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음운론의 무의미한 평가요소들

0. 요약 

나중에 가서는 그닥 중요하지 않으나 음운론 개론수업에서 까다롭게 평가하는 '평가를 위한 평가' 요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몇몇 IPA 기호의 사용입니다. 

 

물론 계속 이 체계를 잘 지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버릇'을 들이기 위한 것이지만, 크게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목차

 

1. 사례들

1.1 [g]는 IPA에 없는 기호

IPA에 [g]가 없습니다. 만약 폰트때문에 잘 안보인다면 폰트를 바꿔서 써보겠습니다.

 

IPA에는 [g]가 없습니다.

 

IPA에는 오직 [ɡ]가 있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음운론 개론 수업에서는 강의자에 따라 잘못된 기호를 썼다고 감점을 하거나, 감점을 하지는 않더라도 꼭꼭 코멘트를 적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g]  [ɡ] 구별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International Phonetic Association에서 나오는 저널 Illustrations of the IPA 같은 곳에 투고할 때에는 명확하게 구분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애초에 [g]  [ɡ] 가 무슨 의미차이를 유발하는 것도 아니고, [g] 좀 쓰면 안되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IPA는, 어떻게 말하자면, 음운론자들이 International Phonetic Association에서 빌려쓰는 전사체계이기 때문에, 그쪽에서 "우리가 전향적으로 나서서 [g]도 허용하겠다"하지 않는다면, [g]를 쓰는 건 늘 틀린표기일 수밖에 없겠지요.ㅋㅋㅋ

 

1.2. [a]는 전설모음이다

"[a]는 전설모음이다"만큼 개론수업과 그 이후가 달라지는 진술문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학부 개론수업에서야 IPA 차트를 따라서 "[a]는 전설모음"이라고 가르치고 시험도 보고 하지만, 정작 학부 음운론 개론수업 강의하는 사람도 그 강의실을 나가면 [a]를 중후설모음(음운론적으로 중설모음과 후설모음은 대부분 구분하지 않음)으로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후설저모음 [ɑ]로 써야하는 거 맞지요. 근데, 워낙에 많은 논문에서 [ɑ]와 [a]를 혼용해서 쓰기 때문에 [a]가 나와도 그냥 [ɑ]로 취급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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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ɑ] 쓸 자리에 [a]를 쓰면 감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음운론 개론 내에서만 통하는 평가요소인 것 같기도 합니다.

 

여담으로, 한번은 손글씨로는 [ɑ] 만 썼는지 [a]가 익숙하지 않은 학생 중 한명이 실험지 위에 [a] 쓰는 연습을 해놓은 적도 있네요.

 

 

1.3 마이너스 기호

IPA와는 상관 없지만, 자질값에 사용하는 마이너스 기호를 − 로 쓰지 않고 - 를 썼다고 코멘트를 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사실 이걸로 감점하는 강의자는 본 적 없습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키보드에서 쉽게 입력하는 -는 마이너스 기호가 아니라 대시 기호인데, 컴퓨터공학/컴퓨터과학에서 대시기호를 마이너스의 대용으로 그냥 사용하면서 -는 "대시-마이너스"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니코드 표준에 보면 이 대시기호와는 별개의 수학기호 마이너스 (2212) 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수학과에서는 어떠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음운론 연구자 중엔 의외로 이 두 기호 구별하는 데 까다로운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코로나 시기 시험지에 [-consonantal] 등의 답안에 코멘트로 [−consonantal]로 쓸 것을 권장하자고 이야기가 나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2. 음운론 개론 A+

반대로 이러한 까탈스러운 평가체계에도 불구하고 A+를 받는 학생들은 어떠한 성격의 학생들일까요?

 

음운론 개론에서 다른 음운론 과목들과 달리 유달리 기호에 대해 민감하게 다루다보니, 음운론 개론에서 A+를 받는 학생들은 오히려 음운론에는 흥미를 못 느낄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A+를 받는다는 것은 아주 세세한 것까지 정확하게 맞춘다는 것인데, 패턴을 보고 큰 그림을 맞추는 음운론적 분석 작업에서는 오히려 혼란스러워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분명 [a]는 전설모음인데 왜 이 언어에서는 중후설모음과 같은 부류를 이룬다고 하지? [g]는 존재하지 않는 기호인데 왜 쓰는 거지? 

 

이런 질문에 몰입하면 정작 중요한 건 놓치기 십상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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