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Analytics Made Easy - Statcounter

생각나는대로

음운론 연구자가 찾아보는 언어 레퍼런스

sleepy_wug 2024. 1. 10. 08:07

0. 요약

이론언어학은 개별언어에 천착하기보다는 언어간 공통점, 차이점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여러언어들의 특징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는 세상에 언어들이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모든 언어들을 빠삭하게 다 아는 건 불가능합니다. 물론 "어떤 토픽이면 어떤 언어" 이런식의 연상은 합니다. 대표적으로, 후두자질 토픽은 한국어가 유명하고, 렉시콘 층위 토픽은 일본어가 유명하고, 성조 관련 현상들에 관해서는 서아프리카 언어들이나 중국어를 우선 떠올립니다. 그러나 후두자질이 발달한 언어는 한국어뿐만이 아니고 성조는 서아프리카 언어, 중국어 말고도 많은 언어에서 사용합니다.

 

따라서 몇몇 유명한 언어들에 편향되지 않고 언어보편적인 현상을 탐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개별언어학 연구자들(예: 한국어학자, 일본어학자)의 성과물들을 늘 참고합니다. 이러한 성과물은 '참고문법'(reference grammar)이라고 불리는데, 애초에 어떤 언어를 봐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참고문법 책을 봐야하는지는 더 오리무중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토픽별로 언어들, 더 나아가 해당 언어들의 참고문법을 모아놓은 레퍼런스가 필요합니다.

 

이 글의 목적은 그런 데이터베이스의 존재를 알리는(?) 것입니다.

 

목차

     

    student overwhelmed by so many readings
    세상에는 언어가 참 많아요

    1. Reference grammar

    이론언어학 연구의 출발점은 바로 참고문법(reference grammar)입니다. 통사론 쪽에서는 '학교문법'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은데, 음운론 연구자들은 reference grammar를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참고문법이라 함은, 대체로 이론적 프레임워크 없이 언어현상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자료를 말합니다. 전통적으로 참고문법은 (인류)언어학자들이 미연구된 언어를 채록하고 정리한 기록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오늘날에는 그 대상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이 직접 작성하는 방식이 더 선호됩니다. 이를 위해서, 모국어 화자에게 언어학 교육을 (많은 경우 무상으로) 제공하곤 합니다. 이는 19세기 구조주의 언어학의 기틀을 다진 연구들이 제국주의적 폭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반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당시 참고문법을 서술했던 비-화자(non-speaker)들은 대체로 서유럽 출신인데, 이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여러 언어들을 기술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서유럽언어가 "표준" 이고 이를 출발점으로 다른 언어들을 타자화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실제로 옛날 참고문법을 보면, 서유럽 언어를 묘사하는 체계에 끼워맞추려는 시도가 많이 보입니다.

     

    2000년대 이후 현대에 들어와서는 말뭉치(corpus) 중심주의(?)가 도래해서, 아무런 가공도 하지 않은 날것의 언어표현들을 무진장 많이 수집한 다음 그걸 전산적 기법을 통해 분류하고 기술하는 방식으로 참고문법 서적을 만듭니다. 물론 촘스키언들은 이런 접근법을 싫어하겠죠.ㅋㅋㅋ

     

    어쨌든, 이론언어학 연구자가 어떤 언어에 대해 알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그 언어의 참고문법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제대로된 이론언어학 연구자는 자신의 직관만으로 논증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한국어가 모국어이지만 한국어를 논의할 때에는 한국어의 참고문법에 나오는 서술을 인용합니다. 전통적으로 하와이대학교 손호민 교수님의 1999년 책이나[각주:1] 1994년 책[각주:2]을 봅니다. 저는 음운론을 연구하기 때문에 고려대 신지영 교수님의 음운론 교과서[각주:3]도 좋아합니다.

     

    결국 언어학에서 어떤 언어를 안다는 것은 그 언어의 참고문법을 아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 Phoible

    Phoible은 음성음운론에 한정하여 세계 언어들의 분포를 정리해놓은 데이터베이스입니다. 음운론 연구하는 사람이라서 사심에 가득차 Phoible부터 소개합니다.ㅋㅋ

     

    최적성 이론의 최신 경향을 따라가는 음운론 커리큘럼이라면 Phoible을 2학년 혹은 3학년에 한 번은 다룹니다. 유표성(markedness) 개념을 설명하기에 아마도 가장 객관적이고 명시적인 데이터베이스가 바로 phoible이 아닐까 합니다.

     

    유표성 논증을 위해 Phoible을 사용하는 비근한 예로 장애음의 유무성 중 어떤 것이 더 무표적이냐를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p, t, k] 같은 장애음은 전 세계 언어에서 유성(성대가 떨림) 혹은 무성(성대가 떨리지 않음)으로 발현됩니다. [p]와 [b]를 놓고 보았을 때, 두 소리는 모든 것이 똑같지만, [p]는 성대가 안 떨리고 [b]는 성대가 떨립니다. 성대가 떨리는 자음과 떨리지 않는 자음 중에 무엇이 더 무표적이냐를 알고 싶다면, 전 세계 언어에서 어떤 것이 더 많이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비자연스럽고 유표적인 것은 억지로 필요할 때 (즉, 그것 아니면 의미차이를 만들어 낼 수 없을 때) 만 사용되고 그럴 필요가 없을 땐 무표적인 소리만 이용하는 것이 논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언어에서 어떤 소리가 더 많이 사용되는지는 Phoible을 통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Phoible 첫 페이지에 들어가서 상단의 Segments를 클릭합니다. 그러면 각 말소리가 몇 개의 언어에서 사용되는지 표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click 'segments' on the Phoible's front page
    Segments를 클릭하세요

     

    장애음과 관련하여 찾아본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무성 유성
    양순음 [p] vs [b] 2594 (86%) 1906 (63%)
    치경음 [t] vs [d] 2064 (68%) 1376 (46%)
    연구개 [k] vs [ɡ] 2730 (90%) 1712 (57%)

     

    따라서 이것을 근거로 장애음은 무표적으로 무성이며[각주:4] 특별한 경우에만 유무성 대립을 위해 유성장애음을 사용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4. WALS Online

    The World Atlas of Language Structures Online은 Phoible과 비슷하지만 다루는 대상이 음성음운론 토픽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WALS는 99가지의 토픽에 관하여 세계 모든 언어들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나열합니다. 음소 인벤토리의 규모부터, 어순, 그리고 "이거-저거-그거" 구분하는 언어 (this-that 이분법과 달리) 까지, 이론언어학에서 다루는 토픽들에 대해 굉장히 광범위하게 언어를 분류합니다.

     

    따라서, 만약 "영어는 this-that 이렇게 이분지인데, 일본어나 한국어에서는 '이거-저거-그거' / 'これ-それ-あれ' 이렇게 삼분지 한다" 는 데 관심이 생긴다면, WALS Online을 통해 4분지, 5분지 하는 언어들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공부하기 때문인지, Tlingit 어가 4분지 한다는 점이 무척 신기하게 느껴지네요.

     

    여담으로, S-side 공부하는 동료들과 얘기하다가 WALS 얘기가 나왔는데, 정작 그쪽에서는 선호도가 떨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아예 '언어학의 나무위키'급으로 생각하는지 개인적으로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WALS 소개하면서도 이것은 '출발점'으로만 사용하고 반드시 거기 소개된 원자료를 찾으라고 경고를 준답니다.

     

     

    3. Glottolog

    Glottolog는 언어유형학 데이터베이스입니다. 언어애호가들 사이에서는 Ethnologue를 선호한다는 것을 알지만, 정작 언어학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Ethnologue는 분명 좋은 db이긴 하지만, 여러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선교단체가 성경번역이라는 필요를 위해 만든 db이기도 하고, 사용료가 너무 비싸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성경번역을 위한 목적이다 보니, 정작 언어학에서 더 많이 연구되어야 할 언어들(understudied languages)에 대한 지원도 부족합니다.

     

    논문이나 학부 수업에서 익숙하지 않은 언어 데이터를 소개할 때 glottolog에서 색인할 수 있는 코드인 'glottocode'를 첨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한국어의 glottocode는 kore1280입니다. 

     

     

     


    • 아래에 댓글창이 열려있습니다. 로그인 없이도 댓글 다실 수 있습니다.
    • 글과 관련된 것, 혹은 글을 읽고 궁금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댓글을 달아주세요.
    • 반박이나 오류 수정을 특히 환영합니다.
    • 로그인 없이 비밀글을 다시면, 거기에 답변이 달려도 보실 수 없습니다. 답변을 받기 원하시는 이메일 주소 등을 비밀글로 남겨주시면 이메일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Sohn, Ho-Min. 1999. The Korean Languag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본문으로]
    2. Sohn, Ho-min. 1994. Korean. (Descriptive Grammars.) London / New York: Routledge. [본문으로]
    3. Shin, Jiyoung, Kiaer, Jieun, & Cha, Jaeeun. (2012). The Sounds of Korea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doi:10.1017/CBO9781139342858 [본문으로]
    4.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장애음은 성대떨림을 수반하지 않는 것이 기본 [본문으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