
또한, 상식적으로 데이터 제시할 땐 a b c d 같은 포인터를 넣어주는 게 매너다.
자 그럼 이렇게 문제가 나왔을 때, (내 기준에) 만점짜리 음운론 논증 예시 답안을 작성해보자.
일반화:
몰타어 명사구 데이터에서 정관사 the 에 해당하는 접두어는 il- 혹은 l- 가 이형태를 구성한다. il- 형태는 어간이 자음으로 시작할 때 선택되고 l- 형태는 어간이 모음으로 시작할 때 선택된다.
해석:
(규칙기반 해석)
규칙기반 해석 답안은 다음의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 1. 해당 데이터를 설명할 수 있는 음운 규칙, 2. 규칙을 적용한 도출의 예시. 물론 규칙은 아래와 같이 규칙명, formalism, 그리고 사람말로 쓴 규칙효과 디렇게 3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또한 도출은 기저형 상정을 포함해야 한다.
몰타어 정관사의 기저형은 /l-/이다. 그러나 어간이 자음으로 시작할 경우 l- 형태를 접두하면 자음연쇄를 야기한다. 주어진 데이터가 보여주는 범위 내에서 몰타어에서는 geminate이 아닌 자음의 연쇄는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음연쇄를 깨기 위해 모음을 삽입한다.
몰타어 데이터는 아래의 음운규칙을 통해 설명된다.
(X) 모음삽입
∅ → [i] / #__C₁ C₂
"어두 자음연쇄 시 어두에 [i]를 삽입하라"
이 규칙을 활용한 도출의 예시를 나타내자면 아래와 같다
UR | / l + fellus / | / l + aria / | |
모음삽입 | ilfellus | Not applicable | |
SR | [ilfellus] | [laria] |
이 때 학생들이 흔히 실수하는 것은 규칙이 적용되는 예시만 보인다는 것이다. [laria] 처럼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사례, 그리고 규칙은 적용됐으나 입력과 출력이 동일한 사례가 있을 경우 그것까지 보이는 것이 좋다. (그 반대 경우, 즉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사례만 보이는 경우는 흔지 않다) 또한 // [] 등의 기호실수도 점검한다.
(제약기반 해석)
제약기반 해석 답안은 다음의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 1. 제약의 상정과 정의, 2. 제약서열 논증, 3. Tableaux
제약은 Sonority Sequencing, Max, Dep, *CC-Onset 등을 적절히 조합하면 될 것같다. Onset 과 Coda 제약도 들어가야할 듯하다.
사용할 제약을 선택하고 정의를 쓴 다음 핵심적인 제약서열들을 제시하면 된다. 이때 datapoints a. 와 d. 에 나오는 geminate의 성격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하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것들이 음운론적으로 자음연쇄인지 아닌지, 그래서 *CC제약을 위반하는지 아닌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사실 나는 2-stage 로 문제를 내는 걸 좋아하는데, 만약 나라면 2단계(second stage)로 sibilant로 시작하는 몰타어 명사구 데이터를 줄 것이다. 예를들면 이런거 /l + sriep/ [lisriep] 'the snake'
2-stage는 약간 베이지언 스러운 사고를 요구하기 때문에 실제 학문을 대하는 데 가질 수 있는 자세와 비슷하고 그래서 최근 음운론 수업들에서, 특히 OT 기반 수업들에서 엄청 유행한다. 어떤거냐 하면, "1단계: 자, 데이터를 봤지? 이걸로 제약기반 해석해봐. 다했어? 그럼 2단계: 자, 이제 추가데이터를 줄게. 이렇게 추가데이터를 봤을 때 어떤 제약을 추가하거나 제약서열 수정을 해야 하겠니?"
그리고 바로 /l + sriep/ [lisriep] 'the snake' 이것과 같이 중간에 모음이 들어가는 사례들 때문에 기저형을 /l-/로 삼고 모음이 여기나 혹은 저리에 삽입된다고 보는 것이 더 논리적이다. (음운론에 論이 들어간다는 걸 명심하라. 음운론적 논증은 음운論적 論증 이니까 2배로 논리적이어야 한다고!)
이런식으로 제약기반 이론은 음운론적으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인간언어의 음운체계 자체에 대한 심도있는 인사이트를 주기 때문에 더 현대적이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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