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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대로

한국어에서 어순을 바꾸면 비문법적인 문장이 되는 경우

sleepy_wug 2021. 5. 18. 07:51

한국어는 교착어이기 때문에 어순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단어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 단어를 의존형태소를 모두 붙인 형태 -- 즉, 흔히 일반인이 생각하는 '띄어쓰기로 나뉘어지는 단위' 정도로 생각한다면, 한국어는 단어의 순서를 바꾸어도 어지간하면 문법적인 문장이 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한국어에서 어순을 바꾸면 비문법적인 문장이 되는 경우들을 알아보자.

 

1. Scrambling word order

언어학적으로 한국어는 완전히 자유로운 어순(free word order)을 가진 언어는 아니고, scrambling 을 허용하는 어순을 가졌다고 본다. 가장 무표적인 어순은 예컨대 "철수가 영희에게 꽃을 준다"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아래와 같이 뒤죽박죽 만들 수 있다.

 

철수가 꽃을 영희에게 준다.
영희에게 철수가 꽃을 준다.
영희에게 꽃을 철수가 준다.
꽃을 철수가 영희에게 준다.
꽃을 영희에게 철수가 준다.

 

물론 각각의 문장이 전달하는 화용적(pragmatic) 의미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통사론적으로는 모두 문법적인 문장이다.

물론, 동사가 문장 처음으로 오는 경우는 좀 어색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동사를 문두로 가져오는 문장도 문법적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지만, 수용성(acceptability)의 측면에서는 매우 유표적인 문장이다.

 

준다, 철수가 영희에게 꽃을.

 

시적허용이라고 하려나?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쓰지 않을법한 문장이지만, 넓게 말해서 이것까지도 문법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앞서 적었듯이 한국어는 자유어순언어가 아니다. 왜냐하면 어순을 바꾸었을 때 비문이 되는 문장 구조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래를 보자.

 

 

2. Quantifier stranding 

어순을 바꾸어서 비문이 되는 아주 대표적으로 예시는 quantifier stranding이 있다.

이미 다들 알고있듯이, 한국어에서 체언을 수식하는 수량사는 그것이 수식하는 체언과 분리되는 것이 가능하다. 아래의 문장에서 "꽃을"과 "두 송이"에 집중하자. 두 송이는 꽃의 개수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a. 철수가 영희에게 꽃을 두 송이 주었다.
b. 철수가 꽃을 영희에게 두 송이 주었다.
c. 꽃을 철수가 영희에게 두 송이 주었다.

 

a.는 가장 무표적인(일반적인) 어순이다. 이 문장에서 "꽃을"을 "두 송이"와 떼어놓은 b.와 c. 역시 매우 자연스러운 문장이다. 하지만 모든 수량자들이 다 그런가? 아래의 A. 문장과 B. 문장을 한번 보자.

 

A. 소년이 두명 영희에게 꽃을 주었다.
B. *소년이 영희에게 꽃을 두명 주었다.
(출처: Cho, S., & Whitman, J. (2019). Syntax. In Korean: A Linguistic Introduction (pp. 190-244).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doi:10.1017/9781139048842.008 )

 

a-c 문장 대조와 마찬가지로 A-B 문장 대조 역시, 체언과 체언을 수식하는 수량사를 분리시켰는데, 이번에는 비문법적인 문장이 되었다. 이를 quantifier stranding이라고 한다. 한국어에서 주어 역할을 하는 체언의 경우 quantifier stranding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게 전부일까? 복합문의 일부를 밖으로 이동시키는 어순의 변화도 것도 비문법적인 문장을 만든다. 

 

3. Complex NP island in Korean

Ross (1967)에 언급된 유명한 syntactic island 중 CNPC (Complex NP constraint)라고 있다. 한국어의 예를 들자면, 뉴욕에서 철수는 식당에서 피자를 먹는 민준이를 만났다. 에서 밑줄 처리한 '식당에서 피자를 먹는 민준이'가 complex NP에 해당한다. Complex NP 안에 있는 요소는 밖으로 빼낼 수 없다. 아래와 같이 한번 어순을 바꿔보자. 아래의 예시에서 '피자를' 의 위치에 주목하자.

 

1. 뉴욕에서 철수는 식당에서 피자를 먹는 민준이를 만났다.
2. 뉴욕에서 철수는 피자를 식당에서 먹는 민준이를 만났다.
3. *뉴욕에서 피자를 철수는 식당에서 먹는 민준이를 만났다.
4. *피자를 뉴욕에서 철수는 식당에서 먹는 민준이를 만났다.

 

일반화하면 다음과 같다. '피자를'은, [식당에서 피자를 먹는]이라는 통사체(constituent) 안에서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단위 밖으로 빼낼 수는 없다. 따라서 한국어에서 아무리 어순이 자유로워도 '피자를'을 밖으로 빼내는 등의 어순을 바꾸면 비문법적인 문장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론틀에 따라 이것을 phase로 보느니 등의 차이는 있겠지만 통사현상자체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팩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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