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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대로

커리큘럼 단상: 데이터 읽기 그 자체

sleepy_wug 2024. 12. 1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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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말이 되고 채점을 하고 있으면 커리큘럼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을 많이하게 된다.
 
우리과는 커리큘럼 상 P-side 과목이 5개나 존재하고 (그것도 사회언어학, acquisition 등 periphery 말고 순수 이론과목만 고려해도), 그걸 음운론이랑 음성학이 2:3 내지는 2.5:2.5로 잘 갈라먹는 상황이다. 이렇게 과목이 많은데 1개 과목 혹은 0.5개 과목은 "데이터 읽는 방법"과 "일반화하고 그걸 글로 쓰는 방법"에만 할애하는 게 어떨까 싶은 생각이다.
 
모르겠다. 이론은 그냥 배우고 적용하고 하는 것이라 technic인데, 언어데이터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는 사실 art인 것같다. 둘다 기술이다.[각주:1] 후자의 art 기술은 수업에서 흔히 '전제되는' 듯하고 다루지 않는데 조금 문제인 것같다. 왜냐하면 음운론에서는 후자의 기술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싶어서다.
 
이론과 설명은 데이터를 똑바로 바라보는 일반화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일반화가 흔들리면 그 위엔 어떠한 이론도 설명도 세울 수 없다. 이론은 몰라도 배우기 쉽고 바뀔 수 있지만, 데이터는 잘못 보거나 볼줄 모르면 그 무엇도 시작 못한다.
 
아주 비근한 예:
 

어떤 패턴이 "허용된다"는 건, 데이터셋에서 패턴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데이터와 충족하는 데이터가 양립한다는 것이고,
어떤 패턴이 "강제된다"는 건, 모든 데이터가 그 패턴을 충족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패턴이 허용된다"라고 주장하려면, 데이터에서 그게 충족된 사례와, 충족되지 않은 사례를 명시적으로 보여주어 근거로 삼아야 하고,
"어떤 패턴이 강제된다"라고 주장하려면, 데이터에서 그게 충족된 사례만이 있다는 걸 명시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교수자한테는 너무 당연한 것이라 가르칠 생각도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러나 모든 학생들한테 이런 게 당연한 것 같지는 않다.
 
이번학기 고득점을 이어가는 학생들을 보면 처음부터 명확히 뭘 봐야할지 알고 명시적으로 일반화를 문장으로 서술하고 그 일반화의 증거를 주어진 데이터에서 골라낼 수 있다. 사용될 자질군, 규칙 제안하기, 규칙순, 도출을 통한 증명, 그리고 처음본 데이터 예측 등등은 이렇게 일반화가 된 상황에서야 할수있다.
 
반면 아예 데이터를 볼줄 모르는 / 보려 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다. 예술대학이나 문학, 국제정치학, 철학 등에서 온 학생들에게서 흔한 것같은데, 데이터 안 보고 자기가 이미 아는 지식에만 의존하려고 한다. 예를들어, "이 언어 데이터 상에서 원순모음이 항상 양순음에 후행하고 있는지"를 물었을 때 데이터 각각을 붙잡고 양순음+비원순모음 사례인지를 끈질기게 찾을 줄을 모른다. 단순히 머리속에 "양순음, 원순모음, .... [양순성] 자질 공유, .... 자질공유하는건 공기한다는 지식... 그러니까 양순음과 원순모음도 항상 동시출현하겠네" 이런 '지식'만 가지고 jump the gun하고 데이터는 안 읽는 것이다. 
 
데이터를 보더라도 사고의 과정을 명시적으로 적지 않는 학생들도 있다. 심지어 적지않은 전제에 대해 내가 코멘트했더니 "당연한 거 아니에요? 왜 적어야 해요?" 라고 반문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때마다 눈 똑바로 바라보고 "implicit assumption"이라고 얘기해주기는 하는데, 이런 사고의 습관은 참 고치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예 반학기 정도는 아예 데이터만 잡고 빈칸채우기 식으로
 
패턴:___________
충족하는 datapoints: ___________
충족하지 않는 datapoints: ________
이 패턴은 허용되는가? (예 / 아니오)
이 패턴은 강제되는가? (예 / 아니오)
이 패턴은 금지되는가? (예 / 아니오)
왜 그런가? ______________
 
이렇게 데이터에 데이터에 데이터를 본 다음 (물론 갈수록 빈칸채우기에서 문단쓰기로 이행해야겠지만) 중간고사까지 "데이터 읽기"만으로 보는 게 좋을 것같다.
 
물론 커리큘럼에 P-side과목이 넘쳐나는 경우에 한해서.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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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어의 '기술'은, "생각의 기술", "판단의 기술", "깨달음의 기술" 등에서는 art에 상응하는 개념이 될수도 있는 넓은 개념인 듯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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