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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의 초심으로 돌아가기

sleepy_wug 2024. 4. 29. 10:12

0. 도입 및 요약

지난 2024년 3월에는 미국언어학회(Linguistic Society of America)의 학회지 "Language"[링크]의 제 100권(volume)이 발간되었습니다. 1년에 1권(volume)이 나온다는 걸 생각하면 100주년이 된 것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 구조주의 언어학의 아버지이자 LSA의 창립멤버였던 Leonard Bloomfield의 1925년 글 "Why a linguistic society?"(왜 언어학회를?)가 코멘터리와 함께 다시 게재되었습니다.[링크] 이번 포스팅에서는 Bloomfield의 "Why a linguistic society?"를 간단하게 번역/소개합니다.

 

"Why a linguistic society?"는 저널 Language에 실린 첫번째 논문이기도 합니다 (Bloomfield 1925).[각주:1] 이 글에서 Bloomfield는 (인류학, 개별언어학, 문학, 지역학과 독립된) 언어학의 필요성, 특히 언어학회가 왜 필요한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논거로 언어학의 정체성을 제시하는데, 기술적 추상화(descriptive abstraction)과학적 방법론 그리고 변화에의 관심으로 요약됩니다.

 

이 세가지 요소가 결핍된 언어학은 유사언어학입니다. 기술적 추상화를 하지않는 것은 언어학이 아니라 다만 데이터를 답습하는 앵무새입니다. 데이터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기존의 설명체계를 답습하기 위해 데이터를 왜곡 편집하는 등 과학적 방법론을 따르지 않는 것은 언어학이 아니라 독단입니다. 그리고 언어가 언제나 변화한다는 점을 무시하고 '원형'내지는 '순수'를 맹종하는 것은 언어학이 아니라 망상입니다.

 

오늘날의 형식주의 이론언어학은 구조주의든 생성문법이든 Bloomfield가 제시한 언어학의 정체성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초심'이 한국 인터넷 문화에서 최근 하나의 밈이 되었는데, 언어학의 초심이라 하면 Bloomfield의 그 1925년 논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위해서 그 '초심'을 정리하기 위해 이 포스팅을 씁니다.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발췌 및 윤문을 하였습니다.[각주:2] 5페이지 정도의 짧은 글이니 되도록이면 원문을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원문 링크][각주:3]

 

그럼 바로 아래에 나오는 섹션1부터 Bloomfield 2024를 옮겨오겠습니다 🤗

 

목차

     

     

     

     

    1. 우리 지금 (언어학회에서) 만나, 당장 만나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안 하겠지만 일반인은 "언어학회가 왜 필요해요?" 같은 궁금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작업과 그 결과를 보기만 해도 아 언어학회가 필요하겠구나 생각할텐데, 그래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의 지향이 무엇인지(언어학이 뭔지)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언어학회가 필요한 가장 단순하고 당연한 이유는 언어학자들이 서로 교류할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미국에는 한 세대가 넘게 언어학을 연구하면서도 서로 만난 적이 없는 언어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 (1924년) 12월 28일 제1회 미국언어학회 학술대회에서 서로 처음 만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언어학자들에게 있어서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자는 것만으로 언어학회의 필요성이 충분합니다. 그렇지만 문외한들에게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 것이고 잇달아 이렇게 질문할 것입니다

     

    "아니 그래서 언어학자 아무개가 다른 언어학자 아무개를 언어학회에서 만나야 할 이유가 뭔데요? 도대체 언어학자들 사이에 공유하고 있는 것이 있기는 한가요? 이미 서지학회, 동양학회, 현대언어학회, 인류학회, 심리학회 등등이 있는데, 거기에서 만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이러한 문외한들(자연과학자, 서지학자, 그리고 일반인들)은 ✨언어과학✨이 있는 줄 모르는 것입니다.

     

    Leonard Bloomfield, colorized

     

    2. 언어학은 무엇인가

    그렇지만 언어과학은 존재합니다. 그것의 목적은 잘 정의되어있으며, 연구방법론도 잘 개발되어 있고, 연구 결과도 풍성합니다. 그래서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다른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처럼 전문적 학회를 가질 필요성을 간곡하게 느낍니다.

     

    2.1 언어학의 성격1: 과학적/기계적 관찰

    언어의 과학은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언어'를 다루기에 인류학(혹은 인간 정신의 학문)입니다. 민족학(ethnology)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자연과학과 여타 인류학 사이에서 심리학 다음으로 자연과학에 가깝습니다. 언어학의 연구방법론은 자연과학과 유사하고 결과 또한 유사합니다. 언어학과 자연과학 모두, 당장 눈으로 보기에 당연하지 않고 심지어 당대의 일반상식과 배치되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각주:4]

     

    언어학이 가진 이러한 과학적 성격은 관찰의 방식에서부터 분명합니다. 인간의 말소리를 직접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은 인류학자의 일과 비슷해 보이고 사실 현장언어학이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도 이러한 일은 인류언어학자들이 주도적으로  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언어학은 인류학의 관심과 달리 발성기관의 움직임을 기록한다거나 말소리의 결과물인 음파 등에 관심을 둡니다. 따라서, 발화과정을 묘사하는 기초적 생리학 등이 사용되어 왔고 더 만족스러운 채록을 위해 생리학 및 음향학적으로 기계적인 관찰 기법들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2.2 언어학의 성격2: 기술적 추상화

    2.2.1 기술주의(descriptivism)

    문외한들은 언어학에서 음성에 대해 기계적인 수집 절차를 거친다는 점을 대체로 알지 못하기에, 문자기록이 없는 언어들을 '사투리' 등으로 부르며 규칙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어학에서 발견한 점은 정 반대입니다. '상식있는 일반인'이 들으면 역겨울지도 모르지만,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이나 촌놈이 쓰는 말이나 비슷합니다. 문자로 기록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모든 언어집단에서, 특정 수의 음성 종류(음소)가 특정 방식으로 결합(형태소)되어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자극-반응 쌍(의미)를 이룹니다. 이러한 습관(언어의 구조와 어휘)은 엄밀하고 정밀하게 유지되고, 천박한 사회의 언어나 교양있는 언어나 어휘의 수효나 구조의 복잡성 측면에서 차이가 없습니다.[각주:5] 다른 한편으로 다양성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라틴어 문법의 품사론 등은 결코 보편적일 수 없으며, 단 하나의 언어 구조만을 나타낼 따름입니다. 다른 언어들은 형태소나 음소를 완전히 다른 패턴으로 결합합니다. 인간 언어에서 무엇이 보편적이고 무엇이 다양한지 결정하는 것은 언어학의 몫입니다.

     

    옛날에 사용되었던 언어에 대해서는 기록 문헌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 언어학자들은 기록된 글자들이 일관되게 소리로 대응되지 않는 경우, 그리고 중국어처럼 애초에 대응될 목적의 문자체계가 아닐 경우, 이 기록을 언어적으로 해석하는 문제에 직면합니다.

     

     

    2.2.2 추상화

    날것 그대로의 언어 발화 기록으로부터 구조와 어휘들을 도출하는 구체적인 기술은 일견 수학적 기법과 유사한데, 이에 대해서는 깊게 들어가지 않고 대신 그 결과의 의의를 설명하겠습니다. 어떤 언어의 실제 발화로부터 구조적 자질이나 단어, 어간, 접사 등속의 목록을 도출하는데, 이것들은 사실 수많은 언어현상들의 추상화된 결과입니다. 각 항목은 수없는 개별적 발화의 변이를 대표하는 형태입니다. 방사성 물질을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원자 개별을 각각 쫓아가지 않고, 수많은 원자의 움직임을 추상화하여 패턴을 분석하듯이 언어학에서도 개별 발화 혹은 개별 화자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별성이 집단적으로 움직임을 보일 때(언어변화)를 추상화하여 패턴을 분석합니다. 더 나아가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추상화된 결과가 바로 언어학의 직접 관찰 대상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언어학자들의 본래 할 일은 개별적 발생[각주:6]을 일일이 기록하고 통계처리하여 대규모 현상을 기술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개별적 예외와 추상화된 패턴을 구별하지 못한 것이 경제학 등의 학문이 싹틀 때 발전속도를 늦춘 지점입니다.)

     

    2.3 변화에의 관심

    언어학이 자연과학과 다른점은, 연구 대상이 언어집단이라는 끊임없이 변하는 화자들의 집단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언어학에서 다루는 대상은 역사의 속도로 변화하는데, 이 역사의 속도는 생물학적 변화 속도보다 훨씬 빠릅니다. 따라서 다른 자연과학에 비해 언어학은 관찰에 의존적입니다. 

     

    언어변화를 연구할 때는, 하나의 언어집단으로부터 분화된 여러 언어집단을 비교합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언어과학이 훌륭한 성취를 이루었으며, 방법론을 정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언어변화 연구의 결과는 단순히 특정 기간의 변화만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 설명의 정확도도 다른 역사 과학에서 보지 못한 수준으로 높습니다. 문자 자료에 기록되지 않을 정도의 사소한 자질들을 포함한 세부 정보를 가지고 언어학은 언어의 역사를 역사학의 다른 분야보다 더 오래 전까지 상고해내었습니다. 문자 기록이 있다면 일정정도 상고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문자 그대로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기법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문자를 통한 기록의 관습은 말소리와 독립적이고, 소리에 대해 문자가 어느 부분을 알려주는 만큼 다른 부분은 알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언어학의 연구 성과들은 대중의 일반적 상식과 상반되는 이야기를 합니다. 상식과 가장 다른 부분부터 하나씩 제시하겠습니다. 언어 변화는 늘 존재하고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지적으로 올바르게' 혹은 '듣기 좋은 방식으로' 언어를 교정하려는 자의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언어 변화는 쭉 이어집니다. 언어 변화는 단어 수준의 복잡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곡용을 많이 하는 것으로부터 '더 단순한' 언어로 변화합니다. 언어의 표기는 말소리를 형성하는 본이 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말소리를 투박하게 기록하는 수단일 따름입니다. 문자의 존재는 언어의 주된 활동인 말소리에 아주 작은 영향만 줄 뿐입니다. 표준어, 혹은 교양있는 언어가 원형이라거나 방언들이 표준어로부터 일탈한 것이라거나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표준어가 방언들을 기초로 이차적으로 조성된 것이고, 방언들이 역사적으로 더 뿌리가 깊습니다.

     

    3. 결론: 언어학의 독립성과 그 효용

    언어학 연구자들은 다른 학문 분야 연구자들과 협력할 준비가 되어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학은 독특하고 언어학 내부적으로 공통적인 과업을 가지고 있기에 언어학만의 고도로 전문화된 장치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이유 때문에 언어학만을 포괄하는 학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언어학은 문학의 부속 학문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됩니다. 혹은 서지학의 "언어적 측면"으로 받아들여져서도 안 됩니다. 심지어 문예 역사와 문예비평으로 구성된 '미학'과 긴밀하게 연결된 것으로 언어학이 인식되어서도 안 됩니다. 언어학자들이 이렇게 말할 때 부디 나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심지어 학계에서도 언어학이 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해는 너무나 만연해서, 언어학 연구자가 "아 나 그거 뭔지 앎. 문학 일종 아님?"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개인적이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사건이겠지만 항상 가볍게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난 한 언어학자 한 분을 예로 들겠습니다. 최근 필리핀 제언어 연구의 선구자이자 미국언어학회의 창립 멤버 중 하나인 카를로스 에버렛 코넌트(Carlos Everett Conant)가 비극적으로 사망했습니다.[각주:7] 그가 절박한 어려움을 겪지 않고 본인의 학문적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다면 인류의 보편적 지식 확장에 큰 이득이 되었을 것입니다.

     

    과학 전반에 대해 더 이야기하자면, 인류의 지식확장에 있어서 직접적인 피해는 너무나 분명해서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 원주민 언어들이 미처 기록되기도 전에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 펀딩도 단체도  거의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영어의 경우는 어떠한가요. 미국 영어가 그 표준형의 분포든 방언의 분포든 더 복잡하고 교육적인 단면을 가지고 있음을 알지만 연구할 수단과 장치가 충분치 않아 연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반 대중의 이익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우리 사회 생활의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단계가 바로 언어 활동입니다. 특히 초등 교육은 대체로 언어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영어 철자개혁 운동이라느니, 국제어 운동이라느니 하는 것들은 원칙적으로 그리고 상당한 측면에서 언어학적 고려가 전혀 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학교들의 교육가들은 교육학 교수로부터 교실의 선생님들까지 언어 과학적 성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문자 언어와 음성 언어의 관계나 표준어와 방언 간의 관계도 알지 못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언어가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언어를 가르치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학생들의 인생이 낭비되고 교육 성과도 좋지 않습니다.

     

    단지 과학의 최첨단을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를 위해서도 언어학 연구자들이 체계적으로 협력하고 전문성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언어학회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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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omfield, Leonard. (1925). Why a linguistic society? Language, 1(1), 1-5. [본문으로]
    2. 원문에서 많이 벗어난 제 생각은 각주처리했습니다. [본문으로]
    3. 더 나아가서 Bloomfield가 정립한 구조주의 언어학의 한계를 지적하는 Noam Chomsky의 글들도 뒤 이어 읽을만 합니다. New Horizons in the Study of Language and Mind도 좋고[링크] 더 최근에 나온 Chomsky Companion의 Reflections 논문[링크]도 좋습니다. 촘스키 본인이 대학원생이던 당시 (극복의 대상이었던) 구조주의에 대한 서술은 대동소이합니다. [본문으로]
    4. 이 부분을 저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자연과학에서 자연현상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현상을 모델로 추상화하는 연구방법론을 사용합니다. 또한 그 결과 역시 눈에 보기 당연한 것과 거리가 멀고 일반상식과 배치됩니다(시간과 공간이 하나이고 시공간의 왜곡이 중력이다 등). 언어학 역시 그러합니다. 언어학 역시 발화의 추상화된 형태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연구성과 역시 일반인의 당대상식(예1: 언어는 습관이다. 예2: 문자가 곧 언어이고 사투리나 입말은 언어가 아니라 규칙이 없다)과 배치될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언어학과 자연과학은 방법론과 결과의 측면에서 유사합니다. [본문으로]
    5. 여기에서 '의미'를 자극과 반응의 패러다임에서 묘사하거나 언어를 '습관'으로 특징짓는 것 등은 행동주의의 그림자가 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음운론, 음성학적 연구에서는 여전히 행동주의적 전제들이 통용될 여지가 있으나 오늘날 통사론과 의미론에서는 촘스키 이후 행동주의를 따르는 연구자들이 거의 없는 듯합니다. 물론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교양있는 현대 서울 사람들이 쓴다고 알려져 있는 ✨'표준어'✨나 사투리나, 천박한 사람들의 말이나, 문자기록이 없는 원주민들의 언어나 위계가 없고 모두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점이 이론 언어학이 소위 '표준어 사정' 등의 규범주의와 다른 지점입니다. [본문으로]
    6. 예외 [본문으로]
    7. 코넌트(1870-1925)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연구에 크게 기여한 언어학자인데, 훌륭한 연구성과에도 불구하고 생계유지를 위해 성서번역, 스페인어교사 헬라어/라틴어 교수 등 본인의 연구나 언어학 그 자체와 관련없는 일을 전전하다가 삶을 비관하여 자살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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