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Analytics Made Easy - Statcounter

생각나는대로

음성학과 음운론의 차이: 접면과 관심의 문제

sleepy_wug 2023. 4. 29. 19:02
반응형

 

0. 요약

이론언어학은 크게 S-side (의미/통사/화용) 와 P-side (음성/음운) 로 나뉩니다.[각주:1] 더 세부적으로 들어간다면, P-side 안에서 음성학이다 음운론이다 나뉠 수 있지만, 사실 오늘날 음성학과 음운론은 P-side vs. S-side 나누듯이 엄밀하게 경계가 나누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 오늘날의 음운론자들은 대체로 "음성학에 기반한 음운론"(phonetically based phonology)을 따르는 경향이 강하여 아예 음성학과 담을 쌓고 사는 음운론자들은 매우 드문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실험실 음운론(laboratory phonology) 하시는 분들은 절반쯤 음성학자이기도 해요.

뭐 전통적으로야 음성학은 말소리 자체의 물리적인 특성을 연구하고 음운론은 말소리의 심상적 표상과 추상적 단위들의 상호작용을 연구한다고 못박기도 했으나, 무엇보다 언어학이 '말소리'자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난 지는 한참되었고, 연구 토픽들이 이렇게 단순하게 '물리적'이다 '추상적'이다 분류될 리도 없습니다.

결국 주황-오렌지-등자열매색 들이 모두 '샛노랑과 새빨강 사이 그 어딘가' 들어있는 것처럼, P-side에 있는 연구자들의 연구를 보면 딱 잘라 음성학자다 음운론자다 구분되기보다는 일정한 스펙트럼에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음성학자와 음운론자 사이의 구분선이 어느정도 존재하긴 합니다. 적어도 연구자 개개인은 스스로를 '나는 음운론자입니다' 혹은 '나는 음성학자입니다'라고 구분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 구분은 아마도 스스로 본인의 연구주제가 어디랑 접하고 있다고 느끼는지랑 연구자가 어떠한 탐구방향에 더 끌리느냐에 따른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경우에 해당할 리는 없고 매우 일반화된 '특징짓기'입니다. (생각해보니 음운론자들이 줄창 하는 훈련이 바로 스펙트럼을 범주로 나누는 '일반화'와 '개념화'지요. 따라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 자체가 직업병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음성학자들은 전혀! 공감못할지도 몰라요.)

 

이 글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음성학과 음운론의 차이를 1. 어느 분야에 인접한 연구를 하느냐 그리고 2. 어떠한 사고방식 (흥미) 에 따라 연구하느냐 의 측면에서 묘사하겠습니다.

 

 

아래에 링크를 남겨놓은 관련 글도 참고해주세요.

 

음성학자와 음운론자는 친해요. 결국 "언어"라는 "같은책"을 보니까요

 

1. 연구주제가 어디에 맞닿아 있는가?

우선 접면의 문제를 생각해봅니다. 언어학의 세부분야들은 각각 고립되어있는 게 아니라 '접면'(interface)을 가집니다.
 
보통 접면에 대해 '위로 어디에 접한다,' '아래로 어디에 접한다' 라고 하는데, 뭔가 위계의 느낌이 나니까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선 왼쪽 오른쪽이라고 할게요.
 

1.1 음운론은 형태-통사론, 그리고 음성학에 맞닿는다

 
음운론은 왼쪽으로는 음성학에 접하고 오른쪽으로는 형태-통사론에 접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하면, 음운론은 음성학적 발견과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하여 음운론 내부의 문제나 형태-통사론적 문제를 푸는 분야입니다.
 
음운론의 연구방법은 "데이터 -> 일반화 -> 설명 -> 상대화"의 경로를 밟는데, 우선 여기서 말하는 일반화의 대상인 데이터가 바로 음성학적 데이터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일반화의 과정에서 음성학의 연구성과를 인용해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파심에 적지만 음성학적 데이터라고 해서 음성 녹음 파일들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추상화되지 않은 실제 발음의 전사도 음성학적 데이터라고 부릅니다. 한국어 위키사전wiktionary에 들어가시면 단어의 발음표기가 엄밀전사(narrow transcription)로 제공되는데, 이러한 것들이 바로 음성학적 데이터의 예시입니다.
 
결론적으로 음운론자들은 절대 음성학적인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음운론자들은 자음 유무성 변별의 음향자질이 F0와 VOT라고 음성학 페이퍼에서 나오면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지 거기에 대하여 음성학적으로 의미있는 반박을 하지 않습니다. 만약 '음운론적인 유성음 무성음 개념이 정말로 F0와 VOT에 대응되는가?' 라는 탐구주제라면 화살표의 방향이 음운론에서 음성학쪽으로 향하는, 음성학 연구주제입니다.

똑같이 말소리의 물리적인 특성을 연구한다고 하여도, 조음기관의 움직임이나 물리적 한계에 의한 청취/인지적 제약으로 인해 설명이 되지 않고 다소 심리적인 매커니즘이 필요한 주제들은 음운론의 연구주제입니다. 모음조화나 자음조화 현상은 서로 상응하는 단위들이 잇달아있지 않기 때문에 생리적, 물리적 제약으로 인해(즉 음성학적 기제로 인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각주:2] 따라서 분절음을 세분해서 자질(feature)이라는 물리적이지 않은 단위를 상정하여 설명하든 아니면 분절음을 초월한 자립분절적(autosegmental) 층위(tier)를 상정하든 음운론적으로 설명을 합니다. 자질, 자립분절적 층위 등등의 개념은 음운론적이고 '상정'(assume) 내지는 '주장'됩니다. 음절, 기저형, 표면형, 강세 등등의 개념도 그렇습니다. 음성학적으로 이 개념들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음운론적 개념인 '강세'는 음향음성학적으로 intensity (dB)의 굴곡이든 pitch (Hz)의 높낮이든 물리적으로 설명할 것입니다.

 

1.2 음성학은 음성공학, 그리고 음운론에 맞닿는다.

저 자신이 음성학자는 아니라서 음성학이 뭐다라고 정의내릴수는 없지만, 그래서 통사론자나 의미론자들보다는 음성학에 조금더 가까우니 (저희 랩은 음성학 랩실 옆방 썼습니다. 음성학에 가까운거 맞아요ㅋㅋ 성학(phonetics)과 운론(phonology) 모두 음(phon-)으로 시작하고요.) 제가 받은 인상을 적어보겠습니다.
 
음성학은 왼쪽으로는 음성공학에 접하고 오른쪽으로는 음운론에 접합니다.
 
음성학은 공학적 기법들을 통하여 실제 데이터를 다루면서 음운론적 주장을 검증하거나 반박합니다
 
음성학은 조음, 음향, 청취 음성학으로 나뉘는데 모든 분야에서 아날로그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는 방식과 이 데이터를 다루는? (manipulate) 방식을 직접 합니다. 따라서 공학, 특히 음성공학 분야의 연구를 면밀하게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성학 랩에 가면 신기한 게 많아요. 기계나 모형 도구 등 
 
음성학은 물리적인 발현 양상을 직접 보는 데 관심이 있으며, 음운론자들의 "썰"에 대해서 "정말 그런거 맞아?" 하는 식의 접근을 많이합니다. (철저히 음운론자의 시선임) 음운론자들은 대체로 음성학자들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만 음성학자들도 음운론자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어요.

앞서 1.1의 말미에서 유무성 변별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같은 예시를 이어가자면, 유무성 변별이라는 언어적 사실을 팩트로 두고 어떻게 그것을 할 수 있느냐, 뒤에 오는 모음의 높낮이(F0)를 달리하여 구분하느냐 아니면 발성기관(vocal tract)의 폐쇄가 뚫린 후 성대진동까지 지연시간(VOT)의 차이로 하느냐 등등을 연구하는 것은 음성학적 연구입니다. 
 

2. 사고방식 혹은 끌리는 것에 따른 구분

2.1 음운론은 논리적 정합성을 추구한다

음운론자들이 하는 일은 바로 을 푸는 것이 아닐까요? 플라톤을 호명하자면, 음운론자들은 언어가 가지계(눈으로 볼 수 없고 이성을 통해 봐야 하는 것)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해야 한다"라는 당위와 "그런데 현실이 어떠하다"(테스형 세상이 왜이래)라는 관찰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왜 그런가"를 설명하는 것(이론화하기theorizing)이 바로 음운론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추상적/비판적 사고와 논증에 더 끌린다면 음운론자입니다.
 
음운론 연구에서는 논리가 사실보다 중요합니다. 때론 음성학적 관찰에 대해서도 '실제 데이터는 간섭요인이 너무 많아서 진짜 현실(가지계)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음성학의 음향 및 조음 데이터는 주변환경과 발화자 기분(?) 등 우연한 요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저 자신 역시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통계처리가 필수이기도 하고요.
 
사실을 엄밀하게 포착하는 것보다 논리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음운론자들은 음성학자들보다는 통사론자들에 더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농담으로, "모든 뛰어난 음운론 연구자는, 한 때 실패한 통사론 학생이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의적인 의미가 있는데, 음운론자들은 통사론을 잘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통사론자를 꿈꾸다 실패한 사람만이 훌륭한 음운론자가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가 여기서 의도한 것은 후자의 의미입니다.
 
 

2.2 음성학은 실증적 타당성을 추구한다

반대로 음성학자들은 이론보다 사실이 우선입니다. 데이터에 따라 실증적으로 타당해야 이론의 가치가 있으며, 그것의 논리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또한 음성학자들은 "더 발전된 기법"을 통해 사실을 타당하게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리고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원자료를 포착하는 기법의 발전이 되었건, 그것을 통계처리하는 기법이 되었건 더 우수한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진리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더 우수한 실증적 관찰방법과, 주장에 대해 사실에 기반해서 검증하는 것이 더 끌린다면 음성학자입니다.
 
또한 음성학자들은 계량화하여 평가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론이 관찰데이터에 대해 실증적으로 더 타당한지 여부는 사실 계량이 가능합니다. 음운론자와 음성학자를 가르는 문제는 아마도 '관찰데이터'에 대한 신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앞 섹션에서 음운론자들은 '사실보다 이론을 우선한다'라고 했는데, 바로 이 지점입니다. 음운론자들은 관찰데이터를 음성학자들만큼 신뢰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 아래에 댓글창이 열려있습니다. 로그인 없이도 댓글 다실 수 있습니다.
  • 글과 관련된 것, 혹은 글을 읽고 궁금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댓글을 달아주세요.
  • 반박이나 오류 수정을 특히 환영합니다.
  • 로그인 없이 비밀글을 다시면, 거기에 답변이 달려도 보실 수 없습니다. 답변을 받기 원하시는 이메일 주소 등을 비밀글로 남겨주시면 이메일로 답변드리겠습니다.

 

  1. 언어학을 조금 아시는 분들이라면 "형태론 어디있어?" 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 있을텐데, 사실 저는 살면서 '순수하게 형태론자'인 사람은 한 번도 못 본것 같습니다. 형태론자라고 자칭하지만 실질적으로 의미론자이거나 통사론자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형태론에 접면하는 음운론을 연구하시는 분들은 스스로를 음운론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본문으로]
  2. 물론 지난 몇 년간 조음음성학의 발전으로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 조음음성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많이 있었고 여전히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때, 모음조화에 참여하는 모음들 중간의 자음이 조음될 때도 (모음조화가 ATR조화라고 상정하였을 때) 혀뿌리가 조화 참여 모음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관찰하는 것은 음성학 연구주제가 됩니다. [본문으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