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Analytics Made Easy - Statcounter

생각나는대로

좀비의 차용

sleepy_wug 2021. 11. 18. 13:29
반응형

내 방송에 오는 사람 중 한글을 뗀 영어권화자가 한명 있다.

 

그저께는 "댄큐" 라길래 무슨말을 하고싶은건가 싶어서 물어보니 Thank you를 한글로 쓰고 싶었나보다. (이어서 th 발음을 어떻게 한글로 적는지에 대해 물어봤고, 나는 ㄸ을 말했고 동시에 다른 청자는 ㅆ을 말했다.)

 

Thank의 기저형은 절대 tha[n]k 가 될 수 없다. 이것은 단일어이고 따라서 해당 비음이 조음위치동화가 되지 않은 상태로 출현하는 경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한국어에서 thank you를 "댄큐"라고 쓸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철자의 영향일 것이다.

 


아니 그전에 애초에 어휘차용에서 출발어화자가 주체가 되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한가? 이런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다. 말그대로 정의 상 차용은 도착어화자가 출발어 표현을 빌려쓰는 것이다. 차용 과정의 주체는 도착어화자이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 존재하는 영어로부터의 차용어'(Korean loanwords from English)는 한국어 화자가 한국어에서 영어표현을 빌려쓰기 위해 영어표현을 빌려와 한국어 음운론에 따라 표출하는 것을 지칭한다.

 

따라서 보통 L1과 L2 사이에 언어외적 위계가 존재할 때 L1->L2 일방향으로 차용이 이루어진다는 숨겨진 가정(hidden assumption)이 있다. 출발어 L1은 항상 영어, 프랑스어, 스와힐리어, 라틴어, 한문 등의 국제어(lingua franca), 도착어 L2는 한국어, 일본어, (라틴어의 경우) 영어 프랑스어... 등등.

 

그래서 반대의 경우는? 즉, 링구아 프랑카 L1 방향으로의 차용에서 L2화자가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경우는? 적당한 개념어조차 생각이 안 난다. 일단 "외국어로 표현"이라고 하자. 이러한 '외국어로 표현'에 있어서 L2화자가 L2 -> L1으로 차용을 할 경우는 "원하지않는 강제주입"이자 "통용되지 않는 가상"으로 보인다.

 


"강"이라는 대상을 한국어로 표현하는 예를 들어보자

 

  • L1 -> L2: 국제어인 한문의 江이 차용되고 더 나아가 "가람"을 대체한다.
  • L2 -> L1: 역전의 관계, 즉 "가람"이 중국에 차용??

 

 

 

반응형

 

L2->L1의 상황은 부자연스럽고 일시적이다. 하지만 분명 고대에 중국어권에서 "가람"을 외치던, 혹은 그걸 한자로 적어보려했던 한국어화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중국어의 일부로 편입되지 않는다.

 

다시 한국어와 영어의 역학관계로 돌아와서 한국어화자가 한국어단어를 영어로 표현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게 있다. 한글 자모 하나하나를 "로마자표기법"에 따라 옮겨적는다. 마치 thank you를 철자에 이끌려 '댄큐'로 옮기는 것과 동일하다. 둘 사례 다, 규범에 따른 비자연스러운 좀비다. 

 


정방향 차용의 가장 교과서적인 사례는 no touch -> 노다지, puncture -> 빵꾸 등이다.

 

현실에는 fighting -> '화이팅'~'파이팅' 같은 사례도 있고, 炸醬麵 -> 짜장면 ~ 자장면, jump -> 쩜프~점프 같은 사례도 있다.

 

이 차용 사례들은 모두 존재하기에, 차용어음운론에서는 유의미하다. 그러나 살아있지 않은 좀비의 언어생활을 강요하는 어떤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특히 짜장면과 쩜프의 사례는 흥미롭다. '장면', '프'가 소위 유일한 표준형이었거나 아직도 표준형이다. 마치 자국어로의 차용도 앞서 언급된 '외국어로 표현'처럼 규범이 주입되어 좀비처럼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둘다 규범이 차용을 왜곡하는 사례다. 그런데 그 규범이라는 게 비논리적이다. 똑같은 양상으로 보이는데, 노다지는 좋고 빵꾸는 안좋댄다. 짜장면은 예전엔 안 좋았지만 지금은 좋댄다. 꼴리는 대로의 폭력이고, 프로이트 말대로 꼴리는 대로 무지성으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게 가장 큰 권력이다.

 

단순히 차용어에만 해당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소위 '엘리트'들은 자신들끼리만 통하는 이런저런 '투명 악수'를 통해 살아있는 언어를 제단하고 '좋은 언어'와 '나쁜 언어'를 가르는 권력을 행사한다. 깨끗""가 좋고 깨끗""는 나쁘며, 똑같은 동의중첩어(同意重疊語)라도 '외갓집'은 나쁘지만 '평화'는 좋댄다.

"오늘 점심을 밖에서 먹고 왔는데, 이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건 말이죠, 국어원장님 족같애요" (족발은 발 족(足)자에 발을 또 쓴 동의중첩어라서 규범에 맞는 표기를 함)

화자는, 언중은, 언어사회가 특정 언어생활을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자신들의 '투명 악수'에 따른 자의적 규범에 맞지 않는다고, 옳지 않다고 재단하는 것은 그 자체로 기득권의 행사다. 차용어음운론은 이 권력의 동태가 더더욱 선명하게 나타나는 영역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