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요약 겸 글 전체
선행연구를 읽다가 horror aequi라는 용어를 보았다. S-side 사람들이 왜 이렇게 라틴어를 좋아하나 모르겠는데, horror는 모두 알다시피 두려움, 공포를 의미하고, aequi는 영어의 equivalent, equal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같다'는 의미이다. horror aequi는 다시 말하면 '동일성에 대한 공포'라는 뜻이 되려나? 1
내가 언어학의 모든 것을 아는 것도 아니고 다만 일부를 공부하고 있을 따름이기 때문에, "뭐야 박사과정생이라면서 이거도 몰라?" 하면서 의아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처음보는 개념어고 흥미를 느껴서 적어본다. 다만, 이 개념을 본격적으로 논의한 논문이 2022년에 나오고, Wikipedia 페이지조차 2023년 7월에 생성되었기 때문에, 요즘 그쪽에서 핫해지고 있는 개념인 듯하다.
horror aequi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문법장치가 근접하게 출현하지 않는다는 '경향성'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 "to + 동사"를 써야할 맥락에 "and + 동사"를 쓸 수 있는 아래의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예문은 영어 구어 연구한 Szmrecsanyi (2008)에서 가져왔다.
- I'll try to find a solution. ↔ I'm going to try and find a solution.
- I tried to open the door. ↔ I wanted to try and open the door.
I'll try and find a solution. 도 물론 가능하지만, I'm going to try and find a solution. 보다는 덜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심지어 begin은 to-V 와 V-ing 모두 complement로 받을 수 있는 동사인데, begining은 V-ing를 쓸 수 없다.
* It was beginning raining. ( * 표시는 비문법적이라는 표시)
그런데 이거 왠지 낯익다. 이거 OCP아니야?ㅋㅋㅋ OCP는 의무굴곡원칙(Obligatory Contour Principle)이라는 음운론의 아주 유명한 원칙인데, 음운론의 다른 원칙들이 그러하듯(!!!!) 위반이 가능하다. 2
여담이지만 음운론의 원칙은 도로의 규정속도 같은 느낌이다. 도로의 최고속도가 지정되어 있고, 차량들은 그걸 지키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응급차는 사이렌 울리며 최고속도 위반해도 괜찮고, 뭐 벌금낼 각오하고 속도 내는 차가 있을 수도 있고. 마찬가지로 음운론의 원칙은 더 중요한 목적이 있으면 위반될 수 있다. 그래서 현대음운론에서는 원칙이라고 안하고 솔직하게 '제약'(constraint)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OCP도 제약의 하나인데, 흥미로운 것은 OCP의 처음 의도 (인접한 두 소리 사이에 굴곡이 있어야 한다) 와 달리, 모음조화나 자음조화 등 원거리 OCP 현상도 왕왕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런 원거리 OCP는 음운론자들이 무척 애정하는데, 그 이유는, 음성적으로 표상되기 전에 다층구조로 된 언어구조가 머리속에서 만들어진다는 하나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성이라는 물리적 속성을 갖지 않는 심리적인 언어구조는 음운부 말고 통사부도 관심이 아주 많다. 그러니까 통사구조에 상응하는 OCP가 없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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