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요약
동아시아 출신에 대한 인종차별(Sinophobia)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당연히 수학을 잘할 거라고 전제한다거나 구두쇠일 거라고 전제한다는 등의 소소한 편견부터 직접적인 위협까지 있습니다.
목차
1. 소소한 편견의 사례들
저는 박사과정 입시를 하던 당시 캐나다에 이미 체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mailing address를 이미 캐나다 주소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입학했던 당시에, 저로부터 특정 코멘트를 기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를들어, "와! 캐나다에 와서 컬처쇼크를 겪었어요!"라느니 "캐나다에 오니까 너무 좋아요!"라느니 하는 것들 말입니다. 캐나다도 한국 못지 않게 열등감이 있는지, 국제학생들로부터 (특히 미국에 비교하여) 캐나다가 좋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나봅니다. 저는 부드러운 분위기를 굳이 깰 필요를 못 느껴서, 그리고 특히나 당시는 코로나 전이어서 아시아인혐오에 대한 인식이 아시아인들 사이에서도 그닥 심각하지 않아서, 그냥 좋은게 좋은거라고 맞장구쳐주며 넘어갔었네요.
한번은 이런일이 있었습니다. 학부수업을 준비하는데 학기 초반, OT 제약서열을 통해 typology를 설명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제약 n개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 언어분류 개수가 이러저러하다 이런식의 수업자료를 준비하는데, 강의자가 "그렇다면 일반식이 무엇이라고 해야하지? 일반식 넣는 게 낫지 않을까?" 라고 혼잣말로 질문하자, 그 방에 유일하게 동아시아인이었던 나에게 모두의 시선이 모이는 걸 느꼈습니다. 일반식은 뭐 간단하게 n! 정도겠고, 충실성 제약과 유표성 제약이 교차해야 한다면 더 적겠죠. 일반식을 만들어내는 방향이 얼추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자리에서는 일부러 "모르겠다"고 얘기해버렸습니다. 같은 수업에서는 feature economy를 다루면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팀에 한 명 있는 아시아인으로서 그냥 좀 머쓱하더라고요. 아시아 출신이라고 수학을 잘할 이유는 없는데 말이죠.
"한국요리 잘하는 곳 어디야?"하는 질문을 저보다 훨씬 오래 산 로컬에게 들을 때도 있습니다. 전 사실 한국요리 잘하는 집을 잘 모릅니다. 더 문제는 한국엔 안매운 음식점도 많은데, 여기서 "한국식당"으로 한정하면 죄다 매운것들이라는 겁니다. 저는 한국에서도 매운요리를 먹으면 배가 아파서 안먹던 사람입니다. 한번은 친구들이랑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다운타운에 놀러갔는데 한국식당인데 메뉴가 얼추 안주하면 좋을 곳인 집에 갔습니다. 메뉴가 모두 매운 것들이었습니다. 저 빼고 다른 친구들은 매운걸 잘 먹었는데 저는 맵찔이라서 혼자 튀김만 열심히 먹고 왔습니다. 고추장과 김치를 좋아하는 게 당연하지 않다고, 그거 편견이라고 설명하는 게 처음에는 '너무 정색하는거 아닌가' 싶었는데 지금은 그냥 눈 똑바로 쳐다보고 "한국인이라고 다 매운거 잘먹는 거 아니야" 라고 말해줍니다.
2. 대놓고 혐오를 드러내던 사람들
겉으로나마 점잖게 구는 사람들과는 달리 도시의 사람들은 때로 대놓고 자신이 가진 혐오를 드러내곤 합니다. 노상방뇨를 하지 않더라도 모두 배설욕이 있듯이, 어쩌면 겉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모두 어느정도는 인종차별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위에 사람들도 많은데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너희같은 칭총들 때문에 내가 노숙자가 되었다"고 씩씩거리던 마트 앞 호보가 있었고, 아무도 보지않을 때 나를 뒤에서 밀고, 뭔놈인가 쳐다보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보이고 도망가던 놈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타자와의 접촉은 오히려 쉽습니다. 그 사람들 역시 자신이 혐오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저 역시 욕을 하고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주면 그걸로 끝입니다.
그러나 이웃 간의, 그리고 부지불식간의 편견에서 나온 혐오는 대처하기가 늘 어렵습니다. 20대 때 룸쉐어하던 독일계 친구는 없어진 물건들은 죄다 아시안들이 가져간다고 전제하고 6-bedroom의 아시아인들을 추궁했습니다. 그 친구는 그런 얘길 나에게는 '넌지시 얘기'(imply)했지만, 같이 룸쉐어하던 저보다 키가 작은 여성 동양인은 더 적나라한 말들을 들었다고 합니다. 인종차별적 멸칭들을 몇가지 들어봤으나 rice-eater라는 멸칭은 그 친구를 포함한 독일계 친구들의 전매특허인 듯합니다. 나중에 알게된 바로는 독일어에 Reisfresser라는 아시안 멸칭이 널리 퍼져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살을 부대끼며 이웃이나 지인으로 살면서 숨쉬듯이 인종차별적 언사를 하는 건 언제나 독일계 아니면 인도계입니다 (이것도 제 쪽에서의 인종차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3. 차라리 대놓고 혐오하지
민감하게 굴면 뭐든 혐오로 느껴질만한 것들이 있습니다. 코로나 당시, 아시아인만 타면 버스 승객들이 아무리 추워도 창문을 활짝 열고 심지어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피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한문철과 사고블랙박스가 유행이듯 여기도 블랙박스(dash cam) 사고영상들을 공유하는 로컬 그룹들이 있습니다. 그런 곳에선 늘상 아시아인은 유전적으로 운전을 못한다 는 편견이 작동합니다. 심지어 노란불을 보고 조금 고민하다가 교차로를 쌩하고 지나가는 등 다른 인종이 그렇게 운전했으면 그냥 넘어갈 작은 일들도 운전자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 죽일 정도의 운전 습관'으로 치부되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운전하면서 눈앞에서 그렇게 혐오하는 사람을 (아직은?)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뒤에서는 아시아인의 운전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실수하길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언제라도 그런 비슷한 사례가 나오면 "거봐, 틀린 얘기 아니라니까" 하려고요.
대학원에서, 학생들의 인종구성과 교수진의 인종구성을 비교해보면, 대학원에서 오랫동안 아시아인 비율이 상당히 높았던 사실과 무색하게 신규 교수진 임용에서는 그 비율이 뚝 떨어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많던 아시아계 대학원생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4. 결론
북미에서 아시아인이 당하는 혐오는 흑인에 대한 차별보다는 유태인들이 당하는 혐오와 비슷한 듯합니다. 제도적이고, 은근하고, 도시의 야생에서는 대놓고입니다. 수적 주류가 되더라도 차별의 대상이 되고, 기득권들에게는 자신의 기득권을 빼앗기 위해 바다건너 온 바퀴벌레 취급 받습니다.
어떠한 차별이 그렇듯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도 중첩적입니다. 몸집이 왜소하면 더 심하게 경험하고 여성이면 더더 심하게 경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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