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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수업 커리큘럼 고민

sleepy_wug 2024. 1. 1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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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요약

대학 수준에서는 비 전문적인 '교양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있습니다. (심지어 인문학=교양수준 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서 문제지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언어학을 인문학으로 분류합니다.

 

이러한 맥락 때문에 언어에 대한 체계적 과학적 분석을 떠나, 사람들 흥미를 돋우기 위한 교양 과목으로 언어학 수업을 구성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과목들은 대체로 언어학과가 아닌 타학과 (주로 이공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 글은 그러한 개론수업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 대한 고민입니다. 14주 커리큘럼인데, 6주 - 중간고사 - 6주 - 기말고사로 구성됩니다.

 

목차

     

    1. 언어를 한정하기 (P-side 중심)

    제가 P-side 사람이니까 이 커리큘럼 아이디어부터 소개할게요.ㅋㅋㅋ

     

    아마도 영어 등 어족 친척 언어가 많은 언어니까 가능할 수도 있을텐데, Grimm's Law 등 통시적인 관점에서 영어가 어떻게 다르게 발전해왔으며 그래서 친척 언어들이랑 어떻게 매칭이 되는지를 중심으로 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커리큘럼을 위해서는 중간고사 전 6주까지 영어와 대상언어(독일어나 네덜란드어 등) 자음과 모음 inventory 진도를 나가고, 영어 단어 IPA 읽고 전사하는 법을 연습시킵니다. 음성음운론 수업이 아니므로 기호 등에 대해서는 너그러워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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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고사 이후에는 사례중심입니다. Grimm's Law 등을 소개하면서 라틴어/그리스어 어휘가 독일어/프랑스어에서 어떻게 차용되었고, 그것이 영어에는 어떻게 차용되었는가 소개합니다. cardio - heart 등의 이중차용을 언급하면서 같은 소리가 시대에 따라 [k] ~ [h]로 다르게 차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커리큘럼의 문제는 한국어 배경의 학생들에게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영어영문학과의 언어학개론을 두 학기로 구성할 수 있다면 그 중 첫 번째 과목은 정말 흥미위주로, 언어학적 개념 심각하게 들어가지 않고,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꿈 같은 소리일 뿐인 것 잘 압니다.ㅋㅋ [각주:1] 혹은 한자어 한정으로, 중고대 한자가 한국어와 베트남어, 광동어, 보통화, 그리고 일본어에서 어떻게 다르게 차용되었는지 비교한다면 유사한 커리큘럼을 만들 수 있긴 할 것 같습니다. 

     

    언어학 교양수업 만들기

     

     

    2. S-side, 매개변인적 겉핥기

    촘스키언들이 아주 좋아하는 커리큘럼 구성인데, 몇 가지 매개변인(parameter)을 소개하고 그 매개변인이 엄청 매우 정말 많은 언어에서 어떻게 다르게 발현되는지 빠르게 훑는 구성입니다. 

     

    매개변인이라 함은 예를들어, Headedness parameter가 있는데, 어순에 관한 매개변인이고 아주 유명합니다. 이 매개변인은 핵어선/핵어말 이렇게 발현됩니다. 영어/중국어는 핵어선 언어라서 핵어(head)가 보충어(complement)보다 먼저 나와서 동사-목적어 어순이 됩니다. 반면, 한국어/일본어는 핵어말 언어라서 핵어가 보충어보다 뒤에 나와서 목적어-동사 어순을 가지죠.

     

    형용사를 명사보다 앞에 쓰느냐, 뒤에 쓰느냐도 매개변인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베트남어 프랑스어처럼 명사-형용사 어순이 기본이고 예외적으로 형용사-명사 어순을 사용하는 언어가 있는가 하면, 한국어나 영어처럼 형용사-명사 어순이 기본인 언어도 있으니까요.

     

    이런 커리큘럼이라면, 중간고사 이전에 매개변인을 충분히 학습시킨 다음 중간고사 이후에야 세계 언어들을 소개하여야 합니다. 중간고사 이전까지는 영어 외의 다른 언어는 입에도 올리지 말고 매개변인 그 자체와 그것이 영어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만을 수업합니다. 과목의 목적이 언어학적 개념을 다루는 게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적은 수의 매개변인만을 다룹니다. 강사에 따라 다르지만, 한 5개정도 골라서 다루는 것 같습니다. 

     

    중간고사 이후에는 그 매개변인을 놓고 대표적인 언어들을 일주일에 막 2개씩 나갑니다. 심할 경우 '어족' 단위로 훑는 커리큘럼도 봤습니다. 그니까 각 주별로 Romance - Germanic - Niger-Congo - Sino-Tibetan - Uralic - Afroasiatic 이런식으로 엄청 핥핥하는것이죠.ㅋㅋ

     

    이러한 커리큘럼의 문제점은 난이도가 너무너무너무 너무너무너무 너무너무너무 너-무너무 어렵다는 것이에요.

     

     

     

    이 커리큘럼으로 진행되는 개론수업을 몇 번 보긴 했는데, 아이들이 무척 고통스러워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애초에 이렇게 언어학적 개념을 깊이 들어갈거면 언어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개론 수업이랑 차이가 뭔가 싶습니다.ㅋㅋㅋㅋㅋ (재밌는 사실: 이번학기 어떤 커리큘럼으로 진행하는지는 우리 과 내부에서 결정하고 수강생들은 오리엔테이션 들어오기 전까지 모르기 때문에, 정말 이 과목 자체를 복불복으로 만드는 요인입니다.)

     

    특히 처음 언어학을 접하는 학생들은 통사-의미론적 개념을 어려워합니다. (뭐 음운론 공부하는 사람이라서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막연하고 추상적이기 때문이지요.

     

     

    3. 한 가지 교훈만 파기

    이런 커리큘럼은 take home lesson 하나를 골라서 한 학기 내내 폭격하듯 구성합니다.

     

    교훈이라 함은 뭐 이런 게 있겠죠:

    1. 언어는 본능이다 (언어습득은 패턴을 copy하는 것이 아님)
    2. 화자 없는 언어는 없다
    3. 문화 없이 언어 없다.

     

    일단 교훈 하나를 골랐으면, 그 교훈을 강조하는 실증적 사례들로 한 학기를 구성합니다. 중간고사 이전 이후 뭐 이런거 나눌 필요 없이, 사례 중심으로 내용을 가득가득 채우고 시험도 엄청 암기과목 식으로 냅니다.

     

    예를 들어 '문화 없이 언어 없다' 교훈의 경우, 문화에 따라 어떤 언어에서는 딸이 "친구 만나러 갈게"라고 말하는 순간 그 딸이 이성친구를 만나나 동성친구를 만나나 금세 알 수 있다는 사례나, 방향을 좌우로 표현하는 언어와 동서남북으로 표현하는 언어, 또 색 구분이 언어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등등의 사례들을 매우 하나씩 다룰 수 있습니다. [벼-쌀-밥 구분하는 언어와 안 나누는 언어] 등도 사례가 되겠죠?

     

    혹은 '화자 없는 언어는 없다' 교훈의 경우, 19세기까지 제국주의적 확장에서 얼마나 많은 언어들이 사라졌고, 그것이 얼마나 안 좋은 건지, 그리고 오늘날에도 영어나 보통화 등 '주요언어'로 인해 소수언어가 얼마나 사라지고 있는지 등의 사례를 나열할 수 있습니다.

     

    4. GPA booster 만들어주기 (강사가 인싸일 경우)

    만약에 강사가 인싸라면, 한 학기 매 수업마다 초청강사를 쓸 수 있겠죠. 게스트 렉처만으로 한 학기를 구성하는 수업을 실제로 보기도 했습니다. 이론 연구자부터 언어 재생(revitalization) 활동가, 외국어 선생님, NLP 엔지니어 등등 매번 guest lecturerer를 데려와서 매우 다채롭게 한 학기를 가득 채우는 방식이죠.

     

    문제는 이런 수업은 한 학기 들어도 남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이겠죠.ㅋㅋ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애매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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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솔직히 영문학 안 배우면 언어학개론 두 학기 가능할 텐데 말이죠. 그런데 영어영문학과에서 영어학 과목이 없는 경우는 봤어도 문학 과목 없는 경우는 못 봤네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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