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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생때 읽었던 언어학 책들

sleepy_wug 2023. 4. 16. 15:55

 

0. 도입

교보문고 광화문 점에 가면 돌판에 이렇게 써있습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사람은 책은, 책을 사람을, 만들고 만든다!

 
"사람을 만드는 책"은 어떤 책일까요? 아마도 20대 학부생 때,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읽은 책이 한 사람의 관점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을까요?
 
제가 결국 음운론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고, 음운론 중에서도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저의 주제를 가지고 씨름하게된 것도 어쩌면 그 시작에는 (몰라서) 아무렇게나 읽었던 책들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읽은 아무책 중에서도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이라면 그만큼 언어나 공부에 대한 저의 관점에 큰 영향을 준 책일 것입니다. 바로 아래의 책들입니다.
 

 
이 글의 나머지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특히 기억나는 책들과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적어보겠습니다. 각 챕터에 제시된 표지는 제가 읽은 판본의 표지이므로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현재 (2023년) 에는 찾을 수 없는 표지일 겁니다.ㅎㅎㅎ
 

1. 언어본능

맞습니다 이것이 제 책의 표지입니다

 
언어학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가 된 책을 한 권만 고르라면 단연 Steven Pinker의 The Language Instinct를 고를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었던 시기는 제가 '영어학개론' 수업을 듣고 난 이후였습니다. 아마도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이 책을 추천해주셨거나 혹은 영어학개론 수업 공부를 하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들었던 영어학개론은 촘스키의 생성문법의 프레임워크에 기반한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각주:1] 그 개론수업은 약간 "언어능력(language competence)은 내재적이고, 인간은 생득적으로 언어를 타고난다" 라는 명제를 다른거 다 까먹어도 기억하게 만드려는 목표를 가진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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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Language Instinct는 제가 들었던 영어학개론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미 어떤 이야긴지 큰 줄기를 알고 읽으니 상당히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한 내재주의적 언어관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책은 뒷부분으로 갈수록 아리송해집니다. 비교적 최근에 다시 이 책을 펼쳐보았을 때에는 뒷 챕처들을 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1994년에 나온 책이다보니 지난 20년 간의 새로운 발전을 담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언어는 본능이다"라는 명제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학 덕후'님이 이 책을 읽고 내용요약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2. 화용론 수업에 읽은 기능주의 책들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빠빠빨간맛

Through the Language Glass 와 Metaphors We Live by는 3학년 혹은 4학년 때 화용론 수업을 강의하신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책이었습니다. 특히 학기 마지막 1주 간은 Metaphors We Live by를 학생들에게 reading으로 내주시고 그것을 강의하셨습니다.
 
저의 영어학개론과 Language Instinct가 생성문법적 언어관을 대표한다면, 화용론 시간에 읽은 책 Through the Language Glass와 Metaphors We Live by는 정 반대편 진영을 대표합니다.
 
Language Instinct에서 "문화에 따른 언어 차이는 없어"라고 말할 때, Through the Language Glass에서는 "하지만 이 (원주민언어) 사례를 봐. 언어는 문화로부터 떼려야 뗄 수 없어." 하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두 권의 책 모두 촘스키주의를 기반으로 그에 대한 반박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 Through the Language Glass나 Metaphors We Live by를 먼저 접했더라면 생성문법적 내재주의 언어관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Language Instinct는 "말도 안되는 소리"로 치부해버리거나 아예 기능주의자로 학문적 진로를 정해버렸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2.1 본문보다 긴 여담: 센스있는 번역

여담으로 Through the Language Glass와 Metaphors We Live by 두 책 모두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데, 제목의 번역이 매우 근사합니다.
 
Through the Language Glass라는 제목은 루이스 캐럴의 "거울속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에서 따온 표현입니다. 그러나 한국어로는 이러한 뉘앙스가 전달되기가 어려운데, 그래서 제목을 "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라고 한 것 같습니다.
 
소-와인-바다 모두 "빠빠빨간맛"인 그곳은 대체 어디일까요? Through the Language Glass의 앞부분을 조금이라도 읽으시면 어디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소도 빨간맛, 바다도 빨간맛!

 
Metaphors We Live by는 "삶으로서의 은유"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시간은 물과는 다른 대상인데, 물을 "절약하듯" 시간을 "절약하고", 또 시간은 마치 돈처럼 "낭비"할 수도 있다는 등등 "우리의 생활(에 대한 언어표현)이 은유에 맞대어 있다"라는 책의 핵심을 "삶으로서의 은유"라는 제목이 아주 센스있게 담은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3. 탑그림 "언어" 책

탑출판사의 바벨탑 언어

 
언어학의 여러 분야에 대한 기본 개념을 잡아주는 한글 책으로 저는 이 책을 읽었습니다. 지금 다시 펼쳐보면 음운론과 통사론의 세부적인 부분에서 조금 아리송한 부분이 있지만, 한국어 자료가 풍부하고 큰 그림을 보기 위해서 참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담으로 이 책의 저자는 김진우 교수님이신데, 한국어 언어학계에는 김진우 교수님이 두 분 계십니다. 각각 P-side (음성음운론)와 S-side(통사의미론)에 계시는 분인데, 탑 그림 "언어" 책을 쓰신 분은 P-side에 계신 김진우 (Chin-Woo Kim) 교수님입니다. 그분은 '변별자질'의 운용을 분석대상으로 삼는 현대음운론에서 그 '변별자질' 개념의 기반을 잡는 데 기여하신 분으로서 전세계적으로 매우 널리 알려진 음운론자십니다.
 
또 여담으로, 김진우 교수님이 이 책을 쓰신 뒷 이야기가 참 재미있습니다. 김진우 교수님은 계속 미국에서 활동해오시다가[각주:2] 한국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에 본인의 모교인 연세대로 방문교수를 오게 됩니다. 그러나 1983년 당시에는 변변찮은 언어학 개론서가 없었기 때문에 직접 쓰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여름방학 때 "독일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고선 여름 내내 유럽 일주를 하고 오겠으니 나를 찾지 말아라"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을 해놓고 실제로는 연세대 원주 캠퍼스에 방을 구해서 두달동안 집필했다고 합니다.
 
 

4. 적당한 마무리

탑그림 "언어" 책을 제외하고는 모두 언어학의 교양서입니다. 비전공자가 읽기 쉽게 되어있습니다. 탑그림 "언어"책은 언어학의 전통적인 분류에 따라 챕터구성이 되어있는 등 언어학 체계를 잡는 데 좋습니다. 본 포스팅에서 소개한 책들은 모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또한 본 포스팅에서는 촘스키의 책을 한 권도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저 자신이 학부생때 촘스키의 원전을 직접 읽지는 않았고, 그래서인지 저는 촘스키의 책을 무턱대고 읽는 것을 그닥 추천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촘스키의 생성음운론의 고전인 SPE도 흥미롭게 읽었고, Minimalist Program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일단 분야에 대한 애정이 생기고 나야 이런 책들을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언어학 책 소개에 촘스키 책이 빠지면 아쉽다"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신다면 What kind of creatures are we 를 추천합니다.
 
혹시라도 언어학이 뭔지 궁금하시다거나, 언어학에 흥미는 있는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하시는 분들께 이 포스팅이 조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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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리고 포커스는 음성음운론과 통사론에만 있었던 이상한 학기였습니다. 보통 영어학개론은 못해도 음성음운론 / 통사론 / 의미화용론 정도는 다루는데, 의미화용론을 다루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 매우 실험적인 커리큘럼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본문으로]
  2. UIUC의 명예교수입니다.[링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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